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공부 안 하는 젊은 피 ‘정권심판’ 타령만

운동권 족보와 패권 버려야 ‘제2 노무현’ 가능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08-17 14: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공부 안 하는 젊은 피 ‘정권심판’ 타령만
    그들도 한때는 환영받았다. 새로운 피였다. 학생운동권 시절 화려한 경력과 옥살이 훈장을 하나씩 달고 당당하게 정치권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일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이인영과 오영식,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우상호,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 임종석이 그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들이 민주화를 완성해주길 바랐고 처음에는 그들도 열심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30대라서 386이라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486 또는 586, 통칭해 86세대로 통한다. 2000년에는 초선 국회의원이었지만 지금은 재선 또는 3선 국회의원이다. 이들처럼 각광받지는 못했지만 여의도 정치권에는 수많은 486 또는 586세대가 활동 중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보좌진 또는 당직자 중에도 86세대가 적잖다. 이들은 양지에서 또 음지에서 대한민국 정치를 설계하고 실행 중이다.

    최근 이들에 대한 성토 목소리가 높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혁신위원회의 이동학 혁신위원은 7월 15일 ‘586 전상서-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공개서신을 통해 86세대 대표주자인 이인영 의원에게 내년 총선에서 적진 출마를 요구했다. 그가 지적한 문제점은 첫째 새로운 비전과 정책 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것, 둘째 계파정치를 심화한 것, 셋째 후배 그룹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새누리당으로 간 또 다른 86세대 하태경 의원은 이들의 문제로 3무(無)를 들었다. 비전이 없고 소신도 없으며 용기까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문제점을 족보를 떠받들고, 변화를 싫어하며, 공부에 소홀하다는 세 가지로 본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많은 사람을 사귈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노동운동을 하느라 또다시 사람을 넓게 사귈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들의 인적네트워크는 운동권 출신이라는 범주에 갇혀버렸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그들은 민주화운동 선배들의 라인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딱히 그 라인을 벗어날 이유도 없었다.

    족보를 떠받든다



    민주화운동 선배, 학생운동권 동료와 선후배, 그것이 그들이 아는 최고의 족보다. 그 족보 밖 인간은 그저 민중일 뿐이다. 당연히 신뢰하지 않는다. 족보 내 선후배만 해도 넘쳐난다. 족보 밖 중생까지 사귀고 챙길 이유도, 여유도 없다.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들은 ‘잘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함께 일하자고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들이 정치활동을 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불러들인 이들 역시 운동권 출신이었던 이유다.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에 운동권 출신 보좌진까지. 완벽한 조합이었지만, 외부인 눈에는 폐쇄적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했다. 이런 게 바로 계파정치다.

    이미 자급자족적인 성안에서 변화를 추구할 이유는 없다. 국회의원도, 보좌진도 생각이 똑같으니 환상조합 아니던가.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반대세력을 반민주로 몰아붙이며 정권심판만 외쳐댈 뿐이었다. 그렇게 연속해 선거에서 패했지만, 이들의 사고는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국회의원 자리를 꿰찬 초년 성공을 했으니 말이다. 그때의 그 영광을 잊지 못하는 이들로서는 또다시 그 영광을 재현하고픈 욕구가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에게 그것은 빛바랜 사진 속 역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직도 청년의 심정으로 그들 편에 서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는 ‘58세 아저씨가 힙합바지를 입은 꼰대정치’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직 ‘정권심판’뿐, 변화를 싫어한다

    공부 안 하는 젊은 피 ‘정권심판’ 타령만
    국회의원이라는 지위에 안주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 16대 총선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이른바 ‘탄돌이’가 대거 탄생했다. 대부분 86세대다. 열린우리당의 주력군이던 이들은 2008년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로부터

    4년여 동안 야인생활을 한 뒤에야 이들은 다시 국회의원 신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에서 낙마한 뒤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이들은 모아둔 돈마저 없어 꽤나 고생했다. 이렇게 제 나름 힘든 과정을 거쳐 다시 국회의원이 됐으니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당연히 체면 불구하고 재선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염치없는 정치인으로 변하고 말았다. 구시대 정치인과 차별성도 사라진 것이다. 패권주의로 비난받는 새정연 친노(친노무현)계 국회의원들의 모습이다.

    이 점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운동권 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새가 어디 있었겠는가. 문제는 국회의원 당선 이후다. 공부가 부족하면 어떤 분야든 붙잡고 노력해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 뺨칠 정도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많다. 지역구 관리도 해야지, 의정활동도 해야지, 당직활동도 해야지. 솔직히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하는 일 없이 바쁜 것은 맞다. 그래도 새로운 피로 국회에 수혈됐다면, 그에 합당하게 미국 하원의원 이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처음에는 초년 성공의 단맛에 빠져서 그랬다 치자. 하지만 초년 성공에 우쭐한 나머지 곧바로 중진급 국회의원처럼 놀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른바 큰 정치한답시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권력놀음에 빠지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정치 초년 시절을 집권 여당 국회의원 신분으로 보냈다. 부처 고위 공직자들이 의원님이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속에서 갑의 지위를 한껏 누리며 지낸 것이다. 당연히 공부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을 터다.

    얼마 전 민동용 동아일보 차장이 51세 당시의 정동영 전 새정연 상임고문과 지금 51세인 새정연 이인영 의원을 비교하는 글을 썼다. 같은 나이에 재선 국회의원이었지만 정치적 비중에는 큰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었다. 이 의원은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적자로도 유명하다. 정 전 고문까지 갈 것도 없다. 김근태 전 고문의 50대와 비교하더라도 정치적 비중 면에서는 족탈불급일 정도다. 이 의원은 그래도 86세대 의원 중에서는 양질이다. 나머지는 공부가 더 부족해 보인다.

    문제 안에 답도 있다. 족보를 버리고, 변화를 하고, 공부에 열중하면 86세대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누가 그 기회의 문을 열고 제2 노무현으로 탄생할지 두고 볼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