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6

..

러시아에 포탄 주고 MIG-29 전투기 받으려는 北

자급자족 어려운 전투기 부품, 미사일 연동 기술이전 러시아에 요청 가능성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3-09-10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제 무기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군이 북한제로 추정되는 포병 탄약을 사용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이를 노획해 쓰는 모습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8월 30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새로운 정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9월 들어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 행보는 더 빨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9월 4일(현지 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무기 거래와 관련한 논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은 북한과의 연합훈련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북한 공군 MIG-29 전투기. [뉴시스]

    북한 공군 MIG-29 전투기. [뉴시스]

    미사일 기술이전은 러시아에 부담

    북한이 러시아에 줄 무기 품목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러시아가 반대급부로 무엇을 제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 공세를 막는 데 절실한 포병 장비와 탄약을 북한 측에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군이 의용병이나 용병 형태로 충원한 수십만 병력에 공급할 총기와 탄약도 필요하다. 엄청난 양의 구형 포병 장비와 총기, 탄약을 보유한 북한은 러시아가 원하는 물자를 신속히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증이 아닌 판매이기에 러시아는 물품을 받는 대로 북한에 어떤 형태로든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국제사회 제재로 외화 결제 수단이 대부분 막혀버렸다. 북한이 무기를 준 대가를 미국달러나 유로로 치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구매력이 낮은 화폐인 러시아 루블이나 중국 위안은 북한 측에서 난색을 표할 공산이 크다. 막대한 전쟁비용 지출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러시아 정부가 북한에 현금을 지불할 여력 자체가 없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북한-러시아 간 물물교환인데, 그 구체적 물품이 무엇인지 여러 분석과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외 언론에 자주 언급된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넘겨주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여러 종류의 ICBM을 보유 중이지만, 이들 미사일은 안정적인 재돌입이 확인되지 않아 기술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이 때문에 북한이 무기 판매 대가로 러시아에 ICBM 기술을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과거 북한은 러시아 사회의 극심한 혼란을 틈타 옛 소련의 미사일 개발 조직 중 하나인 마카예프 설계국과 접촉했다. 당시 북한은 마카예프 설계국 측에 현금을 보내는가 하면, 임금 체불로 생활고를 겪던 기술자들을 초청해 후한 대접을 해주며 미사일 기술을 빼내기도 했다. 북한이 만든 미사일 중 처음으로 사거리 1000㎞를 넘긴 ‘화성-7형(노동1호)’과 중거리미사일 ‘화성-10형(무수단)’ 모두 북한으로 넘어간 마카예프 설계국 기술자들의 작품이다.

    자급자족 못 하는 北 항공기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북한에 ICBM을 비롯한 미사일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적극 차단했다. 소련 붕괴 직후 기술자들이 너도나도 북한으로 넘어가자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나서 고급 인력 유출 방지에 나섰다. 1993년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국제공항에서 북한으로 가려던 미사일 기술자 60여 명을 체포한 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적성국인 한미일 3국과의 완충지대이자 유사시 대리전을 수행할 전위(前衛)다. 반면 러시아로선 북한이 핵무기와 ICBM을 보유한다고 해서 얻을 이익이 거의 없으며, 이런 입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북한은 자기네가 절실히 원하면서도 러시아가 순순히 내줄 만한 물물교환 대상 품목을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 정보당국이 포착한 시그널이 주목된다. 국가정보원은 8월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노후 장비 수리와 기술이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오랫동안 자력갱생 노선에 따라 대다수 무기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는 곧 무기에 들어가는 구성요소를 대부분 북한에서 생산하는 동시에 수리, 개량 능력도 갖췄다는 의미다. 이런 북한이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무기가 바로 항공기다.

    1988년 김일성 주석이 모스크바를 다녀온 직후 북한은 소련과 MIG-29 전투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일부 기체는 완성기 형태로 직도입하고, 나머지는 소련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북한에서 조립 생산하는 계약이었다. 이를 위해 북한은 평안북도 구성시에 ‘방현항공기제작소’를 설립해 MIG-29 조립 시설을 마련했다. 당시 북한은 4세대 전투기 MIG-29를 대량 생산해 노후화된 기체를 대체할 속셈이었지만 소련이 붕괴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북한이 1993년까지 러시아로부터 받은 MIG-29 부품은 20여 대 분량에 불과했다.

    북한 주력 전투기 중 MIG-21과 MIG-19는 중국이 각각 J-7, J-6라는 이름의 복제품을 대량 생산했기에 중국에서 부품을 구할 수 있다. 반면 MIG-29는 중국에 판매된 적이 없어 북한으로선 러시아를 통하지 않고선 부품 수급이 불가능하다. 항공기 부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수리·정비가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이는 결국 가동률 저하로 이어진다. 북한 공군 MIG-29가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비행하는 이유도 부품난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러시아에 ‘노후 장비 수리와 기술이전’을 요구했다면 이는 MIG-29와 관련된 사안일 확률이 높다.

    북한의 요구를 러시아도 흔쾌히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입장에서 MIG-29는 계륵 같은 존재이자 남아도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플랭커’라는 코드명을 붙인 Su-27/30/35 계열 전투기 570여 대와 여기서 파생된 공격기 Su-34 150여 대, 고고도 요격기 MIG-31 130여 대, 다목적 전투기 MIG-29 24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이륙중량 30t 이상인 플랭커 계열기는 20t 미만인 MIG-29에 비해 속도, 기동성, 항속거리, 무기 탑재량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같은 기종에서 파생된 모델들이기에 엔진 등 주요 부품 간 공통점이 많아 유지비도 낮다. 반면 MIG-29는 플랭커 계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부품 자체 내구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보유한 MIG-29 240여 대 가운데 4개 연대 규모인 70여 대만 운용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방치된 기체 상당수는 비행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자동차로 따지면 주행거리가 짧은 신품에 가까운 기체다.

    北, 미사일-전투기 연동 기술 필요

    러시아에 방치된 MIG-29가 얼마나 많은지 관련 일화도 있었다. 2021년 1월 러시아의 밀리터리 마니아 몇 명이 니즈니노브고로드 지역에 있는 버려진 항공기 제작 공장에 숨어 들어갔다. 이 공장은 소련 붕괴 전까지 MIG-29를 최종 조립하던 곳으로 1993년 이후 방치됐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들어가서 보니 이곳에 미처 완성하지 않은 MIG-29는 물론, 전투기 수십 대를 더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부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30년 가까이 방치돼 먼지가 덮이고 녹은 슬었지만 적절히 가공한다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장기 미사용 재고품들이었다. 이 같은 잉여 MIG-29와 부품을 북한에 넘기는 게 러시아로서도 이득이다. 북한으로부터 당장 필요한 포병 장비를 확보하면서 전투기 기종을 단순화해 운용 효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노후 장비 수리와 함께 기술이전을 요구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자체 개발한 미사일과 MIG-29 전투기를 연동하는 데 필요한 항공전자 분야 기술을 러시아 측에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21년과 2023년 ‘무장장비전시회’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공대공미사일 두 종류를 공개했다. 각각 중국 PL-11과 비슷한 중거리공대공미사일과 유럽 IRIS-T와 유사한 단거리공대공미사일이었다. 이런 공대공미사일을 전투기에서 운용하려면 표적 정보를 획득·처리·제공할 레이더와 사격통제컴퓨터 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기존에 보유한 MIG-29 전투기의 수명 연장, 성능 개량 과정에서 러시아 측에 도움을 요구했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이 올해 열병식에서 공개한 무인기. [뉴시스]

    북한이 올해 열병식에서 공개한 무인기. [뉴시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러시아에 경고해야

    북한이 MIG-29 전투기를 추가 확보하고 개량하고 있다는 심증은 최근 그들이 내놓은 신형 무기체계 면면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북한은 올해 이른바 ‘전승절’ 열병식에서 ‘새별-4형’과 ‘새별-9형’이라는 중·고고도 무인기를 공개했다. 이들 무인기는 속도가 느리고 생존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운용할 수 없는 무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무인기를 공개한 것은 유사시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무기체계를 함께 확충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물론 MIG-29는 제아무리 개량해도 전투기 간 일대일 교전에서 한국 공군 F-35, F-16V 등 첨단 기체의 상대가 안 된다. 다만 북한이 유사시 대량의 탄도탄·방사포를 발사해 한국 공군기지 대부분을 파괴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공군기지를 잃고 전투기를 띄울 수 없는 상황에선 북한의 구식 전투기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8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관 하에 ‘전군지휘훈련’을 시작했다. [뉴스1]

    북한군은 8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관 하에 ‘전군지휘훈련’을 시작했다. [뉴스1]

    북한 당국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전군지휘훈련’에서 ‘전선 및 전략예비포병 이용계획’ ‘해외무력개입파탄계획’ 등을 시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선 및 전략예비포병 이용계획’은 말 그대로 최전선과 후방의 다양한 방사포·전술탄도탄 전력을 대규모로 투사해 남한 전역을 초토화하겠다는 것이다. ‘해외무력개입파탄계획’은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 자산을 막아내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유사시 대량의 포병·방사포·탄도탄 전력으로 한국군과 주한·주일미군의 핵심 전력을 초토화할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대대적인 포격과 미사일 공격으로 한미 항공 전력을 제압하면 북한 공군의 숨통도 트인다. 전투기 간 대결에선 승산이 없어도 드론이나 지상군을 호위할 정도의 여력은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계획에서 MIG-29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핵심 전력이다.

    북한은 유사시 남한 전역을 방사포와 탄도탄으로 뒤덮은 후 ‘영토 점령’을 목표로 재래식 군사 작전을 벌일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군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북한의 군사전략 및 능력을 전면 재평가하고 이를 막기 위한 방공 자산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MIG-29를 제공할 경우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위력적인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해야 한다.

    북한이 9월 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며 공개한 사진. [뉴시스]

    북한이 9월 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며 공개한 사진. [뉴시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