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드려요”

사교육 시장만 부풀린 인성교육진흥법…이미지 메이킹·화술 기본, 5회 80만 원 고액 과외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6-08 10: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드려요”

    서울 한 사설학원에서 학생들의 인성계발을 위한 스피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박모(44·여) 씨는 고교 2학년 딸과 함께 한 입시학원을 찾았다. 2016년도 대학입학 수시 모집에서 인성면접 평가가 확대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도대체 인성 평가 기준이 뭔지 궁금해 입시학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수험생의 발길이 사설학원의 ‘인성면접’ 대비 과정에 쏠리고 있다. 인성면접이란 기업, 대학, 특수목적고교 등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지원자의 정신적 소양을 평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은 도덕성만이 아니다. 가치관, 리더십, 시민의식, 준법정신, 공동체 의식, 전공(직무)에 대한 이해 등을 포함한다.

    학원가에서 인성면접 교육이 성행하는 이유는 7월 21일부터 시행될 ‘인성교육진흥법’ 때문이다. 이 법은 세계 최초 ‘인성교육’ 관련법으로, 인성교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행령 제정안은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 수립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성교육 지원 △인성교육 추진 성과 및 활동 평가 △교원 연수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교육부 인성체육예술교육과 관계자는 법이 제정된 배경에 대해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를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5월 26일 법안이 발의됐고, 12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이 강화되고 각 대학의 입학시험에도 인성면접 비중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대세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모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인성면접 평가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드려요”

    2011년 서울 관악구 서울여상 학생들이 모의면접 실습을 하고 있다.

    “미소·눈빛까지 만들어드려요”

    하지만 일부 사설학원은 ‘인성’을 매개로 교육을 왜곡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으로 보이게끔 단시간에 만들어주겠다’고 선전한다. 주로 화술과 면접을 가르치는 스피치 학원들이다.

    부산 P스피치학원은 아나운서 출신 강사진이 면접 대비 화술을 가르친다. 이 학원 관계자는 “성격이 삐딱한 아이도 표정이나 말투 교정을 통해 인성이 좋아 보이게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나쁜 성격이 얼굴에 드러나면 이미지 변화를 도와준다. 말투나 미소, 눈빛은 인성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면접관의 시선을 피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인성점수가 깎인다. 그래서 먼저 많이 웃으라고 조언하고 눈웃음, 입꼬리 모양, 표준어, 앉은 자세와 태도 등을 세세하게 고쳐준다. 비용은 회당 16만 원이고 보통 5회 일정으로 짠다.”

    ‘인성면접은 실제 인성보다 화법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학원도 있다. 서울 F스피치학원 관계자는 “아이들 인성은 비슷하다. 시험 당락은 표현력이 좌우한다”고 말했다.

    “인성면접은 착한 품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차이다. 수학에 공식이 있듯이, 인성과 역량도 말로 표현하는 공식이 있다. 육하원칙을 지키고 성격은 장점부터 이야기한다는 등의 방식이 있다. 그것을 훈련해 체화하는 거다. 그러면 면접관들에게 확실히 호감을 준다.”

    이 학원 관계자는 “입시에서 인성면접 비중이 강화되면 성적이 좋아도 인성면접 때문에 불합격할 위험이 커진다”며 “인성면접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준비하라”고 부추겼다.

    “우리 학원에 국제중, 특목고 준비하는 어린아이도 많다. 표현력이 부족하면 단기간에 수업을 못 따라간다. 고등학생은 2학년 여름방학이 마지막 기회다. 보통 기본훈련 7주에 60만 원 과정, 면접 대비 10회에 50만 원 과정을 차례로 듣는다. 발 빠른 어머니들은 이미 다 아이를 등록시켰다.”

    서울 G입시학원 관계자는 “인성면접에서 ‘선과 악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악’에 해당하는 답을 말해도 그것이 ‘선’인 것처럼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인성면접 사교육 열풍에 아이들의 불안도 증폭된다. 특히 대도시 외 지역의 학생들은 이러한 학원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경기 광명시 B고교에 다니는 김모(17·여) 학생은 “인성면접 과외는 나를 가식적으로 포장하는 것 같아서 반감이 들지만, 기회가 되면 받아보고 싶다. 하지만 기회가 안 올 것 같다. 너무 비싸서”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윤모(17) 학생은 “수시모집 확대로 학교생활만 성실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젠 돈 내고 인성을 만들라는 건가. 나만 뒤처질까 봐 두렵고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모 사립대 입학사정관의 솔직 토로

    “인성 평가기준 모호…상위권 대학일수록 영향력 낮을 것”


    대학입학 인성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수험생이 많다. 대학입학시험에서 인성면접 평가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하지만 인성면접이 성적의 우열을 뒤집을 만큼 영향력이 클까. 익명을 요구한 서울 모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당분간은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올라갈수록 인성 점수 영향력은 작다. 특히 ‘SKY’(서울·고려·연세대)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인성면접은 면접관에 따라 주관적인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데,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온 학생의 합격 여부를 주관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지 않나. 특히 ‘자기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같은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다. 경영학과와 사회복지학과 지원자의 답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대도시에 비해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생들은 인성면접에 대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도덕성, 리더십, 가치관, 시민의식 등을 어린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 입학사정관은 “대학에서 보는 인성면접은 기본적인 대학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면접 대비를 할 기회가 적다. 면접관은 서류에서 이런 사실을 미리 파악한다. 학생이 말을 잘 못하면 분위기를 편안하게 주도해 용기를 주고, 학생이 적극적으로 답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다. 인성면접은 사실 자기소개서나 생활기록부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답변이 나온다고 점수를 더 잘 주는 건 아니다. 내용의 진정성 없이 ‘말빨’만 좋다고 점수를 올려주지도 않는다. 학교 다닐 때 폭력 사건에 관련되는 등 극히 나쁜 이력이 없으면 무난하다. 무엇보다 대학 4년 동안 성숙한 인격체로 자라날 기회가 충분히 있다. 자신이 완벽한 인성과 리더십을 갖고 면접관 앞에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말길 바란다.”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드려요”

    대학입학에서 인성 평가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서울 잠실여고에서 교사들이 3학년생을 대상으로 모의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진정성 없는 매너는 면접 도움 안 돼”

    이미지·화술에 기반한 면접 연습은 과연 입시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2016년 일부 수시 모집 전형에서 인성 평가를 반영하는 건국대 입학사정관실 관계자는 인성면접 과외에 대해 회의적이다. 인성면접은 자기소개서나 학생부 기록을 척도로 성실한 학교생활을 평가하는 것이지, 매너나 화술을 돈 주고 교육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가끔 고액 면접 과외를 받고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는 수험생들이 있다. 하지만 콘텐츠가 부실하면 ‘과하게 치장했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표현력만 부족한 것인지, 소양 자체가 부족한 것인지 단박에 알아본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지 포장된 매너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성면접 과외 열풍을 조장하는 것은 사교육기관들이다. 학원마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광고하고, 불안감을 느낀 학부모는 수십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며, 아이들은 ‘착해 보이도록’ 연출하는 법을 배운다. 자기소개서는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 대필 가능하고, 학원에서는 첨삭을 통해 ‘모범 답안’을 써준다. 이런 식으로 ‘스킬’ 위주의 면접 훈련이 반복된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교육이 아이들 인성을 오히려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학원에서는 면접관 마음에 들 만한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외우게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속마음이 어떻든 이렇게 표현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만 하느라 인생의 철학적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강사가 제시해준 ‘모범 답안’을 베끼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정혜숙 크레파스에듀 교육원 원장은 “원래 인성의 8대 영역은 감정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동기, 정서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태도, 본능 충족에 따라 달라지는 근면성과 책임성, 건전한 자아 형성에 따라 표현되는 자주성과 협동성, 냉철한 초자아에 의해 결정되는 준법성과 지도성”이라며 “인성교육은 아이의 건강한 사고에서 형성된다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교육 속 인성 함양’은 이미 교육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교육기본법 제9조 3항은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人性)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성교육진흥법이 새로 시행됨으로써 ‘교육기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국가가 인정하는 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성병창 부산교육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의 본질에 인성교육이 포함돼 있는데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증진한다는 것은 기본 교육을 포기한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교원 연수나 인성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인성을 계발한다는 발상이 잘못됐다. 교육의 기본인 지·덕·체 훈련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성이 길러져야 하는데 따로 인성교육을 수업처럼 추가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정책’ 아니겠는가. 그리고 인성은 학교만 책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가정교육과 연계되지 않으면 성과가 미미하다. 학부모도 아이의 건강한 인성을 키우는 데 장기적으로 관심을 갖고, 일부 학원에 의해 아이의 순수한 인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드려요”
    세계 최초 ‘인성교육진흥법’ 대체 뭔가

    학교마다 인성 관련 교육과정 개설, 교사들은 “툭 하면 교원 연수, 효과는 회의적”


    7월 21일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전국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이 의무화된다. 5월 13일 입법예고된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교육부 장관은 인성교육진흥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교에 대한 인성교육 목표와 성취 기준을 마련하고, 각 학교장은 인성교육에 관한 교육과정을 학년별로 운영해야 한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무상으로 보급하며, 각 시도는 지역 교육감과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인성교육행정협의회를 둬야 한다. 교원 연수 시 인성교육도 의무화된다. 교원 연수기관의 장은 15시간 이상의 직무연수 과정을 개설할 때 총 이수시간의 10% 이상을 인성교육 관련 과목에 할당해야 한다. 이 조항은 원래 교원의 인성교육 관련 연수를 연간 15시간 이상으로 추가할 예정이었지만 ‘교사의 부담만 가중한다’는 일부 교육계의 반발에 따라 기존 연수 중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할당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인성교육진흥법을 바라보는 일선 교사들의 눈은 곱지 않다. 서울 송파구 B초교 교사 김모(31·여) 씨는 “교육부는 문제만 생기면 교원 연수부터 강화한다”고 꼬집었다.

    “아이들 인성 문제는 가정교육, 사회 분위기가 결합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에서는 뭔가 단기적인 정책을 내놔야 할 테고 가장 쉬운 것이 교원 연수 강화 아닌가. 교사가 아이들을 방치해뒀으니 교사부터 교육받으라는 식의 정책은 사기를 떨어뜨린다. 이미 청렴, 안전, 성희롱 방지 등 연수가 많은데 인성교육 연수까지 생기니 부담이 너무 크다. 정작 아이들 인성에 해를 끼치는 것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이다. 교사가 통제하지 못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불량한 것을 보고 쉽게 모방해버린다.”

    대전 C고교 교사 전모(34·여) 씨도 “고등학생처럼 이미 성장한 아이들일수록 학교에서 받는 인성교육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등학생은 교사가 설명하는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오히려 또래집단의 영향에 더 민감하다. 현재 대두되는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은 처벌이 강화돼야 할 문제지 수업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성은 지식처럼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간과하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바른 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