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9

2014.05.26

선진국 키운 8할은 자유무역 아닌 보호무역이다

자유무역협정 최대 효과 내려면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해야

  • 아투로 브리스 스위스 IMD 교수·세계경쟁력센터 소장 arturo.bris@imd.org

    입력2014-05-2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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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가의 경쟁력 순위를 높이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법규다. 광범위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도 중요하다. 포용적 제도는 지난 25년간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 세계경쟁력센터가 발표해온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상위에 이름을 올려온 국가의 주된 공통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과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하버드대 정치학과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이러한 포용적 제도를 성공 요인으로 꼽은 바 있다.

    잘사는 국가끼리 대규모 협정

    세 번째 요인으로는 적정 수준의 인구수를 들 수 있다. 풍부한 원유와 광물자원을 네 번째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와 노르웨이, 최근에는 몽골이 풍부한 자원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2013년 발표된 경쟁력 순위에서 상위 10위 안에 든 카타르와 홍콩의 경우, 상위 60개국 중에서도 최악의 물 부족 국가다.

    자유무역은 어떨까. 많은 이가 자유무역을 다섯 번째 요인으로 꼽지만, 국가 경쟁력에서 자유무역이 가진 영향력은 해당 국가의 발전 단계에 크게 좌우된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무역 개방을 통해 더 많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보유한 모든 자원과 경쟁력을 활용해 번영을 도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분명 자유무역은 국내 경제활동에는 일정 부분 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아직 개발도상 단계에 있고 빈곤 해소가 최우선 과제인 나라라면 자유무역 확대가 국민에게 가져다주는 실익은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온 세계를 뒤덮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흐름과 관련해 미묘한 시사점을 던진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최대 효과를 보려면 각 체결 국가가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 상태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모험이던 유럽연합(EU)이 세계 최대 무역블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기존 회원국과 견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나라만이 EU에 새로 가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1994년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멕시코가 자유무역을 통해 수혜를 누릴 수 있을 만큼 발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NAFTA 체제하에서 멕시코 제조산업은 미국으로부터 생산설비를 유치해 원자재를 수입한 후 그 최종 상품을 미국으로 재수출할 수 있었다. 멕시코의 서비스 분야도 자유무역협정 덕을 톡톡히 봤다. 그 결과 97년 40위였던 멕시코의 IMD 국가경쟁력 순위는 2013년 32위로 껑충 뛰었다. 특히 2013년 순위는 전년도보다 다섯 계단이나 상승한 결과였다.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단연 최고의 경제 성과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앞으로 자유무역협정 기류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국제협정 대신 비교적 잘사는 국가끼리 맺는 대규모 지역 간 협정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일본을 방문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태평양을 사이에 둔 12개국 사이의 재화무역이 완전 자유화되고, 서비스 교역을 가로막던 제약도 줄어든다. 협정에 참여하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같은 북미 국가와 호주, 브루나이,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이다. TPP 협정이 가져올 혜택을 고려해 한국과 대만도 조만간 협상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중국만 빠진 상태다. 현재 논의 중인 또 하나의 거대 무역체제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EU 사이의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일정 기간 경쟁 상대로부터 보호

    결국 발전이 미흡한 국가가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자유무역보다 일정 기간의 보호무역 조치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는 제조업 분야를 일시적으로 해외 경쟁 상대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체질을 개선하고 번영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제조상품 교역이 자유화된 후 외국과 경쟁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후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서비스 분야에 중점을 둔 두 번째 발전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경제리서치 전문가 조 스터드웰은 저서 ‘아시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세계 어디에도 자유무역정책으로 1등 경제 국가가 된 나라는 없다. (중략)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는 모두 발전 단계에서 보호무역주의를 택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유죄”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최대 선진국들이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주의 덕택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 당시 수혜자는 프랑스와 영국이었고, 19세기와 20세기에는 미국, 일본, 독일이 보호무역의 덕을 봤다. 최근에는 중국이 이와 유사한 경로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특히 경제 발전 시작점에 서 있는 국가라면 잊지 말아야 할 충고다.

    한국, IMD 국가경쟁력 순위 4단계 추락

    물가·입법 등에서 순위 낮아져 26위 기록


    선진국 키운 8할은 자유무역 아닌 보호무역이다

    5월 22일(현지시간) 스위스 IMD가 공개한 한국의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5월 22일(현지시간)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4단계 하락한 26위를 기록했다. 2010년 23위에서 한 단계 상승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2위를 유지해오다 이번에 큰 폭으로 떨어진 것. 올해 발표에서 30위권에 속한 국가 가운데 4단계 이상 하락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카타르, 이스라엘, 한국뿐이다.

    IMD 측에 따르면 한국은 고용률(7위)이나 기술 인프라(8위), 과학 인프라(6위)에서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물가(50위)와 비즈니스 관련 입법(42), 경영 관행(56) 등의 경쟁력 항목에서 순위가 낮았다. 경제지표는 2012년 27위까지 밀렸다가 지난해 20위까지 상승한 뒤 올해도 유지됐지만, 정부 경쟁력은 2012년 25위에서 지난해 20위까지 상승했다가 올해 26위로 하락했다고 IMD는 평가했다. 비즈니스 효율 부문도 2012년 25위에서 지난해 34위까지 하락했고 올해는 다시 39위로 밀려나 순위 하락의 주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쟁력 평가 결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1위를 차지하는 등 10위권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IMD 측은 설명했다. 2위부터 10위까지는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 스웨덴, 독일, 캐나다, 아랍에미리트, 덴마크, 노르웨이 순이다.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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