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9

2013.05.27

“팍팍 밀어준다면 최고의 ‘창작 콘텐츠’ 가능하죠”

한국 논버벌 퍼포먼스 1인자 페르소나 최철기 대표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3-05-27 11: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팍팍 밀어준다면 최고의 ‘창작 콘텐츠’ 가능하죠”
    삶이 우울한가. 고민이 많고 생각이 복잡한가. 논버벌(Non-Verbal·비언어) 퍼포먼스를 관람하라. 머리는 닫고 가슴을 열라. 그저 웃고 즐기면 된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 인생이 논리가 아니듯.

    논버벌 뮤지컬 ‘비밥’은 듣던 대로 볼거리, 들을 거리가 많았다. 폭주기관차 같은 비트박스(beatbox)와 현란한 비보잉, 장엄하면서도 코믹한 아카펠라…. 꽉 찬 객석은 한 시간 반 내내 뜨거웠다. 관객은 연신 큰 소리로 웃고 소리 지르고 박수를 쳐댔다.

    스시, 피자, 치킨 누들, 그리고 비빔밥. 음식 조리 과정을 뮤지컬로 만들다니, 그 기발하고도 발랄한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리는 이 분야의 선구자 격인 ‘난타’의 소재이기도 한데, ‘비밥’에서는 스토리가 한결 야물어졌다. 비보잉이 화려해지고 노래와 무술적 요소도 강화됐다.

    배우들의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한 연기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공연 중 배우와 관객이 밀가루 반죽을 뜻하는 스펀지를 서로 집어던지고, 남성과 여성 관객을 무대로 불러 올려 즉석 소개팅을 성사시키는 즉흥 퍼포먼스도 흥미로웠다. 기자도 (배우를 맞히려고) 몇 번 스펀지를 집어던졌으나 실패했다.

    ‘비밥’을 만든 사람은 한국 논버벌 퍼포먼스 1인자로 불리는 최철기(40) 페르소나 대표다. 최 대표가 연출한 ‘난타’(1999), ‘점프’(2003), ‘비밥’(2011. 5), ‘플라잉’(2011. 8)은 ‘공연 한류’를 주도한다.



    최 대표를 만나 ‘아픈’ 질문부터 던졌다. ‘구미호’ 얘기다. 그가 8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논버벌 퍼포먼스 ‘구미호’는 여우와 청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정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제작에 들어갔으나 정권이 바뀐 후 중단됐다. 제작비 지원을 백지화한 탓이다. 뮤지컬에 서커스를 곁들인 이 공연에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초대형 무대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창조경영-창조문화 일맥상통

    “2008년 중국 ‘국가대극원’에서 서커스를 공부하면서 베이징올림픽에 ‘젠’을 올린 경험이 바탕이 됐다. 대규모 지원을 약속받았는데 담당 공무원들이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다. 얘기가 될 만하면 담당자가 바뀌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는 안타까워하면서도 크게 불만스러워하지는 않았다. 과거보다 미래를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경영은 창조문화와 통한다. 문화와 관광과 과학이 결합해 야 한다. 꼭 ‘구미호’가 아니더라도 공연과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는 계속해야 한다. 국내 공연의 가장 큰 취약점이 기술력이다. 아직도 무대장치는 외국인 기술자에 의존한다. 공연장은 여전히 협소하다. 대부분 500석 이하 중소형 극장이다. 이제는 대형 무대로 넘어가야 한다. 관람객의 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를 맞아 국내 공연도 대형화해야 한다.”

    그는 “정부나 대기업과 계속 협의하겠다”며 ‘구미호’ 제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논버벌 퍼포먼스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것은 대사가 없어 외국인도 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1114만 명의 14.5%인 162만1249명이 논버벌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외국인 단체관광의 필수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는 형국이다.

    외국 무대에서의 위상도 높다. 1999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푸드 엑스포나 푸드 비엔날레 등에 초청돼 큰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엔 중국 서커스와 코미디를 결합해 만든 ‘젠’을 베이징올림픽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8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에서는 ‘플라잉’을 공연할 예정이다.

    2011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 공연으로 선보인 ‘플라잉’은 기계체조와 리듬체조, 서커스, 비보잉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으로, 신라시대 도깨비가 화랑을 잡으러 현대로 넘어오면서 빚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전직 국가대표 체조선수들을 캐스팅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측에 따르면 4월 말 누적 관람객 수가 20만을 넘어섰다.

    “향후 공연계의 키워드는 판타지다. 과거와 현대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우리의 전통을 현대 문화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는 논버벌 퍼포먼스가 한국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 ‘난타’ 연출가로서 2000년 영국에 갔을 때 일이다. 객석에서 한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공연이 끝난 후 사연을 들어보니 6·25 참전용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 비참했던 나라의 젊은이들이 공연을 제작해 영국 무대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걸 보고 감격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최 대표의 얘기.

    “젊은 관객들에게 ‘이 공연이 어느 나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중국, 일본, 필리핀, 심지어 라오스까지 나왔는데 한국은 끝내 안 나왔다. 내가 ‘코리아’라고 하자 ‘북쪽이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2005년 ‘점프’로 방문했을 때는 달라졌다. ‘코리아’라는 대답을 금방 들을 수 있었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우선시하는 회사

    그의 어릴 적 꿈은 배우였다.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나온 후 잠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창의성이 강했던 그는 작품 해석을 두고 연출가와 자주 부딪쳤다. 그래서 배우를 그만두고 연출가로 나섰다. 그의 실력이 빛을 발한 것은 1999년 송승환 씨가 이끄는 공연제작사 PMC프로덕션의 ‘난타’ 연출가로 스카우트되면서다. 그는 “‘난타’를 연출하면서 세계 시장에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2007년 그는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렸다. 직원은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회사라고 할 것도 없는 서울 대학로의 조그만 사무실이었다. 냉난방도 안 되는 열악한 곳에서 그는 “배우와 스태프, 창작자가 살아 숨쉬는 회사”를 꿈꿨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우선시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대학로에 12년차 남자배우가 있었다. 소극장에서 한 달에 80회 공연하는 그의 월급이 120여만 원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대학로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료들이 ‘고액연봉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극단 대표는 고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대표는 부를 축적하고 배우들은 그저 밥 세끼 해결할 수 있는 급여만 받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남자배우는 1년 반 전 최 대표 회사에 합류했다. 당시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원룸에 살던 그는 얼마 전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집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현재 페르소나 직원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배우들을 포함해 15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엔 매출 46억 원을 올렸다. 그는 “배우와 스태프가 안정적인 구조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는 풍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창피하긴 하다. 모든 걸 이룬 다음 결과로 말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이유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고 좀 더 나은 내일로 뛰어가기 위해서다.”

    젊은이에게 꿈과 기회 줘야

    “팍팍 밀어준다면 최고의 ‘창작 콘텐츠’ 가능하죠”

    요리사들의 요리 대결을 그린 ‘비밥’.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 공연으로 인기를 끈 ‘플라잉’. 2000년 1월 일본 ‘난타’ 공연(위부터).

    그가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2003년 ‘점프’를 만들 때는 친구들 도움을 받았는데, 한때 빚이 20억 원까지 늘어났다. 그것을 해결해준 것이 2005년 영국 에든버러 공연이다.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가 연출한 ‘난타’ ‘점프‘ ‘비밥’ ‘플라잉’은 모두 전용관에서 상설 공연되고 있다. ‘난타’를 빼고는 모두 그가 제작자로 나선 이후 연출한 작품이다. 하루 두 차례 공연하는데, 관객이 몰릴 때는 5회까지도 늘린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비밥’을 본 날도 중학생 단체 관람으로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브로드웨이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주목할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일본은 기술력은 좋지만 콘텐츠 수준이 떨어지고 중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한국은 미국, 영국과 더불어 공연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꼽힌다. 아시아에서 창작공연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엄청난 투자를 하며 쫓아온다. 자칫 관광공연 시장을 뺏길까 봐 우려스럽다.”

    그의 소망은 한국이 ‘창작 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

    “왜 한국에서는 ‘레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이 나오지 않는가. ‘난타’와 ‘점프’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브로드웨이 메인시장으로는 진출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창작자들이 계속 도전해야 하고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 대형 작품이 나와야 공연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1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반면 공연은 오래 걸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투자 마인드가 중요하다.”

    갓 40대에 들어선 그는 자신감이 넘치고 패기만만했다. 한국 공연예술계의 축복이라 할 만한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작품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릴지 기대된다. 괜히 띄워주는 말이 아니다. ‘비밥’을 보고 나서 하는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 업무 담당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좀 팍팍 밀어주세요. 이런 게 바로 문화융합이고 문화수출입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