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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폴란드 교두보 삼아 유럽시장 공략 기회 얻다

독일 전차 제공 ‘말 바꾸기’에 뿔난 동유럽 국가들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K-방산, 폴란드 교두보 삼아 유럽시장 공략 기회 얻다

K-2 흑표 전차. [사진 제공 · 국방부]

K-2 흑표 전차. [사진 제공 · 국방부]

6월 국내 방산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폴란드 국방부 대표단의 방한(訪韓)이다.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국방장관이 이끄는 폴란드 국방부 대표단은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한국에 입국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국내 주요 방산업체를 잇달아 방문했다. 한국산 무기체계들을 둘러보고 귀국한 브와슈차크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K2 전차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폴란드에 K2 전차 180대를 수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K2 전차 제작사인 현대로템 측은 보도 직후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며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현지 상황에 밝은 군사 전문가들은 폴란드군의 K2 전차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독일 링타우쉬 프로그램은 거짓”

최근 폴란드 조야에선 독일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대표단이 방한하기 며칠 전인 5월 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석상에서 독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두다 대통령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4월 발표한 이른바 ‘링타우쉬(Ringtausch)’ 프로그램이 거짓이었다고 주장했다. 링타우쉬 프로그램은 동유럽 국가들이 옛 소련제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기증하면 독일 정부가 그 전력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현대화된 독일 전차를 제공하는 것이 뼈대다. 두다 대통령은 “우리는 최소 240대 넘는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넘겨 군사적 잠재력과 비축 능력이 크게 약화됐지만, 독일은 그 물량만큼 레오파르트 전차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독일 측 처사에 대단히 실망했다”고 성토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최전선 국가’로서 극심한 전쟁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와 폴란드 국토 사이에 벨라루스라는 완충지대가 있긴 하다. 그러나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푸틴의 대리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 가깝다. 9월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와 국가 합병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미 대규모 러시아군 병력이 주둔하는 벨라루스가 통째로 러시아에 흡수되면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선이 될 판국이다. 폴란드인들은 러시아의 다음 침공 목표가 곧 자국이라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공 전부터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 지원을 했다. 법까지 뜯어고쳐 군대 규모를 2배로 확장하는 등 대대적 군비 증강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귀중한 전차 전력을 우크라이나에 대거 지원했는데 독일이 약속을 어겨 전력 공백이 발생하자 불안과 배신감이 독일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통 차세대 전차 사업서 폴란드 내친 독일

독일은 폴란드에 레오파르트2 전차(사진)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나 실제 인도(引渡)는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독일은 폴란드에 레오파르트2 전차(사진)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나 실제 인도(引渡)는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폴란드군은 800여 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144대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레오파르트2A4, 105대는 레오파르트2A5 모델이다. 259대의 레오파르트2 계열 전차는 1985년산부터 1995년산까지로 대부분 운용 기한을 30년 이상 넘긴 차량들이다. 1980년대에 도입해 230여 대를 보유 중인 PT-91 전차는 폴란드가 T-72M1을 개량해 제작한 전차지만, 나토 표준에 맞지 않아 도태시켜야 한다. 나머지 전차는 1980년대 초반에 도입해 심각하게 노후화한 T-72 계열 모델이다. 폴란드는 “T-72를 우크라이나에 주면 그 대신 레오파르트2 전차를 주겠다”는 독일 측 제안에 급박한 안보 상황에서도 자국 보유 전차의 30%를 우크라이나에 기증한 셈이다.

본래 폴란드는 독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폴란드에서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냉전 붕괴 후에도 나토와 유럽연합(EU)에서 지도적 입지를 굳힌 독일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대립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과 집권당을 독재 집단, 인권탄압 세력이라고 비난해 양국 관계는 더 악화됐다. 두다 대통령은 2017년 이후 메르켈 정부가 탈미(脫美)와 유럽 자주(自主)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과 각을 세우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접근했다. 거액의 주둔 비용을 부담해가며 독일 주둔 미군의 일부를 폴란드로 유치했다. 그러자 독일은 폴란드가 점차 유럽 정치 무대의 중심에 접근하면서 군사대국으로 변모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과 경계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계심은 공통 차세대 전차를 개발하겠다며 유럽 국가들이 의기투합한 MGCS(Main Ground Combat System) 프로젝트에서 폴란드를 내치며 표면화됐다. 독일은 레오파르트2 시리즈를, 프랑스는 르클레르 계열을 대체하기 위해 차세대 전차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하고 MGCS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오래전부터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 의사를 밝힌 폴란드 측에 독일은 2020년 1월 거부 의사를 통보했다. 폴란드가 레오파르트2A4처럼 개발된 지 30년 넘은 자국산 구형 전차를 사서 쓰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자기네와 동급인 고성능 전차를 운용해선 안 된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폴란드는 이번 링타우쉬 프로그램에서도 구닥다리인 레오파르트2A4가 아닌 A5 이후 모델을 요구했으나 독일로부터 거부당했다.

폴란드의 공개적 비난에 독일 국방부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독일 국방부 대변인은 “양국 간 약간의 트러블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폴란드와 건설적인 교류를 하고 있고, 그들의 희망사항과 현실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링타우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독일이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면서 “독일은 체코와 성공적인 링타우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14대의 레오파르트2A4를 체코에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우크라 MLRS 기증도 미뤄”

다만 현재 상황을 분석하면 독일은 폴란드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언급한 체코는 숄츠 총리가 내건 링타우쉬 프로그램을 믿고 자국의 전차 전력 총 70여 대 가운데 40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독일은 고작 14대의 레오파르트2A4를 체코 측에 주겠다고 밝혔고, 이마저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링타우쉬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슬로베니아는 T-72의 개량형 M84A4 전차 46대를 우크라이나에 넘겼지만 아직 독일로부터 전차를 받지 못했다. 슬로바키아도 T-72 30대를 넘겼으나 독일로부터 약속받은 전차를 제공받지 못했다. 독일은 이들 국가에 레오파르트2A4를 제공하는 대신, 신형 A7 모델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전력 공백이 생기게끔 유도해놓고 무기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폴란드의 K2 전차 구입 추진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비세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으로 불리는 폴란드·체코·헝가리·슬로바키아 4개 나라의 언어로 서비스되는 온라인 매체 ‘비세그라드 24’는 6월 9일(현지 시간) “폴란드와의 전차 교환 약속도 지키지 않은 독일은 미국에 확약했던 우크라이나 다연장로켓(MLRS) 기증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다”며 “독일의 무기 공급은 아무리 빨라도 올겨울 이전에는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독일은 4월부터 우크라이나에 88대의 레오파르트1A5 전차, 수십 대의 마르더 1A3 보병전투장갑차, 50대의 게파트 자주대공포 등을 제공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기증된 장비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한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왼쪽)이 5월 3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사진 제공 · 폴란드 국방부]

방한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왼쪽)이 5월 3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사진 제공 · 폴란드 국방부]

독일의 이 같은 행보는 동유럽 국가들의 불신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결국 폴란드는 독일제 무기 수입이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방위산업 투자를 대폭 확대해 자국산 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부족한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제3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뼈대다. 이번 브와슈차크 장관의 방한을 통해 그 제3국이 한국임이 드러났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이번 방한 기간 중 현대로템, 한화디펜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을 현지 실사했다. 현대로템에서는 K2 전차를 직접 둘러봤고 한화디펜스에서는 천무 다연장로켓, 차륜형 대공포, AS-21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차륜형 장갑차 등을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 공장에서는 FA-50 개량형 구매 의사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폴란드 대표단에 육군과 공군 실무자가 대거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이 결재권자인 장관과 실무진이 함께 한국에 와서 구매 대상 무기들을 직접 살펴 보고 의사결정을 하려는 목적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K2 전차 거래는 폴란드로선 독일의 약속 불이행으로 생긴 다급한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한편 한국 입장에선 유럽 방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폴란드 교두보’ 확보의 시작이다. 폴란드는 비세그라드 그룹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다. 앞서 소개한 레오파르트2 계열과 PT-91, T-72 계열 전차 800여 대를 대체하는 차세대 전차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3월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폴란드 제슈프의 미군 기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에서 두 번째). [뉴시스]

3월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폴란드 제슈프의 미군 기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에서 두 번째). [뉴시스]

정부의 외교력 발휘해야

동유럽 무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폴란드가 K2 전차나 K9 차체를 활용한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체계를 현지에서 대량생산해 배치하면 후속군수지원 인프라가 동유럽에 구축된다. 역내 국가들을 한국산 무기를 구입하는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용이해지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군비 증강을 서두르는 동유럽 각국이 ‘1순위 공급자’로 생각하던 독일에 대한 신뢰를 버린 것도 한국에 나쁘지 않은 기회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동유럽 방산 시장이 활짝 열렸다. 이를 겨냥한 ‘폴란드 교두보’ 확보에 정부 차원의 외교력 발휘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동아 1344호 (p44~47)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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