주간동아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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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發 미·중 격돌에 불안감 커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화웨이 신형 휴대전화 내장 7㎚ 칩에 놀란 미국… “장비 통제했는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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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9-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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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이 애플과 화웨이 제품에 대한 제재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GettyImages]

    미국과 중국이 애플과 화웨이 제품에 대한 제재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GettyImages]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신형 프리미엄 휴대전화 ‘메이트 60 프로’에 SK하이닉스의 D램이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칩이 중국으로 흘러간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SK하이닉스 측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거래한 사실이 없다”며 “화웨이 신제품에 당사 메모리칩이 쓰였다는 점을 인지해 바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화웨이와 거래 없었다”

    이번 사태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9월 27일 방중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방중 핵심 안건은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강도 대중(對中) 기술 제재를 가해왔다.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고, 7㎚ 반도체 생산에서 필수로 여겨지는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도 제약했다. 지난해에는 18㎚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미국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추가로 금지하기도 했다. 미국의 제재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올해까지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적용된 휴대전화를 출시하지 못했다.

    러몬도 장관의 방중 기간인 9월 29일 화웨이가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당초 기대됐던 양국 간 치열한 수싸움이 화웨이의 신제품 발표로 허망하게 일단락된 것이다. 화웨이가 최신 휴대전화에 7㎚ 공정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사용하면서 중국이 자체적으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러몬도 장관은 별다른 성과 없이 귀국했다. 해당 AP는 세계 5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중국 SMIC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미국의 규제를 뚫고 첨단 반도체 생산에 성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출렁였다.

    첨단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아이폰 사용 제재’ 논란이 더해지며 확산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 6일(현지 시간) 중국이 최근 중앙정부 기관 공무원들에게 업무용으로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외국 기업 기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더 나아가 중국 당국이 국영 기업 전반으로 아이폰 사용 제재를 확산하려 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에 이어 애플의 3번째 시장이다. 애플 전체 매출의 19%가 중국에서 발생한다. 애플은 최신 기종인 아이폰15 가격을 동결하며 중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는 최근 각각 아이폰15(왼쪽)와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했다.[애플 제공, 화웨이 제공]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는 최근 각각 아이폰15(왼쪽)와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했다.[애플 제공, 화웨이 제공]

    중국은 외신 보도를 부정하지만 시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마오 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 13일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은 애플 같은 외국 브랜드 휴대전화에 대한 구매·사용 금지 법률, 규정 또는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플 주가는 제재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9월 14일까지 9%가량 하락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간 부품의 90%는 중국 업체의 것이고, D램은 외국 기업 제품이 사용됐다.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니스와 미국 마이크론의 D램이 해당 기기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쥐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점유율은 각각 38.2%, 31.9%에 달한다. 이어 마이크론이 25.0% 점유율로 두 기업을 쫓고 있다. 세 기업의 시장점유율만 95%가 넘는다. 사실상 메이저 기업의 D램이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회 루트 통해 D램 입수 가능성”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화웨이 제품에서 발견된) 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5(LPDDR5)라는 범용반도체가 2019년부터 SK하이닉스에서 생산돼온 만큼 화웨이가 2020년 미국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 해당 물량을 확보했을 수 있고, 이후로도 다른 우회 루트를 통해 입수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존 비축분을 활용해 휴대전화를 만들었거나, 말레이시아 등 제3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물량을 확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후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놓고 가열되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SK하이닉스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놓고 가열되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SK하이닉스 제공]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한 미국 측 제재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규제를 발표했다.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여럿 두고 있는 만큼 해당 규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약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역시 D램의 20%와 낸드플래시의 40% 상당을 중국 우시와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이 양사를 규제 조치 예외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1년 동안 유예 기간이 적용됐고,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반도체업계는 ‘운명의 한 달’을 보낼 전망이다. 유예 기간 연장이 한 달여 남은 가운데 대중 반도체 유통 구조에 대한 규제가 좀 더 촘촘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니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 소동으로 중국 내 아이폰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애플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태 핵심이 ‘7㎚ 공정 AP’에 있는 만큼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사태의 파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최첨단 미세공정이 필수인 네덜란드 ASML의 EUV가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7㎚ 공정 AP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가 사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中, DUV 활용해 7㎚ 반도체 만들었나

    중국이 7㎚ 공정 AP를 만든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통상적으로 7㎚ 공정AP를 만들려면 ASML의 EUV가 필요한데 네덜란드 정부가 2019년부터 해당 기기의 중국 수출을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EUV 이전 세대 제품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활용해 7㎚ 공정 AP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DUV를 이용해 첨단 반도체를 만들 경우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이마저도 수율이 좋지 않아 비용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제품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중국이 러몬도 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체제 선전 차원에서 다소 무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달부터 ASML DUV의 대중 수출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향후 이마저도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깜짝 첨단 반도체 굴기가 이어질 수 있을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 정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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