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은밀하게 교묘하게…‘性 공화국’

성매매방지법 10년 여전한 남성들의 성구매 행태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2014-10-13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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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하게 교묘하게…‘性 공화국’

    9월 23일로 성매매방지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 10년을 맞았다.

    2004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방지법)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한국은 스웨덴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성매매를 불법화한 몇 안 되는 국가가 됐다. 그렇다면 성매매 방지 활동의 제도화로 얻은 성과와 한계는 뭘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었고, 전망은 어떨까.

    성매매를 불법화하고 관련 당사자를 처벌한다는 의미로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방지 활동은 제도화됐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당시 여성운동단체의 요구를 국가가 수용한 결과 제정된 성매매특별법, 즉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법 자체를 성매매 방지의 제도화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의 성적 욕망은 돈을 주고 분출해도 상관없고 여성의 성적 욕망은 결혼제도 안에서만 충족돼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존재한다. 성구매 남성에게는 관대하지만 성매매 여성에게는 가혹한 이중의식 또한 공고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성매매 방지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법적 제도화는 이뤄졌지만

    법 차원의 성매매 방지 제도화가 이룬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자.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풍선효과 논란도 일었지만 성매매 집결지가 축소됐고, 성구매자 처벌이 이뤄졌으며, 성구매자를 대상으로 존스쿨 제도(성구매 초범 남성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일정 시간을 이수하면 기소유예 처분돼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성매매로 발생한 수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정책도 2004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탈성매매 여성 자활지원사업도 지역 자활지원센터, 상담소, 쉼터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상당수 남성이 왜 이런 법이 존재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성노동’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변화다. 그런데 이대로 간다면 이 땅에서 성매매 방지의 제도화가 법을 지키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넓은 의미에서 성매매 방지 제도화는 성매매 예방, 성구매 남성 처벌과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 성매매 여성 보호와 지원이란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때만 가능해진다.

    먼저 성매매 예방을 보자. 모든 범죄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모든 사회구성원이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 될 ‘범죄’로 인식하는 것이 범죄 예방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성매매 불법화에도 우리 사회 구성원은 성매매를 절도나 살인 같은 범죄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다.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모의하는 장면을 경찰관이 봤다면 즉시 개입해 저지하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성매매 집결지는 “근절이 불가능하다”는 핑계로 방치하고 있다.

    대중은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이익에 대해 국가가 철저히 환수하고자 노력한다고 믿지만, 정작 국가는 성매매를 통한 이익의 환수에는 소극적이다. 성매매 불법이익의 환수는 성매매 시장 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익을 압도적으로 상쇄하는 재산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산업에 투자할 자본은 없기 때문이다.

    성구매 남성에 대한 처벌은 어떠한가. 처벌이 무서워 성구매를 꺼리는 남성이 얼마나 될까. 2004년 성매매처벌법 시행 초기와 비교해 존스쿨 이수자가 줄어들고 성구매 남성 기소율이 낮아진 것은 성구매 남성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남성 대부분이 성매매가 범죄 행위임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성매매를 한다. ‘성구매’ 남성에 대한 처벌 문제는 ‘성판매’ 여성과의 차별 문제가 떠오르면 늘 희석되는데, 사실 ‘성매매’보다 ‘성착취’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성매매 현장에서 ‘텐프로’(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 중 상위 10%를 일컫는 은어)는 신화에 불과하다. 인신매매, 선불금 위협, 가족에 대한 협박 등으로 성매매 여성은 ‘착취의 수레바퀴’ 안에서 늙어간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그나마 국가와 여성운동권 간 협력을 토대로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분야다. 2004년 40억 원이 채 안 되던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예산은 2011년 이후 100억 원대를 넘어섰다. 2014년 현재 전국에 상담소 26개소, 일반·청소년·외국인 지원시설 40곳, 그룹홈 11곳, 자활지원센터 9곳, 대안교육기관 2곳이 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그러나 사회복지통합전산망 도입 과정에서 불거진 개인정보 노출 이슈에서 볼 수 있듯, 성매매 피해 여성을 위한 서비스 전달 체계에서 국가의 지나친 간섭이 민간의 자율성 훼손이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은밀하게 교묘하게…‘性 공화국’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9월 19일 오전 성매매방지법 시행 10주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성매매로 얻은 이익 강력히 환수해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럴 바엔 성매매특별법을 폐지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마저 등장했다. 그러나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이 합법화를 정당화하는 요인이 될까. 성매매는 성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이미 범죄다. 집결지를 없애도 또 다른 곳에 집결지가 생기고 신종 성매매가 횡행하는 것은 현행법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에 현행법이 변화하고 대응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탓이다.

    국가가 성매매로 얻은 이익을 강력하게 환수한다면 성매매 산업 규모는 상당 부분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에 눈먼 업자들은 윤리적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이 성매매판을 떠나는 건 돈벌이가 안 된다고 파악했을 때뿐이다. 또한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를 통해 여성이 성착취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현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해주는 정책적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과 보호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도해 구축하는 여타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국가와 민간(여성운동단체)이 협력하는 가운데 국가는 재정 지원자로, 민간은 서비스 제공자로 소임 분담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구도를 잘 완성하면 다른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국가와 민간 간 소임 분담 구도 확립에도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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