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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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종가 군 출신 변호사들, 왜?

방산비리 수사 급물살에 주요 로펌들 발 빠른 영입 행보 … 또 다른 ‘군피아’ 우려도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3-30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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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종가 군 출신 변호사들, 왜?

    서울 용산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재판장석.

    지난해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의 활동이 연일 언론지면을 장식하던 3월 중순, 묘한 소문 하나가 합수단 주변과 법조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군 출신 인사 몇몇이 합수단에 파견된 국방부 검찰단 관계자들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해당 관계자들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는 것. 군 내부의 오랜 선후배 문화 때문에 딱 잘라 거절하기 쉽지 않지만, 자칫 피의자 변호를 맡게 될 수 있어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대체적인 골자다.

    합수단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뜻하지 않게 분주해진 곳이 있다. 바로 법조계다. 주요 로펌들이 앞다퉈 전직 군 법무 고위관계자를 영입해 국방 분야 관련 팀을 새로 꾸리고 있는 것. 올해 들어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된 곳만 해도 법무법인 세종과 바른, 지평, 광장 등이 꼽힌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율촌 등 이미 무기도입시장에서 주요 사업 자문을 맡아왔던 곳까지 합하면 한국의 10대 로펌 대부분이 포함된다.

    10대 로펌 대부분 포함

    3월 하순 세종은 2012년 전역 이래 법무법인 화우에서 재직해온 고석 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예비역 준장)을 파트너 변호사로 영입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39기)으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법고시를 합격(연수원 23기)한 고 변호사는 국방부 검찰부장과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장,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 육군본부 법무실장 등 군 법무라인의 요직을 모두 거쳤다.

    역시 육군 법무실장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이은수 변호사는 1월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일하고 있다. 바른은 4월 중으로 10여 명 규모의 국방 관련 팀을 공식 출범한다는 계획 하에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법무관 56기로 한국군 최초 여성 법무관이던 이 변호사는 ‘주간동아’와 통화에서 “방산계약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재 관련 소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지평은 3월 초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지낸 김대식 예비역 준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육사 35기로 육군본부 예산처장과 중앙경리단장 등을 지낸 김 고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방위사업 분야 전문가. 4대 로펌 중 하나로 꼽히는 법무법인 광장 역시 관련 팀을 만들기 위해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스카우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로펌들이 국방 관련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맨 처음 도화선 구실을 한 것은 2006년 방위사업청 출범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 이전까지만 해도 군 내부에서 ‘은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던 무기도입사업 입찰과 계약이 방위사업청 출범과 함께 상당 부분 제도화됐고, 업체들로서는 소송 등을 통해 법률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가 한결 쉬워졌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상종가 군 출신 변호사들, 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 변호사가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김앤장과 율촌을 비롯한 주요 로펌이 관련 업무를 개시한 것이 2010년 전후로, 이들은 차세대전투기(FX) 등 대형무기 도입사업 입찰에 참여한 글로벌 군수업체의 한국 측 법률 파트너를 맡아왔다. 2009년에는 군법무관과 방위사업청 출신이 주축을 이뤄 법무법인 한신을 개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방산 관련 법률시장의 파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 초창기만 해도 법률시장에서는 방산업체의 인수합병 등을 로펌이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계약서 검토 등 자문 기능에 그쳐 수익성이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무기도입사업의 경우 계약금액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사업 지체 등을 이유로 배상금 소송이 벌어지면 수임료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경우도 가능하다. 군이 사용 중인 토지와 관련해 벌어지는 민사소송 역시 ‘덩치가 큰’ 사건들. 이렇듯 한 번 벌어졌다 하면 큰 판이 되는 비즈니스 특성상 로펌들로서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방산비리 수사로 법률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다른 요인은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악화한 변호사업계의 수익구조. 군법무관 출신 예비역의 경우 이전에는 주로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지만, 법률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로펌행(行)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군법무관 임용고시를 통해 선발된 이들의 군 내부 입지가 임용고시 폐지 후 좁아진 것 역시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사관학교 출신 사시 합격자는 극히 드문 사례였지만, 전체 사시 합격자 규모가 크게 늘어난 이후에는 2~3년에 한 명꼴로 배출됐다. 이들을 중심으로 군 법무병과 주류가 재편되면서 적잖은 군법무관 임용고시 출신이 변호사시장에 나왔고, 관련 법률시장이 붐을 이루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피아+전관예우?

    이 때문에 내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국방 관련 법률시장의 이미지가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는 견해도 있다.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 변호사는 “군 관련 소송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기업을 단골로 유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투자하는 것에 가깝지, 이 업무 자체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면서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군사재판 사건은 가능한 한 맡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인식과 별개로 최근 상황을 지켜보는 군 내부 시선은 곱지 않은 편이다. 어제까지 군 법무병과나 사법기관의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오늘은 변호사 자격으로 관련 사건을 맡는다면 ‘전관예우’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최근의 방신비리 수사 역시 사건 특성상 국방부 검찰단 출신 파견자가 합수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만큼 이런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군피아+전관예우인 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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