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9

2014.12.29

러시아 경제 급랭 땐 한국도 혹한

유가 하락 등 ‘제2 모라토리엄’ 가능성 높아

  •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csk01@hri.co.kr

    입력2014-12-29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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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경제가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수준으로 급락하고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러시아의 신용부도 위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몇 개월 전만 해도 기세 좋게 서방과 맞서 우크라이나를 복속하려고 나서는 등 흡사 ‘차르의 귀환’을 연상케 하는 행보를 거듭했지만, 지금 러시아에서는 부도위험지표(CDS 프리미엄·부도 위험을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가 연일 급등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은 이미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부랴부랴 기준금리를 11.5%에서 6.5%p 상향하는 등 떠나가는 외국인 투자자의 발걸음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지만 루블화 환율 상승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수입 물가가 급등하자 러시아 국민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으며, 루블화 대신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하려는 발걸음으로 은행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와 비교하면서 제2의 모라토리엄 발생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 고조

    먼저 러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진단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재정과 무역수지, 대외채무, 자금 유출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재정수입과 무역수지는 원유 수출에 각각 50%, 67%를 의존한다.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되면 재정수지는 물론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그에 따라 외화 유입 규모도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면서 러시아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비중 급증과 함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외채 상환 압력마저 가중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의하면 향후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 규모는 총 1583억 달러에 달한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은 외채를 상환하거나 만기를 계속 연장해야 하며, 이로 인해 단기외채 비중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어 향후 외채 상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 불안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로 직결된다. 2014년 3분기까지 약 823억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규모는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에도 2014년과 비슷한 유출 증가폭을 보일 경우 유출액은 약 212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보유고도 급감 중이다. 2013년 12월 말 5165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2014년 11월 말 4189억 달러로 1년 만에 1000억 달러가량 줄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 급등세가 지속된다면 외환보유고는 지속적으로 소진될 수밖에 없다.

    요약해보자. 2015년 러시아의 외환위기 대응에 필요한 유동성 규모를 경상거래(수입 3개월분), 대외채무(1년 내 만기 도래 채무), 외국인 자금 유출액을 기준으로 종합해보면 약 4400억 달러로 추정된다(그래프 1 참조). 이는 현재 외환보유액 4189억 달러보다 큰 규모고, 따라서 2015년 유가 하락 등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벌어질 경우 러시아의 대응 능력은 부족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향후 러시아에서 제2의 모라토리엄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다. 러시아에서 모라토리엄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래프2 참조). 먼저 실물 부문에서는 유럽의 대(對)러시아 수출 감소가 유럽의 경기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러시아 및 유럽에 대한 수출이 동시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유럽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위기가 겹칠 경우 2009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2009년 당시 한국은 러시아와 유럽에 대한 직간접 수출에서 총수출이 약 2.9% 감소하는 후폭풍을 겪었다. 비슷한 폭으로 수출이 줄어든다면 현재의 외화가득률(약 52%)을 고려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에는 0.6%p 하락 압력이 발생하게 된다. 0.1%p가 아까운 현 상황으로서는 말 그대로 악몽이다.

    러시아 경제 급랭 땐 한국도 혹한
    아세안 등 유망 시장 개척 강화

    금융 부문을 통해 미칠 악영향은 한층 더 복잡하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취약 신흥국으로부터 급격히 회수될 개연성이 높고, 이는 곧 신흥국의 통화가치 절하로 이어진다. 우리 금융시장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투자자금이 국내에 유입될 공산이 크므로 원화 가치는 강세를 띨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이렇게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 작금의 엔저 현상과 맞물려 우리 수출기업의 대외 수출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다.

    이렇듯 2015년 한국 경제에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위기는 또 하나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먼저 러시아와 유럽의 지정학적 리스크나 경제·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은 물론, 금융 불안이나 유가 하락에 취약한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취약 신흥국에 대한 모니터링 역시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단기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에 따라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수출기업들이 해야 할 급선무는 원화 가치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작업이다. 비용 절감이나 제조 공정 축소 등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R·D(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로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나 유럽 시장에 대한 수출이 부진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장을 다변화하고 대체 수출시장을 확보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아세안(ASEAN) 등 성장가능성이 높은 유망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한류 등을 활용해 마케팅을 강화함으로써 유럽과 러시아 시장 부진이 몰고 올 후폭풍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우리 경제에는 다양한 난제가 깔려 있다. 러시아 모라토리엄 위기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예상되는 위기에 철저히 대비하고 신속한 위기대응 능력을 갖춰야만 우리 경제는 위기를 지나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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