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팬이 키우는 日 아이돌 ‘AKB48’

충성도 높은 팬덤 만들기 새 모델…총선거(인기투표) 생방송 중계 인기 입증

  • 김기덕 동아방송예술대 엔터테인먼트경영과 겸임교수 dongho2646@nate.com

    입력2014-07-21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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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이라면 AKB48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들은 2005년 결성된 일본의 ‘국보급’ 여성 아이돌그룹으로, 최근 발매한 싱글 ‘래브라도레트리버(Labrador Retriever)’가 발매 하루 만에 146만 장을 돌파하는 등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며 집단 퍼포먼스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던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6월 7일 AKB48에 대한 제6회 ‘총선거’(인기투표)가 있었다. 장소는 일본 최대 음악축제 가운데 하나인 ‘에이네이션(A-nation)’이 열리는 곳이자 축구 J리그 FC도쿄의 홈구장인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필자도 그날 그곳에 참석했다. 비를 맞으며 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며 필자는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2013년 제5회 총선거에서 14만 표를 획득해 1위를 했던 HKT48의 사시하라 리노(指原莉乃)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과연 그가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AKB48 총선거는 후지TV에서 매년 생방송으로 중계해왔으며, 과거 생중계했던 AKB48 총선거 시청률은 2012년 평균 18.7%, 최고 28.0%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평균 20.3%, 최고 32.7%를 기록했다.

    5월 25일 AKB48의 ‘팬 밀착형’ 이벤트인 ‘악수회’가 열리는 도중 괴한의 칼부림 피습사건이 발생해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는 보안 강화를 위해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다. 관객들의 소지품 검사가 그 어느 공항보다도 엄격했다. 빗속에서 진행된 이러한 철저한 절차로 6월 7일 행사는 예정보다 약 45분 지연됐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마침내 스타디움에 무사히 진입한 필자는 주최 측이 나눠준 우비를 입고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좌석에 조용히 앉아 아무런 불평 없이 행사를 기다리는 군중을 살피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AKB48은 이들에게 어떠한 존재이기에 이러한 충성도 높은 ‘팬덤(fandom·열성 팬)’이 생긴 것일까.

    국제레코드산업연맹(IFPI)의 2012년 세계 음악산업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음반과 디지털 다운로드를 합한 매출은 약 43억 달러로 세계 음악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41억 달러를 앞질렀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1973년 통계 작업 이후 첫 역전”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같은 대역전 현상의 중심에 서 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AKB48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상징적인 아이돌그룹이던 모닝구무스메의 몰락 이후 일본 아이돌 시장의 부흥을 주도하는 AKB48은 2011년과 2012년 여성그룹으로는 최초로 제53, 54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연속 수상했다. 또 2011년 발매한 5장의 싱글 CD가 모두 100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해 그해 연간 싱글 랭킹 1~5위를 차지했다. 한 해 5장의 밀리언셀러와 랭킹 1~5위 차지는 일본 음반산업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AKB48은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로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이돌의 성장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도쿄 아키하바라에 AKB48 전용극장을 세우고 거의 매일 공연을 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기존 아이돌 이미지에서 벗어나 팬이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그 성장 과정을 여과 없이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팬과 아티스트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아티스트가 아닌 팬에게 있다는 의미다. 즉 팬에게 “내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만날 수 있다”는 개념을 던져준 것이다. 이런 전략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이 형성됐고, 소비심리를 자극해 AKB48의 앨범 구매로 이어졌으며, AKB48은 국민적 아이돌로 떠오른 것이다.

    팬이 각 멤버의 인기 순위 정해

    AKB48의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의 ‘프로듀싱’이 흥미롭다. AKB48을 가창력이나 안무 실력을 완벽하게 갖춘 뒤 데뷔하게 한 것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미완성형 아이돌이 완성형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팬이 함께 지켜보고 팬이 직접 완성형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하나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러한 미완성형 아이돌을 팬이 함께 완성해나간다는 개념은 팬 처지에서는 자신이 육성해간다는 체험감을 느끼게 해주며, 그러한 팬심의 표현이 바로 총선거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총선거는 팬이 각 멤버의 인기 순위를 정하는 것으로, 멤버 개인의 발전을 자극하고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순위에 들 수 있다는 경쟁 원리를 도입해 팬을 끌어들임으로써 내부 상품(각 멤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 정치 선거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흥미와 매력을 던져준다. 일본 언론은 총선거 기간 내내 AKB48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하고, ‘닛칸스포츠’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순위 집계를 호외로 뿌리기도 한다.

    아키모토 야스시는 AKB48을 전국적인 아이돌 그룹으로 만들려고 2008년 나고야(名古屋)의 SKE48을 시작으로 오사카(大阪)의 NMB48, 후쿠오카(福岡)의 HKT48 같은 국내 자매그룹을 순차적으로 조직했다. 이후 201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근거지로 한 JKT48과 중국 상하이의 SNH48도 만들어 해외 자매그룹을 활용한 글로벌화도 시작했다. 이는 프로 스포츠의 지역연고 시스템을 그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도입한 것이다. 국내외 자매그룹은 각 연고지에 그들만의 전용극장을 두고 있다.

    예컨대 2013년 총선거에서 1위를 한 사시하라 리노는 HKT48 소속으로 후쿠오카 시민은 AKB48보다 HKT48을 응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부산시민이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기원하는 것과 비슷하다.

    올해 총선거에는 AKB48을 비롯한 각 자매그룹과 연구생(연습생) 등 총 296명이 입후보했는데, 투표 집계 결과 총 득표수가 역대 총선거 사상 최대인 268만9427표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도쿄도지사 당선인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의 총 득표수 211만2000여 표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왜 ‘AKB48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올해는 입후보자 296명 중 1위부터 80위까지 멤버를 발표했으며 상위 16명은 8월 27일 발매하는 AKB48의 37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에 참여한다.

    AKB48 내에서의 경쟁은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의미하는 것으로 더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쟁우위는 AKB48 총선거에서 그 결과가 나타나는데, 연구생도 총선거에서 상위권에 들면 언제든 언론의 주목을 받아 스타가 될 수 있으며, 현재 인기 많은 멤버라 하더라도 조금만 팬 관리를 소홀히 하면 언제든 현 위치에서 하락할 수 있다. 연구생들은 기존 멤버를 자극하는 동력이며. 지속적인 경쟁을 통한 팬심 확보라는 운영 시스템의 원동력이다. 실제로 이번 제6회 총선거에서 SKE48의 연구생인 마쓰무라 가오리(松村香織)가 총 3만7969표로 17위를 기록해 16인 선발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쟁쟁한 선배 멤버들을 제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전용극장서 유대관계 형성

    AKB48의 이러한 경쟁 시스템의 시작은 AKB48 전용극장이다. 이곳은 팬끼리 AKB48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AKB48의 성공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장소다. 소비자(팬)끼리 유대관계를 맺어 마음에 드는 멤버에 대한 본인의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팬덤이 성장된다. 전용극장을 통해 ‘대중을 향한 미완성 아이돌의 지속적인 노출’이 이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콘셉트가 바로 현재 일본 음반시장을 주도하는 AKB48의 주요 성공 요인이다.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 멤버가 AKB48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그 마음을 소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끝까지 남아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이 총선거 같은 이벤트를 통한 AKB48의 앨범 판매에 가장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멤버들의 초상권을 이용한 각종 부가상품 판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팬덤의 기본 바탕에는 친밀감(intimacy)이라는 마음의 소비가 깔려 있으며, 이 친밀감의 강도가 바로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AKB48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팬들이 훈련되지 않은 미완성의 AKB48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고, ‘산케이신문’은 이와 같은 독특함을 ‘미완성에 끌리는 문화’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경우 2010년 ‘아이돌그룹이 이끄는 신(新)한류시대’(삼성경제연구소)라는 보고서가 나왔듯, 드라마가 주도하던 한류에서 아이돌그룹이 이끌어가는 신한류로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처럼 신한류를 주도하던 아이돌 케이팝(K-pop)은 아이러니하게도 2011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 이후 ‘기계적인 완벽 설계를 추구하는 기획형 모델’ ‘획일화한 콘텐츠 제공’ ‘유사한 콘셉트의 스타일 자기 복제’ 등의 문제점을 노출하며 위기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이돌 케이팝은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위기의식 아래서도 여전히 신한류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 모델에 안주한다면 머잖아 전성기를 구가하다 대중성을 잃은 홍콩 영화와 제이팝(J-pop)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창조경제의 모델이라고도 부르는 AKB48은 우리에게 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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