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5

2019.09.06

‘불황러가 사는 법’ ⑥

밥값 아껴 고양이 간식 사는 ‘욜테크族’

“할인·포인트 챙기면서도 날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쓴다”

  • 정보라 기자

    purple7@donga.com

    입력2019-09-09 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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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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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직장인 최주영(37) 씨는 ‘푼돈’을 모아 ‘큰돈’을 마련했다. 물건 살 때 쿠폰이나 포인트를 사용해 할인을 받았다면, 할인된 금액만큼 따로 저축했다. 5000원짜리 커피를 10% 할인받아 4500원에 샀다면 500원을 통장에 저금하는 방식이다. 또 적금이나 예금 통장에 이자가 들어오면 이자만 인출해 다른 통장에 넣어뒀다. 길 가다 주운 동전도, 빈 병을 모아 바꾼 현금도 모두 저축했다.

    40개 앱에 매일 ‘출첵’해 월 10만 원 벌어

    [GettyImages, 사진 제공 ·임예슬]

    [GettyImages, 사진 제공 ·임예슬]

    최씨는 “회사에서 번 돈이 아니라면 마음껏 쓰자는 생각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6원, 100원이라도 매일 저축했다. 처음 한 달 동안 모은 돈은 3만 원도 채 안 됐다. 하지만 10여 년간 꼬박 모으자 200만 원이 넘었다. 2년 전 이 돈으로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2 주부 임예슬(32) 씨는 ‘앱테크’(Apptech·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것)로 포인트를 모아 생필품을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2개의 스마트폰에 은행, 편의점, 쇼핑몰, 택배회사, 걷기 프로그램 등 다양한 앱을 각각 16개, 25개씩 설치했다. 임씨는 매일 각 앱에 접속해 출석체크(출첵)를 하거나 퀴즈를 풀고, 간간이 택배송장 등록을 하며 포인트를 모은다. 6월에는 어느 간편결제 앱을 통해 주민세를 납부하면 포인트를 환급해주는 이벤트에 참여해 2000포인트를 받았다. 이런 노력으로 그가 얻는 소득은 한 달에 10만 원 가까이 된다. 

    임씨는 “퀴즈를 풀면 10~15포인트, 택배송장을 등록하면 40포인트가 적립된다. 적은 포인트지만 열심히 모으면 커진다. 한 달간 매일 빠짐없이 출석체크를 하면 3000포인트를 보너스로 얹어주는 앱도 있다. 며칠 전에는 편의점 앱에서 하는 이벤트에 참여해 남편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먹었다. 비록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2개였지만, 남편과 소소한 데이트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욜테크’가 인기다. 욜테크란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와 소비를 줄이거나 아주 적은 이자 수익이라도 모아 저축하는 ‘짠테크’를 합친 신조어. 적은 돈이라도 아끼고 모아 행복감을 느끼는 데 쓴다는 뜻이다. 



    9월 초 현재 기준금리는 연 1.50%. 시중은행에는 금리가 0%대인 정기예금 상품도 나왔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8월 26일 기준 신한은행의 S드림 정기예금 1개월 만기 상품 금리가 연 0.8%로, 현재 판매 중인 시중은행 예·적금 상품 가운데 가장 금리가 낮다. 금리가 가장 높은 상품이더라도 연 1.25%에 불과하다. 

    그런데 저금리가 강화되자 저축이 오히려 늘었다. 신한은행의 ‘2019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총소득에서 저축과 투자의 비중이 2017년 23.2%에서 2018년 24.4%로 1.2%p 증가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가 낮아지면 저축액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떨어지면 적어지는 이자 때문에 돈을 모으려고 저축을 더 많이 하는 것”이라며 “적금으로 1년에 1000만 원을 모은다고 가정해보자. 이자율이 연 10%라면 매달 79만6820원을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이자율이 1%로 낮아지면 월 납부액은 82만9532원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초저금리 시대 욜테크족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비를 줄이는 노하우를 적극 공유한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온라인 카페 ‘짠돌이’는 73만 명, 네이버 온라인 카페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와 ‘짠돌이 부자되기’는 각각 48만 명과 19만 명의 회원을 불러 모았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은행 예금이자 수익 연 10만 원을 벌려면 1000만 원이 있어야 하지만, 씀씀이를 연 10만 원 줄이면 1000만 원을 갖고 있는 효과가 난다”는 말이 오간다. 7월에는 짠테크 노하우에 대한 글을 모은 ‘1일 1짠 돈 습관’이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자 내려가도 저축하는 이유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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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들의 욜테크는 무조건 소비를 줄이던 자린고비와는 다르다. 이들은 필요 없는 소비는 줄이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기꺼이 돈을 쓴다. 1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펴낸 ‘밀레니얼의 부상과 가치관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기성세대의 주요 저축 목적은 노후 대비에 집중돼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여행과 자기계발 같은 즐거움을 위해 저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양모(25·여) 씨는 대학생 때 자취생활을 하며 짠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면서 4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가계부를 쓰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친구들과 식사, 영화 관람, 여행이다. 혼자 밥 먹을 때는 되도록 돈을 아끼고,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동통신사 할인 혜택을 꼬박꼬박 챙겨 매달 영화 1편도 무료로 본다. 그는 “친구와 3박 4일 일정으로 대만 여행을 갔을 때 여행 경비로 50만 원을 예상했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돈이 남았다. 남은 돈을 전부 털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샀다”고 했다. 

    직장인 강모(35·서울 종로구) 씨의 취미는 영상 촬영. 교통비, 의류 구입비를 줄여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산다. 그는 “지난 2년간 속옷과 양말을 제외하고 옷을 사지 않았다. 티셔츠 목이 늘어나거나, 니트의 보풀이 정말 심하게 생기면 그제야 새 옷을 산다.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막차를 놓쳤다. 택시비를 아끼려고 집까지 10km를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로 달렸다. 그리고 촬영 장비용 가방을 15만 원 주고 샀다”고 말했다. 

    직장인 심모(33·여) 씨는 친오빠와 둘이 산다. 월세는 오빠가, 식비는 자신이 부담하는데, 자신의 용돈까지 합해 월 35만 원을 지출한다. 그는 돈을 절약하려고 되도록 집에서 밥을 해 먹고, 퇴근 후 설문조사 등의 아르바이트로 매달 30만 원을 번다. 하지만 취미 생활에 돈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연극을 좋아한다. 최근 꼭 보고 싶은 연극 티켓을 4만 원 주고 예매했다. 지난달에는 야구장에서 간식 사 먹는 데만 2만 원 넘게 썼다. 130만 원짜리 노트북컴퓨터도 샀다. 성능이 좋으면서도 가벼운 것을 찾다 보니 다소 비싼 제품을 골랐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주영 씨는 “돈을 아예 안 쓰는 게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추구한다. 1만 원짜리 물건을 9000원에 사고, 나머지 1000원은 좋아하는 일에 쓰는 거다. 지난해 여름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는데, 반려묘에 쓰는 돈은 웬만하면 아끼지 않는다. 내가 쓸 식비를 줄여 고양이 간식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내 집 마련? 물론 하고 싶지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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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를 줄여가며 짠테크에 나서는 주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하 교수는 “앞으로 돈을 많이 벌 것으로 기대된다면 현재 소비를 늘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 예상되므로 그에 대비하고자 저축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1일 딜로이트컨설팅이 공개한 ‘2019 딜로이트 밀레니얼 서베이’에 따르면 1983년에서 1994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 밀레니얼 세대가 올해 국내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의 26%가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딜로이트컨설팅 관계자는 “한국 밀레니얼 세대는 낮은 고용의 질과 불안정한 구직 형태 때문에 불만이 높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고 분석했다. 

    강씨는 13㎡ 원룸에 산다. 그는 “물론 내 집 마련을 하고 싶다.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다니는데, 업계가 열악하고 회사도 영세해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되도록 아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주영 씨는 20대 때 회사가 부도가 나 몇 달간 월급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사기를 당해 7000만 원을 잃었다. 그 후로는 월급의 절반은 무조건 저축하고, 생활비를 아껴 추가로 더 저축한다”고 말했다. 

    욜테크족은 “소비를 줄여 얻는 이득이 돈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갑을 열기 전 정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월급은 전액 저축하고 주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또 다른 직장인 강모 씨는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게 습관이 됐다. 집에 물건이 별로 없다 보니 신경 쓰거나 관리할 것도 없어 편하다. 커피와 간식 지출을 줄였더니 피부에 나던 뾰루지가 사라지고 몸도 더 개운해졌다”고 말했다.


    ‘나’에 집중하며 건강 찾는 방법이기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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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예슬 씨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아파트 단칸방 월세로 신혼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집주인이 보증금 3000만 원을 들고 도망가는 일을 당했다. 충격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테크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저들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고 말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강씨는 야식의 유혹을 가계부로 극복하며 돈도 절약하고 건강도 되찾았다. 그는 “거의 매일 야식으로 배달 음식을 시키다 보니 많이 먹고, 늦게 자고, 살도 쪘다. 가계부를 쓰면서부터 자제력이 생겼다. 내게 절약은 단지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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