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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발톱’ 중국, 포르투갈 지렛대로 유럽 각개격파 중

EU 순회 의장국 활용…중·동유럽 국가 포섭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패권 발톱’ 중국, 포르투갈 지렛대로 유럽 각개격파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유럽연합 정상들은 지난해 12월 30일 화상회의를 통해 포괄적 투자협정에 합의했다. 
 [EU]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유럽연합 정상들은 지난해 12월 30일 화상회의를 통해 포괄적 투자협정에 합의했다. [EU]

포르투갈은 중국의 21세기판 육상·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유럽 국가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중국의 주요 정책으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무역·교통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시 주석은 2018년 12월 포르투갈 리스본을 방문해 당시 마르셀루 헤벨루 드소자 포르투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일대일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에는 중국이 포르투갈 서남부 항구 시네스(Sines)의 개발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네스는 포르투갈 탐험가이자 인도양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가마(1469~1524)의 고향이다. 이후 포르투갈은 인도양 항로를 따라 인도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진출하면서 유럽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가 됐다. 시네스는 지형적 위치 덕분에 동서항로와 남북항로의 교차점이자 이른바 전략요충지다. 중국은 시네스 항구의 컨테이너 부두 확장 공사를 비롯해 포르투갈의 인프라 건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현재 포르투갈에는 세계 최대 통신 장비업체 화웨이와 20여 개 중국 대기업이 진출해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양국 간 교역은 지난해 69억 달러(약 7조6500억 원)를 기록하면서 2019년보다 4.82%나 늘어났다.


마카오 고리로 호의적 관계

포르투갈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친(親)중국으로 분류된다. 포르투갈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공고히 했다. 특히 포르투갈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퇴출 압박을 거부해왔다. 아우구스투 산투스 실바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포르투갈은 5G 공공입찰에서 화웨이가 경쟁하는 것을 막지 않을 방침”이라며 “포르투갈은 중국을 비롯해 모든 국가의 투자를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도 “중국은 그동안 포르투갈의 법률적 틀과 시장 규칙을 완전히 존중해왔다”며 중국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포르투갈 정부는 프랑스와 독일 등 EU 주요국과 달리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더욱이 중국은 포르투갈과 마카오 주권 이양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서로 호의적 관계를 맺어왔다. 포르투갈은 1999년 12월 20일 식민지였던 마카오의 주권을 중국에 넘겼다. 마카오는 중국 광둥성 남부 주장(珠江) 삼각주 서쪽에 자리한다. 홍콩에서 직선거리로 60km 서쪽,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에선 남쪽으로 145km 떨어진 곳이다. 포르투갈은 1557년 중국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한 후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이곳을 아시아지역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이후 포르투갈은 1887년 중국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해 마카오를 영구 할양받은 데 이어 1951년 해외령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마카오에 대한 중국의 영토 주권을 인정했다. 양국은 1987년 4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마카오 주권 문제를 타결했다. 특히 중국은 마카오에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적용해 외교와 안보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50년간 부여했다. 마카오 입법회(의회)는 홍콩과 달리 2009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등 중국이 원하는 일국양제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2019년 마카오 반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마카오가 일국양제의 모범 사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마카오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중국과 포르투갈은 이처럼 마카오를 고리로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




자국 시장 대폭 개방 약속한 중국

중국과 중·동유럽 17개국은 2월 9일 화상으로 ‘17+1’ 정상회의를 가졌다. [CGTN]

중국과 중·동유럽 17개국은 2월 9일 화상으로 ‘17+1’ 정상회의를 가졌다. [CGTN]

포르투갈은 올해 상반기 EU 순회 의장국이다. 중국은 포르투갈을 지렛대로 EU가 지난해 12월 30일 자국과 합의한 포괄적투자협정(CAI)을 올해 말까지 비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CAI는 EU 27개 회원국과 유럽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발효된다. 이 때문에 시행까지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7년여에 걸친 협상을 통해 양측이 합의한 이 협정의 특징은 중국이 자국 시장을 대폭 개방한다는 것이다. 유럽 기업들은 전기차, 부동산, 광고, 해양산업, 바이오,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내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유럽 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사를 차려야 하는 등의 조건도 폐지된다.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에 강제 기술 이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노동 분야에서도 대폭 양보했다. EU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투자협정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EU의 최대 교역 상대다. EU의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2025억 유로(약 273조 원)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고, 수입도 5.6% 증가한 3835억 유로(약 518조 원)에 달했다. 

중국 입장에서 EU와 투자협정 합의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반중 연합 전선 구축에 균열을 내는 가장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에서 자행된 위구르족의 강제노동 문제를 철폐하라는 EU 측 요구를 수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 중국 정부의 속셈은 이 협정을 통해 EU 27개 회원국을 우군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로선 반중 연합 전선 구축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토머스 라이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이번 합의는 중국이 미국의 포위망을 뚫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폴란드를 비롯해 EU 일부 회원국과 유럽 의회 상당수 의원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홍콩 자치권 침해 등 인권 문제를 이유로 이 협정 비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 의회는 1월 21일 “홍콩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대한 인권 침해를 고려하지 않고 중국과 서둘러 투자협정에 합의함으로써 인권을 보호해야 할 EU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해할 위험을 자초했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럽 의회는 또 “앞으로 중국과의 투자협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며, 투자협정을 비준할 때 중국의 인권 상황을 감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ILO의 국제 노동기준을 준수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중·동유럽 국가에 코로나19 백신 지원

중국 정부는 이런 반대를 무마하고자 포르투갈을 앞세워 EU 회원국과 유럽 의회를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장밍 주유럽연합 중국대사는 “포르투갈이 EU 의장국으로서 회원국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협정 비준에 관한 검토를 마치라고 독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포르투갈은 EU 의장국으로서 각종 민감한 현안과 관련해 회원국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교착 상태를 해결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포르투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중·동유럽 국가에 대한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2월 9일 열린 중·동부 유럽(CEEC) 17개 국가와의 경제협력기구인 ‘17+1’ 화상 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지원과 교역량 확대를 약속했다. 시 주석은 앞으로 5년간 1700억 달러(약 188조7850억 원) 이상의 상품을 중·동부 유럽국으로부터 수입하고 농산물 수입액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 간 협력은 다자주의의 실천이며 중·유럽 관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강조했다. 당시 정상회의에 참여한 중·동부 유럽 국가 가운데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12개국은 EU 회원국이다. 시 주석이 중·동유럽 국가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들 12개국이 투자협정에 비준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실제로 헝가리와 체코 등을 상대로 자국산 코로나19 백신 구입을 지원해왔다. 헝가리는 2월 15일 EU 회원국 중 최초로 중국 제약사 시노팜의 백신을 구입해 초기 물량 55만 도스(1회 접종 분)를 인도받았다. 헝가리 정부는 향후 4개월에 걸쳐 총 500만 도스를 받을 예정이다. 시노팜 백신은 두 차례 접종이 필요해 헝가리 인구 1000만 명 중 25%에 해당하는 250만 명에게 주사할 수 있는 분량이다. 부크 부카노비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공급 지원의 이면에는 유럽에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우군 만들기 전략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중국 정부는 유럽에서 우군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1279호 (p42~44)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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