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2

2015.04.06

“숨 쉬기도 무서워요” 불안장애가 도대체 뭐기에…

정신질환 부기장의 ‘자살 추락’ 등 사건·사고 속출…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원인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4-06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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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객기 알프스 산악지대 추락, 탑승객 150명 전원 사망.’ 3월 24일 일어난 독일 저먼윙스 비행기 사고의 결과다. 독일 수사당국은 이 여객기의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의 정신질환 증세를 단서로 잡고 있다. 루비츠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일종인 ‘범불안장애’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옛 여자친구는 독일 잡지 ‘빌트’와 인터뷰에서 “루비츠가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스트레스가 컸고, 밤에 자다 ‘추락이다!’라고 외치면서 깨기도 했다”고 밝혔다. 루비츠는 사고 전 ‘모든 사람이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유언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독일 여론은 이 말을 인용하며 ‘그의 불안장애가 고의적인 사고를 유발했을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불안장애는 ‘병적 불안’이 주요 증상인 정신질환이다. 병적 불안은 개인이 불안 정도나 수준을 스스로 예측할 수 없고 불안을 통제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하는 경우가 잦을 때 해당된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공포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강박장애 등으로 분류된다. 공황장애는 별 이유 없이 극도로 심한 호흡 곤란, 두통, 현기증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공황장애 환자 수는 2006년 3만5000여 명에서 2011년 5만9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범불안장애는 매사 지나치게 걱정하는 만성적 불안 증세다. 공포장애는 특정 장소나 사물을 두려워하는 질환이다. 사람이 많은 곳을 기피하는 광장공포증,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고소공포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사고 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그것과 관련한 기억이 수시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질환이다. 강박장애는 특정한 행동이나 사고를 반복하지 않으면 불안한 증세로, 손을 자주 씻거나 물건을 깔끔히 정리하는 습관이 지나치면 강박장애일 수 있다.

    “숨 쉬기도 무서워요” 불안장애가 도대체 뭐기에…

    2014년 10월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가 무너져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생존자 중 일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그때 일 자꾸 생각나’ 고통 지속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안장애 진료 인원은 2008년 39만8000명에서 2013년 52만2000명으로 1.3배가 됐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기 불황과 잦은 안전 사고 발생이 불안장애 증가 요인일 수 있다”며 “개인의 삶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러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를 겪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회사원 A(32·남)씨는 2014년 10월 경기 성남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로 걸그룹 ‘포미닛’ 공연을 보러갔다 참변을 당했다. 공연을 더 잘 보고 싶어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20m 아래로 떨어졌다. 사망자 16명과 부상자 11명이 발생한 이 사고로 그는 한 달간 병원 치료 후 퇴원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

    “사고 당시와 비슷한 장면이 꿈에 자주 나온다. 가수들의 공연은 아예 못 본다. 사고 후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무심결에 TV를 보다 ‘갑자기 왜 숨이 안 쉬어지지?’라는 생각과 함께 공포감이 덮쳐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알고 보니 TV에 콘서트 장면이 나왔던 거다. 사고 현장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식은땀이 나고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심리적으로 도피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사고의 피해자들은 불안장애가 좀처럼 낫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정신치료를 담당하는 정신과 전문의 김수진 안산온마음센터(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사고 후 1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보다 치유 및 회복 속도가 훨씬 느리다. 대부분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 ‘지금 내 마음을 돌볼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갖고 있는 에너지는 사고 진상 규명 등 유족으로서 활동하는 데 써버리니 정신 상태가 아직 안정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장기간 지속되면 위험, 병원 치료받아야

    생존자 중에는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기념일 반응이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돌아오면 그 당시와 비슷한 감정 상태와 신체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윤호경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생존 학생 가운데 당시 상황이 자꾸 떠오르는 ‘재경험’ 증상, 평상시 자주 깜짝 놀라는 ‘과각성(過覺性)’ 증상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불안장애가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삶의 질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수진 부센터장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지속되면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것을 회피하고 이는 개인의 삶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또 “정신적 억압을 제때 완화하지 않으면 건강을 망칠 수 있다.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감소하거나 지병이 악화하고, 특히 남성의 경우 알코올에 중독될 확률이 높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따라서 불안장애를 극복하려면 조기에 병원을 찾아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소장은 “불안장애가 1년 이상 지속되면 심리 상태가 위험해진다”며 개인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불안장애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진다. 본인이 처한 환경이 좋으면 정신적으로 안정되지만, 환경이 나빠지면 금방 불안장애가 재발하는 식이다. 만약 약물치료 진단을 받으면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장애 치료제나 신경안정제는 먹자마자 효과가 나타나 환자들이 임의로 끊는 경향이 있는데 완치될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개인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민아 교수는 “사람들이 사회안전망을 신뢰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더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심이 모여 사회의 안전성을 불안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정책에 손댈 수 있는 사회 기득권층부터 이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불안한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개선 등을 통해 우리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불안장애도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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