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3

2022.04.01

北 ICBM 도발, 우크라이나 전쟁 후 美 ‘화염과 분노’ 부른다

가짜 화성-17형 ‘블러핑 카드’… 북·중 관계 몸값 높이려는 포석도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2-04-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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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가운데)이 3월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신형 ICBM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가운데)이 3월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신형 ICBM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하고 있다. [뉴스1]

    3월 25일 북한 ‘노동신문’은 미사일 발사 성공 소식으로 도배된 일종의 특집호였다. 북한 당국은 전날 미사일 발사를 대서특필하며 “용감히 쏘라”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친필 명령서와 발사 사진, 뮤직비디오처럼 촬영한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사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시도한 것은 그보다 앞선 3월 16일이었다. 당시 북한은 평양 순안비행장 상공에 카메라와 드론까지 띄워놓고 신형 ICBM 시험발사를 했지만 고도 20㎞에도 다다르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해당 미사일이 2020년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화성-17형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러 미사일 뛰어넘는 덩치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화성-17형은 현존 이동식 ICBM 중 가장 덩치가 큰 미사일이다. 길이 25.8m, 지름 2.6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미사일을 싣고 움직이는 발사 플랫폼도 11축 22륜으로 구성된 초대형 차량이다. 대표적인 대형미사일 모델인 중국 DF-41이 길이 21m·직경 2.25m, 러시아 야르스가 길이 23m·직경 2m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화성-17형이 얼마나 큰지 짐작된다.

    북한이 이처럼 큰 ‘괴물 미사일’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거리 연장과 탄두 중량 증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이미 사거리 1만3000㎞급 화성-15형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러 발의 탄두를 좀 더 멀리 날려 보내려는 것이다. 북한은 2017년 등장한 화성-12형을 시작으로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백두산 엔진’ 파생형 엔진을 ICBM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북한 관영매체는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백두산 엔진의 실체는 우크라이나에서 입수한 RD-250 엔진을 역설계해 조금 다듬은 것이다. RD-250은 냉전 시절 서방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세계 최대 ICBM R-36(SS-18 ‘사탄’)을 위해 개발된 액체연료 방식의 엔진이다.

    2017년 고각 발사돼 정점고도 4475㎞, 수평 비행거리 1000㎞를 기록한 화성-15형은 2단 액체연료 방식의 ICBM이다. 1단 추진체로 백두산 엔진 2개를 묶은 로켓이 사용됐다. 이 미사일은 정상 각도로 발사될 경우 1t 규모 탄두를 1만3000㎞까지 날려 보내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북한이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포함해 동부 주요 대도시를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북한은 2017년 한 해만 16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 21발을 쐈다.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보고 있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미 본토가 사정권인 ICBM급 미사일 6발도 포함됐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며 관영매체와 외무성 담화 등을 통해 “미국 본토가 상상할 수 없는 불바다에 빠져들 것”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그 어떤 최후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는 언사도 했다. 북한 도발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언급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빈센트 브룩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2017년 가을 미국이 실제로 전쟁을 준비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국장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각오하고 멜라니아 여사에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며 작별키스를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은 그 주체가 누구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절대 금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17년 위기는 극적으로 고비를 넘겼다. 당장 북핵 문제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인 한국이 무력 사용에 결사반대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초 개최된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기 극복을 위한 이벤트로 활용했다. 북한과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8년 봄 한반도에 ‘위장된 평화’가 잠시 찾아왔다.



    이때 북한이 못 이기는 척 대화 제안을 받아들이고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 맞설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은 미·중 패권 경쟁이 지금처럼 격화되기 전이었다. 북·중 관계도 최근처럼 긴밀하지 않았다. 북한 처지에선 미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중국이 개입해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당시 막 개발에 성공한 화성-15형은 미 동부 도시들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탑재 가능한 탄두가 1개에 불과했다. 이 정도 전력으로 미국과 붙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북한의 일보 후퇴에 한몫했을 테다. 미국 역시 그 정도 수준의 ICBM은 미사일방어(MD)체계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 북한과 전쟁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화성-17형은 사정이 다르다. 화성-15형보다 커진 덩치로 훨씬 무거운 탄두를 더 멀리 실어 나를 수 있다. ‘3·18혁명 엔진’ 2기를 묶은 화성-15형과 달리 화성-17형은 4개를 묶어 만들어졌다. 추가된 엔진·연료 무게 때문에 사거리와 탑재 중량이 곧장 2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추력 자체는 분명 크게 증가했다. 화성-17형은 전작보다 성능이 상당 수준 향상됐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을 손에 넣고도 더 크고 강력한 미사일 개발에 나선 것은 다탄두화를 위해서다. 미국과 옛 소련 등 강대국은 ICBM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나의 미사일에 탄두 여러 개를 집어넣는 다탄두 재돌입 비행체(Multiple Reentry Vehicle·MRV)를 만들었다. 초창기 MRV는 그저 탄두 여러 개를 동시에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후 등장한 다탄두 개별목표 재돌입 비행체(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MIRV)는 하나의 미사일로 표적 여러 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가령 MIRV가 적용된 미국 트라이던트-II D5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90킬로톤(kt)급 W76-1 핵탄두가 최대 14개 탑재된다. 이 14개 탄두는 고고도에서 분리돼 각각 표적 14개를 90m 오차범위 정확도로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의 ICBM 발사 도발에 한국군은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으로 대응했다. [사진 제공 · 국방부]

    북한의 ICBM 발사 도발에 한국군은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으로 대응했다. [사진 제공 · 국방부]

    국내 민심과 中·美 노린 북한의 거짓말

    최신형 핵미사일에 적용된 다탄두 기동성 재돌입 비행체(Maneuverable Reentry Vehicle·MARV)는 MIRV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개념이다. 종말 단계에서 자세를 제어해 표적을 바꿀 수도 있고, 적의 요격미사일까지 회피할 수 있다. 현존하는 MD체계로는 사실상 대응할 수 없다. 북한 역시 MRV와 MIRV, 더 나아가 MARV 기술에 도달하고자 할 것이다. 화성-17형 개발로 이룬 탑재 중량 증가도 결국 다탄두 기술과 연관된 것이다.

    물론 북한이 3월 24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ICBM은 실제 화성-17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발사 성공을 과시하고자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태양 고도와 그림자 길이, 구름 분포 등을 보면 북한이 공개한 사진·영상이 짜깁기된 조작임을 알 수 있다. 한미연합 정보당국은 신호정보(SIGINT) 분석을 통해 북한이 3월 24일 발사한 미사일은 화성-17형이 아닌 화성-15형이라고 결론 내렸다.

    북한이 이런 거짓말을 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국내 정치용이다. 북한은 3월 16일 진짜 화성-17형 발사 실패를 철저히 함구했다. 화성-17형은 4월 15일 이른바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0년간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내부 선전용 도구다. 식량난이 극심해진 지난해부터 북한 주민은 미사일 시험발사 선전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긴 하다. 그럼에도 미 동부 도시 여러 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ICBM은 ‘치적’과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강력한 아이템이다.

    둘째는 중국을 향한 몸값 부풀리기다. 최근 중국과 밀착하는 북한은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활용해 자기네 몸값을 높이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 전략군을 개편해 그 핵심 임무로 “미·중 충돌 시 중국 방어에 대한 기여와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선언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면 갈등 구도가 다시 부상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에 앞서 몸값을 높여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에 대한 블러핑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출범 1년간 ‘오바마 행정부 시즌2’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북한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내세운 ‘전략적 인내’의 재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미국과 맞설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쳤고 중국이라는 든든한 뒷배도 마련한 북한은 긴 고착 국면을 끝내고 미국과 담판을 짓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제 사회의 오랜 제재로 초토화된 경제를 재건하고 고갈된 통치 자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은 미국 동부지역에 다탄두 핵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화성-17형이라는 카드가 필요했다. 첫 발사가 실패하자 화성-15형을 대역으로 내세워 발사한 뒤 사진과 영상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화성-17형이라는 블러핑 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3월 29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ICBM 발사
도발에 대해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3월 29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ICBM 발사 도발에 대해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北 ICBM 불꽃이 스스로 태울지도

    그러나 북한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지금 미국 백악관과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인사는 대부분 오바마 행정부 출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실제로 북한을 치려고 했던 인물들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하자 ‘참수작전’을 준비했다. 북한 체제 붕괴 후 대량 난민 발생 사태에 대비해 중국과 비상계획 수립 및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서부전구 사령관 자오종치(趙宗岐) 상장이 전구 지휘부를 대동하고 2016년 11월 2일 미 육군 제1군단을 방문해 관련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외정책 역사를 살펴보면 공화당보다 민주당 정부가 호전적인 경우가 많았다. 먼로주의적 성향이 강한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대외관계에서 적극적 개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분쟁의 불씨가 서서히 커질 것이다. 북한은 ICBM으로 쏘아 올린 불씨가 자신들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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