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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Merry, 윔블던!

77년 만에 영국 선수 우승 쾌거 “난 아직 배고프다”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머리, Merry, 윔블던!

테니스의 효시는 12~16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라폼므’라는 경기로 알려졌다. 이 게임은 공을 손바닥으로 치고받는 형태였다. 그러다 15세기 라켓이 개발되자 테니스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영국 중산층은 넓은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 테니스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체계를 세우려고 영국인 윙필드는 일정한 코트와 네트를 만들었고, 1875년 메릴리본 크리켓 클럽에서 규칙을 통일해 근대 스포츠 형태를 갖췄다. 그 뒤 1877년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제1회 영국테니스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가 지금 개최되는 테니스 메이저대회 윔블던의 효시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윔블던)는 메이저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잔디코트에서 열린다. 테니스가 처음 시작됐을 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가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가 바로 윔블던이다. 영국인이 테니스와 윔블던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한 테니스 선수가 2013년 여름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영국 앤디 머리(26)가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26·세르비아)를 3대 1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영국 선수가 윔블던 정상에 선 것은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77년 만이다. 영국 전역은 머리의 우승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의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머리는 사실 지난해 처음으로 윔블던 결승까지 진출하며 영국 선수의 우승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결승전 상대가 전성기를 넘어선 로저 페더러(32·스위스)였기에 머리에 대한 기대는 한층 더 컸다. 하지만 머리는 영국인의 전폭적인 응원에도 페더러에게 1대 3으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메인 코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진한 아쉬움의 눈물을 흘린 머리가 정확히 1년 만에 재도전해 꿈을 이뤘다. 머리는 영국인의 오랜 숙원을 풀어내며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지난해 준우승 울분 떨치고 감동 선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인 머리는 테니스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50년대 프로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으며, 그의 형 제이미 머리도 프로테니스 선수로 뛰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테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영국 테니스를 책임질 재목으로 꼽혔다. 주니어 무대에서는 2004년 US오픈 테니스대회(US오픈)에서 우승했으며, 2005년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에서는 4강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많은 기대를 모으며 2004년 프로로 전향한 머리가 첫 우승을 이뤄내기까지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는 2008년 웨스턴 앤드 서던 파이낸셜그룹 마스터스대회에서 투어 첫 우승을 일궈내며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같은 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여러 대회에서 많은 우승 경력을 쌓았지만 윔블던을 포함한 메이저대회에서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1년까지 최고 성적은 준우승 3차례. 윔블던에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4강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비를 넘지 못해 결승 무대를 밟는 데 실패했다.

메이저대회 불운이 계속되자 머리는 홀로 서기를 마감하고 코치를 찾아 나섰다. 그는 2010년 마일스 맥라한 코치와 결별한 뒤 18개월 동안 코치 없이 투어를 뛰었다. 단기전을 위해 잠시 코치를 선임하기도 했지만 전담코치는 없었다. 그러던 그가 2011년 시즌을 마감한 뒤 선택한 새로운 스승이 이반 렌들(체코)이다.

렌들은 1980년대 세계 테니스계에서 이름을 날린 특급스타 출신 지도자다. 렌들은 메이저대회에서 18차례 결승전에 올라 8차례 정상에 선 경험이 있었고, 투어에서만 94개 타이틀을 손에 넣은 최고의 선수였다. 하지만 렌들도 투어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펼치기 전까지는 머리처럼 우승 문턱에서 여러 차례 좌절을 맛봤다. 머리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이겨내고 최고 선수로 발돋움한 렌들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머리의 선택은 옳았다. 렌들의 강인함은 연약한 머리를 정신적으로 재무장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인지 2012년 윔블던에서 처음으로 결승까지 오르며 4강 징크스를 깼다. 결승전에서 페더러에게 패했지만 그는 한 달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페더러와 재대결해 3대 0으로 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윔블던에서 당한 패배를 깨끗하게 설욕했던 것이다. 그다음 머리는 US오픈에서 처음으로 왕관을 손에 넣으며 메이저 무관에서도 벗어났다. 그 상승세를 이어 2013년 윔블던을 거머쥐며 머리는 본격적으로 메이저대회 타이틀 수집을 시작했다. 윔블던 우승 직후 머리는 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반 렌들 스승 선택 강인함 담금질

“렌들은 나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고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내가 열심히 훈련하면 그는 만족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고 자기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어요. 경기에서 패한 뒤엔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줬어요. 그 덕분에 내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와 렌들은 선수와 코치가 아닌 동반자 관계다. 프로테니스 선수의 경우 코치를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선수와 코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에 놓인다. 그 때문에 코치가 선수에게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렌들은 아니었다. 렌들은 가감 없이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머리에게 전달했고, 선수는 코치의 조언을 모두 따랐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둘은 하나가 됐으며 엄청난 업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렌들은 “머리가 US오픈에 이어 윔블던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머리는 우승을 차지한 직후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전 감독인 퍼거슨과의 만남에 대해 회고했다. 퍼거슨 전 감독은 머리의 윔블던 8강전을 직접 관전했고, 머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머리가 우승을 차지하자 개인적으로 축하인사도 건넸다. 머리는 퍼거슨 전 감독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운 듯했다.

머리는 “퍼거슨 전 감독은 맨유라는 축구팀을 맡아 엄청난 업적을 이뤄냈다. 한 팀에서 오래 감독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맨유와 퍼거슨 전 감독처럼 세계 정상을 꾸준히 지킬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계 프로테니스계는 ‘황제’ 페더러와 ‘클레이 코트의 왕좌’ 라파엘 나달(27·스페인), 조코치비가 3강 체제를 유지해왔다. 페더러는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수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나달과 조코비치가 들어 올린 메이저대회 우승컵의 수도 머리보다 월등히 많다. 세계랭킹은 현재 조코비치가 1위, 머리가 2위, 나달이 4위, 페더러가 5위다. 머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선수는 세계랭킹 1위 자리를 한 차례 이상씩 올라봤다.

개인 최고랭킹이 2위인 머리는 여전히 도전자 처지다. ‘메이저대회 공포증’에서 탈출해 본격적인 승수 쌓기에 나선 머리가 세계 최고 축구클럽으로 각광받는 맨유처럼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잡으며 ‘머리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3.07.15 896호 (p52~53)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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