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6

2013.05.06

귀에 쏙쏙 들리는 내용…감동 밀물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5-06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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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에 쏙쏙 들리는 내용…감동 밀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초연은 압도적이었다. 묵직한 줄거리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웅장한 음악, 그리고 무대를 울리는 배우들의 성량이 어우러져 완벽한 작품이 탄생했다. 과연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에서 지낸 장 발장은 새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세상의 편견으로 고통 받는다. 그는 친절을 베푼 딘 주교의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잡히지만, 주교는 “은촛대는 선물”이라며 오히려 장 발장을 도와준다. 새사람이 된 장 발장은 시장으로 출세하지만 전과자 신분을 숨긴 죄로, 법과 제도를 맹신하는 자베르 경감에게 쫓긴다. 장 발장은 딸의 양육비를 벌려고 거리에서 몸을 파는 판틴의 딸 코제트를 돌보게 되고, 시간이 흘러 코제트는 마리우스라는 학생 혁명가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정부인사 중 유일하게 시민의 지지를 받던 라마르크 장군이 사망하면서 학생들은 그의 장례식날 혁명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같은 날, 장 발장은 자베르 경감에게 잡힐 것을 걱정해 코제트와 함께 프랑스를 떠나려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 수십 년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공연 3시간 20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많은 사람이 ‘레미제라블’ 하면 단순히 ‘빵 훔친 장 발장 이야기’로 알지만, 뮤지컬에서는 그런 배경 설명을 초반 5분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대신 후반부 혁명 당일 이야기에 무게를 실었고, 그만큼 주제가 극명해졌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송 스루(song through)’ 뮤지컬로, 가사 하나하나에 줄거리와 인물의 심정이 집약적으로 표현됐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장 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갈등에서도 각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자베르 경감의 마지막 선택이 깊은 감동을 남긴다.



    대부분 ‘레미제라블’을 보고 혁명과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사랑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판틴, 코제트를 친딸처럼 돌보는 장 발장, 그리고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에포닌이 특히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때문에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막이 오름과 동시에 작품에 집중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인 ‘레밀리터리블’에서 “제설, 제설”하는 가사로 유명했던 곡 ‘Look Down’은 작품을 지배하는 뮤지컬 넘버다. 분노로 가득 찬 수감자와 하층민들이 자신을 ‘노예’라 칭하면서 “하늘이여, 제발 날 죽여주소서”라며 절규하는 모습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귀에 쏙쏙 들리는 내용…감동 밀물
    장 발장 역을 맡은 정성화는 그 무게감이 대단하다. 사실 정성화가 장 발장 역에 단독 캐스팅됐을 때 ‘뮤지컬 팬’이 아닌 사람은 조금 의아해했다.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출발한 그는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영웅’의 안중근, ‘M.Butterfly’의 여장 남자 송 릴링 등 꿈에 그리는 배역을 차례로 따냈다. 그리고 장 발장 역을 맡으려고 한 달간 5차례나 오디션을 봤다. 잘생긴 얼굴, 좋은 배경이 아니라 순전히 실력만으로 이룬 성과다.

    ‘레미제라블’은 초연 준비 당시 배역 경쟁이 치열했다. 세계적인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10차에 걸친 깐깐한 오디션으로 직접 배우를 뽑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실력이 검증됐다. 특히 코제트 역을 맡은 이지수는 청아한 음색으로 코제트 역을 100% 소화했다. 20세 대학 초년생으로 이번이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4월 8일부터,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오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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