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4

2013.02.04

스마트폰 중독 비상! “아이들 뇌가 죽어간다”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13-02-01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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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중독 비상! “아이들 뇌가 죽어간다”
    “‘가슴 아파도 나 이렇게 웃어요~.’ 요즘 제 마음이 이런 노래 가사 같네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K(46)씨는 1월 14일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 그날은 그의 19번째 결혼기념일. 퇴근길에 자그마한 축하 케이크를 사들고 귀가한 그는 몇 시간도 안 돼 두 아이와 ‘정면충돌’했다. 이유는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때문.

    가족 갈등과 마음고생 주범

    3월 자립형사립고에 진학할 중학교 3학년 딸아이는 겨울방학 시작 이후 공부는 뒷전인 채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취침시간 이불 속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놓는 법이 없었다. 곧 중학교 2학년이 될 아들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평소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아들에게서는 최근 두 달 새 스마트폰 게임인 ‘스페셜포스 넷’ 초대장과 ‘터치파이터’의 도전장까지 카카오톡 단체문자로 날아든 터였다.

    가뜩이나 아이들의 행동을 마뜩잖게 여기며 벼려오던 K씨. 그는 이날 격분한 파이터로 변했다. 충격과 공포에 질린 아이들 역시 스마트폰이 자신의 심장이라도 되는 양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이내 파이터의 상대는 아내로까지 확대됐다.



    결혼기념일에 부부싸움까지 대판 하게 된 ‘스마트폰 사태’로 심한 자괴감에 빠진 K씨. 그는 열흘간의 가족 냉전 끝에 자신이 내린 ‘스마트폰 계엄령’으로 결국 작은 승리(?)를 맛봤지만 마음 한켠에선 씁쓸함이 넘실댄다.

    “한낱 디지털기기 때문에 제 분신(分身)과도 같은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대한 걸 생각하면 후회스럽기도 해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밤 12시면 폰 반납해야 함 ㅠㅠ.’ 오늘밤도 딸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를 검색하며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아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K씨. 그런 그도 설 연휴가 다가오자 슬슬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행여나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이는 명절날 고향 밥상머리마저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마약’이 한자리 떡하니 차지할까 봐서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 명 시대. 스마트폰 때문에 가족 갈등과 마음고생을 겪는 이가 비단 K씨뿐일까. ‘국민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무제한으로 주고받는 문자,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 인간관계, 수업시간 중 스마트폰 반납을 둘러싼 초중고교 학생과 교사 간 실랑이, 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물론 얼굴 보자고 모여 앉은 회식 자리에서조차 각자 손바닥을 향하는 시선…. ‘스마트 혁명’이 급물살을 타는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의 오늘은 온통 ‘고개 수그리’ 모드다. 소통과 공감을 원하면서도 ‘함께’이면서 ‘따로’인 세상이다.

    시공을 초월한 ‘하이퍼 커넥티드’(hyper-connected·과잉연결) 환경은 스마트폰 중독이란 괴물을 낳았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스마트폰이 늘 곁에 있다. 배터리가 거의 닳아간다는 잔량 표시만 보면 괜스레 불안해진다.

    흔히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 사용에 대한 금단과 내성을 지니며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가 유발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스마트폰 중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사용 시 스스로 조절능력을 잃고 과다하게 사용함으로써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를 중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스마트폰 도입 초기 미국에서 ‘크랙베리’(crackberry·코카인 일종인 크랙과 스마트폰 블랙베리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처럼 마약에 비견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보니, 충동 억제와 통제력 면에서 성인보다 취약한 청소년과 유아나 아동에게 끼치는 스마트폰의 영향은 자못 심각하다.

    스마트폰 중독 비상! “아이들 뇌가 죽어간다”
    인터넷 중독보다 훨씬 심각

    스마트폰 중독 현황은 인터넷 중독 경우를 능가한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1년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중독률은 전체 조사대상자의 8.4%로, 인터넷 중독률 7.7%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인터넷 중독자의 25.0%가 스마트폰 중독을 함께 갖고 있었다. 스마트폰 중독률을 연령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디지털기기에 친숙한 10대가 11.4%로 가장 높았으며 20대 10.4%, 30대 7.2%, 40대 3.2% 순이었다.

    중독자들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8.2시간(일반 사용자는 3.0시간). 주된 스마트폰 이용 목적은 중독자와 일반 사용자 모두 메신저 앱(카카오톡, 마이피플 등)을 통한 채팅(65.1%)이었다. 다만 스마트폰 중독자의 경우 인터넷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뉴스 검색(31.7%) 이용 비율이 낮고 채팅(77.7%), 음악감상(41.3%), 게임(36.3%) 등의 비율이 높았다. 또한 스마트폰 사용자의 하루 평균 SNS 이용시간은 59.7분으로, 스마트폰과 SNS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조사 결과는 같은 해 10월부터 12월까지 만 5~49세 국민(최근 1개월 이내 1회 이상 인터넷 이용자)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2004년부터 해마다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를 해왔다. 스마트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것은 2011년이 처음. 2012년 실태조사 결과는 올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인터넷 중독보다 스마트폰 중독에 더 쉽게 빠지는 까닭은 뭘까. 엄나래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상담센터 책임연구원은 “개인용 컴퓨터(PC)에 비해 훨씬 용이한 접근성과 휴대성, 출퇴근시간이나 심야에도 장시간 무한소통이 가능한 스마트폰의 특성과 사용 패턴이 사용자를 더 심각한 중독에 노출되게 하는 주원인”이라면서 “모바일 메신저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통한 사회적 관계 형성에 대한 욕구도 중독성을 높인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12년 11월 1일부터 26일까지 만 12~59세 스마트폰 사용자 4000명을 대상으로 2012년 하반기 스마트폰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용자의 77.4%가 특별한 이유 없이도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폰 대중화가 가속화하면서 스마트폰 중독은 청소년과 성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아나 아동의 경우도 문제다. 이은실 인터넷중독상담센터 책임연구원은 “아이를 달래려는 등의 용도로 부모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유아와 아동은 통제력이 약해 외부자극이 강한 스마트폰에 쉽게 빠져든다”면서 “부모가 먼저 스마트폰의 위험성을 깨닫고 자기소유욕이 막 생겨나는 유아와 아동에겐 스마트폰을 아예 건네주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유아와 아동까지 빠져들어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각종 스마트기기가 보편화하면서 알코올, 니코틴, 마약 등 물질중독에서 스마트폰, 온라인게임 같은 행위중독으로 중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면서 “청소년의 경우 행위중독에 더 빠지기 쉬운 반면, 이를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상 스마트폰 중독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은 ‘S-척도’라고 부르는 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 척도.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중독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소가 잇따르자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1년 개발한 표준 척도다. 만일 자신의 스마트폰 중독 여부를 알고 싶다면 이 척도를 통해 스스로 진단해볼 수 있다(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 척도 참조). 자가진단 결과 일반 사용자군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 혹은 고위험 사용자군으로 진단되면 일단 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 경우 인터넷중독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시도에 지역거점센터 11개소를 둔 인터넷중독상담센터는 전문상담사들을 배치해 유아와 아동, 청소년은 물론 성인의 스마트폰 중독 예방교육 및 상담 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상담방식은 내방 상담을 비롯해 전화, 메신저, 화상 및 문자 채팅, 게시판 상담 등 다양하다.

    인터넷중독상담센터에 따르면, 위험군으로 분류되더라도 상당수는 상담 자체만으로도 사용자 본인은 물론 그의 가정에까지 좋은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만일 불안, 우울 등에 관한 심리검사 결과 약물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협력병원에 전문치료를 의뢰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중독을 극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고교 1학년인 이경민(가명·16) 양의 경우도 그렇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던 이양은 본인 스스로 피곤할 정도가 되자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의사는 하루 중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해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3주 뒤 재상담한 결과, 이양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때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시간뿐. 의사는 일단 30분이든 1시간이든,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땐 연속극을 보면서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는 등 엄마와 함께하는 최고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처방을 내렸고, 이양은 3주간의 노력 끝에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났다. 물론 엄마와의 관계도 개선됐다.

    스마트폰 중독 비상! “아이들 뇌가 죽어간다”
    스마트폰 중독 비상! “아이들 뇌가 죽어간다”
    마음 연 아날로그 대화가 해독제

    신동원 성균관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소아나 청소년의 경우 스마트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맞벌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가정불화 등이 스마트폰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10세 미만까지는 스마트폰을 뺏는 방법만으로도 중독에서 벗어날 소지가 높다. 금단증상이 나타나더라도 3주 정도면 책읽기나 다른 놀이를 통해 스마트폰 외의 자극을 찾아 활동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신 교수는 또한 “청소년기엔 뇌 구조적으로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인한 주변과의 갈등이 심하다”면서 “이 시기엔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내적 동기가 필요하므로 중독에서 벗어나기까지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디지털 마약’엔 아날로그적 표현방식인 진심어린 대화가 스마트한 디지털 디톡스(Detox·해독) 구실을 하는 셈이다.

    중독과 과도한 통신비의 주범이기도 한 스마트폰. 화장실 변기보다 10배나 더럽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가끔은 전원을 꺼두는 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앞으로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스마트폰에 이런 경고 문구를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은 당신의 건강과 가정의 화목에 해롭습니다.’

    스마트폰 중독 상담 :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상담센터(1월 ‘인터넷중독대응센터’에서 ‘인터넷중독상담센터’로 명칭 변경), 상담콜센터 1599-0075(연중무휴 오전 9시~새벽 2시)

    홈페이지 www.iapc.or.kr 모바일 서비스 m.iap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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