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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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푸틴의 위험한 만남, 유엔 안보리 무너뜨리다

북한, 포탄·로켓 등 재래식 무기 주고 러시아 ICBM 핵심 기술·전투기 이전받을 듯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9-14 15: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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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그동안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등을 막기 위한 대북제재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 안보리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모두 11차례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특히 안보리는 2013년 3월 7일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라 채택된 결의 2094호에 “북한의 추가 발사 또는 핵실험 때 추가적인 중대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트리거(trigger)’ 조항을 넣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트리거 조항 무용론 고조

    트리거는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로, 특정 행동을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추가 제재가 가해지는 일종의 자동 개입 조항이다. 즉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각국 동의를 구해 안보리 소집을 요구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대북제재안을 회부해 추가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다. 안보리가 트리거 조항을 구체화한 것은 2017년 12월 22일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였다. 당시 안보리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와 함께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자 대북 석유·정제품 수출량 한도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했다.

    하지만 안보리는 지난해부터 트리거 조항에도 추가 대북제재를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안보리는 지난해 5월 26일 북한의 화성-17형 시험발사에 따라 대북제재 조치를 추가 부과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중국이 거부권 행사라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은 자국에 대한 포위망 구축에 나서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속셈 때문이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고자 북한 편을 노골적으로 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미국과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북한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왔다. 안보리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ICBM, 탄도미사일, 우주발사체 발사 등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및 거부권 행사로 추가 제재 결의 채택은 물론,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장 성명이나 언론 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필요한 행동 및 책임을 가지는 유엔 최상위 기구 안보리에 대한 ‘무용론’이 고조되고 있다. 안보리는 1945년 설립된 유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안보리는 유엔의 각종 기구 가운데 유일하게 회원국들에 이행 의무가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안보리 결의는 말 그대로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안보리의 주요 기능과 권한에는 국제 분쟁의 조정 또는 해결 권고, 국제 평화 유지를 위한 경제적·군사적 강제 조치 집행, 신탁통치 기능 수행, 군비 통제안 수립, 신회원국 가입 권고, 유엔 사무총장 임명·권고 등이 있다. 특히 안보리는 안전 보장을 위해 경제적 제재뿐 아니라 군사적 제재도 가할 수 있다.



    안보리 제재 절대 방패 가진 러시아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유엔 제공]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유엔 제공]

    안보리는 유엔 헌장 제23조에 따라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상임이사국은 1945년부터 지금까지 임기 제한 없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5개 상임이사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이다. 비상임이사국은 총회 표결을 통해 해마다 5개국씩 교체된다. 비상임이사국은 투표에 참가한 유엔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선출되는데, 임기는 2년이고 연임할 수 없다.

    안보리의 주요 결정은 총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5개 상임이사국 모두가 찬성해야 성립된다. 상임이사국은 이른바 비토권을 갖고 있다.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어떠한 결정도 성립할 수 없다. 이들 5개국은 안보리 제재를 언제든지 막아낼 수 있는 ‘절대 방패’를 가진 셈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엔 헌장을 위배했다. 당시 안보리에서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추진됐지만 러시아가 스스로 반대표를 던져 이를 무산시켰다. 안보리는 지금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해온 각종 전쟁 범죄에 대해 어떤 제재 결의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러시아가 ‘전가의 보도’인 거부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발칸전쟁을 일으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전범 재판을 이끈 영국 변호사 제프리 니스 경은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 전범 재판이 열린 뉘른베르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북한 재래식 무기 받아들이나

    7월 27일 북한 평양에서 전승절 경축 열병식이 열렸다. [노동신문]

    7월 27일 북한 평양에서 전승절 경축 열병식이 열렸다. [노동신문]

    실제로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특권을 제약 없이 누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전쟁범죄 혐의로 제소했지만 러시아는 처벌받지 않는다. ICJ가 국가 간 분쟁만 다루는 데다, 당사국이 모두 동의해야만 재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설령 ICJ가 러시아를 유죄로 판단하더라도 그 판결의 집행은 안보리가 맡는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안보리에서 통과가 불가능하다.

    결국 국제사회는 개인을 전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소했다. ICC는 3월 푸틴에 대해 전범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러시아가 2016년 ICC를 탈퇴했기 때문에 푸틴이 실제로 체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푸틴은 중국, 북한 등 ICC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만 갈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한 푸틴은 아예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까지 무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지는 등 궁지에 몰린 푸틴은 무엇보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포탄과 로켓, 단거리미사일 등 무기가 필요하다. 현재 러시아에 이런 무기들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북한뿐이다.

    푸틴은 9월 13일 전용 열차를 타고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났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러시아가 2012년 건설한 곳으로, 첫 번째 위성 발사는 2016년 4월에 있었다. 이곳은 북·러 간 군사협력 확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실제로 푸틴과 김정은은 정상회담에서 핵기술·식량과 포탄 등 재래식 무기의 거래에 합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122㎜·155㎜ 포탄과 122㎜ 로켓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푸틴은 핵추진잠수함(SSN)·정찰위성·ICBM의 핵심 기술과 전투기 등을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거래는 명백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다. 안보리 결의 1874호와 2094호에 따라 북한은 모든 무기 수출이 금지됐고, 2270호엔 북한에 탄도미사일 기술 제공 금지도 규정돼 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이를 두고 ‘악마의 거래(devil’s deal)’라는 비판이 나온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안보리 제재 결의 위반”이라면서 추가 제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양국 이익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 등의 경고가 아니라, 우리 두 나라의 이익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가 이처럼 당당하게 나오는 것은 미국 등이 자국과 북한의 무기 거래를 안보리에 대북제재 위반으로 상정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지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해 추가 대북제재를 가로막고 기존 제재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상임이사국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를 안보리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지만 상임이사국 자격 상실은 모든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유엔 헌장을 고쳐 러시아를 퇴출하는 데도 러시아의 동의가 필요하다.

    “안보리 쓸모없어”

    차선책으로 안보리 개혁 대안도 거론된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10개국으로 늘리되 거부권을 제한하고, 비상임이사국도 10개국에서 14개국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위해선 193개 회원국 중 최소 128개국 승인이 필요하다. 또 거부권을 제한하려면 유엔 헌장을 수정해야 하는데 모든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안보리 개혁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안보리 무용론과 대북제재 무력화가 ‘실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안보리는 더는 세계 질서 수호자로서 쓸모가 없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은 앞으로 안보리 대신 한국, 일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연합 회원국 등 동맹국과 소다자(小多者) 협력 방식의 강력한 제재 조치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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