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0

2018.01.03

북한

KOREA INVISIBLE WAR

낮엔 대북방송, 밤엔 대남방송 … DMZ 남북소음전쟁 2년의 기록

  • 입력2018-01-02 17: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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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 [동아DB]

    경기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 [동아DB]

    1월 8일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우리 정부가 의도했던 목적은 얼마나 달성됐을까.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도 지난 2년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횟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오히려 이 시기 북한은 핵실험을 3차례 더 감행했고, 미사일 도발은 20여 회에 달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핵 · 미사일 억제 효과를 논하기에 북한의 도발 횟수는 너무 많고 도발 수위도 크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얼마 전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 군인이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한국 유명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는 점과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대북 확성기 방송의 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안보 전문가들 역시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그 대상이 북한 군인 또는 주민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청취율을 검증할 수 없다. 즉 방송 효과를 확인할 과학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 다만 귀순 병사의 증언이나 탈북자 심문 과정에서 나온 진술 등을 통해 그 효과를 짐작하는 수준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지난 2년을 돌아봤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노무현 정부 2년 차이던 2004년 6월 15일 군사분계선에 설치돼 있던 대북방송용 확성기를 모두 철거하면서 전면 중단됐다. 그러다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8월 10일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했다.

    심리전에 동원된 걸그룹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사진공동취재단]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사진공동취재단]

    당시에는 북한의 젊은 군인들이 좋아할 만한 여자가수들의 노래를 주로 틀었다. 당시 한 매체는 군 관계자의 얘기를 인용해 ‘남측 가수들의 가요를 자주 트는 것도 북한 군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전략’이라며 ‘북측에 대한 무조건적 비방보다 북한의 젊은 군인들도 좋아할 만한 여자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거나 일상적인 뉴스, 국제뉴스, 스포츠, 날씨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내보내면서 신뢰도를 높여 정서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큰 심리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도했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도 당시 원더걸스 ‘I Feel You’,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아이유 ‘마음’, 빅뱅 ‘뱅뱅뱅’ 등 우리 군 장병들도 좋아할 만한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대북 확성기를 통해 북한에 내보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1년 만에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그해 8월 말 이뤄진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로 곧 중단된다.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에 이은 포격 사건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2015년 8월,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6개 항에 합의했는데 그중 세 번째 합의사항이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는 남측에선 당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조선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문제가 핵심 의제로 등장할 만큼 북측이 민감해한다는 게 당시 우리 당국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로 중단됐던 대북 확성기 방송은 넉 달 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재개된다. 북한 핵실험을 비정상적 사태로 보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 당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 당국이 민감해하는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 당국을 괴롭히는 수준 외에 우리 정부가 북한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대남 확성기 방송을 불러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나흘 만인 2016년 1월 12일 곧바로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했기 때문. 한반도에 음성 미사일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한 것이다. 

    우리 측이 북한의 핵실험을 응징하고자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기로 남북소음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다 됐다. 그동안 우리 군은 확성기 전쟁을 얼마나 잘 수행해왔을까. 

    국방부는 ‘작전’과 ‘보안’을 이유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시간과 장소, 내용 등에 대한 ‘주간동아’의 취재에 일절 함구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하루에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6시간 등 하루 평균 13시간씩 실시되고 있다. 국방부의 얘기대로라면 비교적 충실히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의 또 다른 자료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진실성을 의심케 한다. 하루 평균 13시간씩 155마일(약 250km)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송출된 한국가요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가요 송출 횟수 미스터리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망원경을 통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을 관찰하고 있다. [동아DB]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망원경을 통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지역을 관찰하고 있다. [동아DB]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7년 1월 1일부터 11월 26일까지 대북 확성기를 통해 송출한 노래 가운데 가장 많이 튼 것은 방미의 ‘날 보러 와요’였는데 14번에 불과했다(9쪽 표 참조). 이뿐 아니라 상위 50곡 가운데 20곡은 4번 송출에 그쳤다. 상위 50곡의 송출 횟수를 모두 합쳐도 265회에 불과했다. 국방부 자료가 사실이라면 1월 1일부터 11월 27일까지 330일 동안 하루에 한 곡도 채 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2017년 1월 3일 국방부는 대북 심리전을 위해 성능이 향상된 대북 확성기의 전력화를 2016년 12월 23일 마쳤다며 신형 확성기는 고정형 확성기 24대, 기동형 확성기 16대 등 총 40대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사실이라면, 대북 확성기는 대폭 늘렸으면서도 정작 가요 방송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송출된 50곡 전체의 송출 시간을 모두 합쳐도 고작 하루 분량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국방부 자료는 사실과 크게 다를 개연성이 높다. 서부전선 한 접경지 마을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에서 하루에 울려 퍼진 가요 송출 시간만도 최소 1시간 내외로, 12곡 이상이 송출됐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오전과 오후 1시간 남짓, 주말에는 2시간 가까이 가요만 방송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따금 낭랑한 목소리의 젊은 여성과 굵고 밝은 목소리의 젊은 남성이 북한의 인권 실상, 남한의 발전상 등을 주제로 대화하는 내용도 대북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지만 대개 가요를 튼다. 11월 이후 하루 한 번꼴로 서부전선 한 접경지역 대북방송에서 흘러나왔던 송대관의 ‘네 박자’가 송출 횟수에서 빠진 것도 미스터리다. 

    실상과 다른 대북 확성기를 통한 가요 송출 횟수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국방부 관계자에게 12월 20일 전화를 통해 문의했지만 국방부 심리전단 소속 이 모 소령은 “합참 ◯◯◯과의 통제를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합참 ◯◯◯과에 문의하라”며 ‘자료에 기재된 가요 송출 횟수’와 관련한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고, 합참 ◯◯◯과의 박 모 중령은 “군사 작전상 답변할 수 없는 보안 사항”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작전’과 ‘보안’에 가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실효성은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북한 체제 흔들 수 있다”

    안보 군사 전문가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대북 심리전 효과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군사분계선 인근에 주둔하는 수만 명의 북한 장병에게 케이팝(K-pop) 등을 지속적으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북한 체제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고 봤다. 

    김정봉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은 “북한 군인들은 전방에서 보통 10년간 근무하는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적으로 들려주면 제대할 무렵 한국의 아이돌 가수 노래 수십 곡을 외울 정도가 된다”며 “북한 장병들에게 한류를 전파하면 북한 체제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얼마 전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오청성이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2016년 본격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대북 확성기 방송이) 대단히 파괴적이지는 않지만, 그 나름 효과가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신 대표는 “군사분계선 인근에 주둔 중인 북한 병사들에게 우리 걸그룹의 노래와 뉴스를 들려주는 것이 곧 자유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파하는 효과가 있다”며 “인종,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 것처럼 북한 젊은이들의 정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군 20여 대대가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북한은 우리보다 더 많은 병력이 군사분계선 인근에 주둔 중”이라며 “임무 교대하는 병력까지 감안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는 북한 병사는 최소 3만~4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신 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고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대북 확성기 방송뿐 아니라 전광판을 통해 영상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시설물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접경지 주민,
    “확성기 전쟁 속 국민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

    우리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심리전 효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 군 장병과 접경지 주민들 역시 밤낮으로 계속되는 확성기 방송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마주하고 있는 서부전선 한 마을을 예로 들면 우리 군 당국이 대북방송을 하는 시간은 대개 오전 일찍, 오후 늦은 시간이다. 방송 내용도 트로트 중심의 가요를 트는 정도다. 이따금 대담을 방송하기도 하지만 자동차 소음 등에 뒤섞여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가요는 멜로디가 익숙해 대담에 비해 잘 들리는 편이다. 

    반면 북측이 남한을 향해 쏴대는 대남방송은 대부분 밤늦은 시간에 송출된다. 그것도 오후 10시, 심지어 자정 넘은 심야시간대에 대남방송을 한다. 가요 중심의 남측 대북방송이 끝나면 북측에서 ‘위대한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대남방송이 나오기 일쑤다. 

    야심한 밤에는 소음이 적어 대남방송이 비교적 뚜렷이 들린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를 비판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이 많이 나왔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군사옵션을 거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북한 역시 노래를 내보내는 시간이 적잖다. ‘김정은 장군’이란 가사로 끝나는 김정은을 주제로 한 노래는 대남방송을 할 때면 빠지지 않고 트는 레퍼토리다. 

    밤늦은 시간에 대북방송을 자제하는 우리 군 당국과 달리 북한은 모두가 잠든 시간대, 심지어 새벽 2시 무렵에도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시끄럽게 대남방송을 내보내기도 한다. 

    2년째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에 따른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한 접경지 주민은 “확성기를 통한 남북한 소음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는 접경지 거주민을 방치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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