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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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스러운’ 게 뭐냐 묻는다면

제1회 잔다리 페스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10-29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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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앞스러운’ 게 뭐냐 묻는다면
    주말이면 ‘홍대앞’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홍대앞이 붐비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작은 가게는 너나없이 프랜차이즈로 대체됐다. 지금 홍대앞에서 20년 넘게 버틴 가게는 10곳이 채 안 된다. 주말이면 수만 명이 홍대앞을 찾는다지만, 그들의 목적은 문화와 예술이 아닌 음주가무다.

    홍대앞이 ‘홍대앞스러웠던’ 날도 많았다. 1995년 5월 지금의 상상마당 앞 주차장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쇼’가 대표적이다. 초기 인디신(인디밴드가 활동하는 장소나 무대)의 중심이었던 펑크 성지,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지하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선 것이다. 지금이야 거리공연이 일상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갖가지 색깔로 물들인 머리와 찢어진 바지에 체인을 매단 펑크밴드가 홍대앞과 명동에 이틀씩이나 출몰한 건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홍대앞스럽다’는 개념이 싹을 틔운 날이기도 하다.

    1998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도 홍대앞 문화를 세상에 알린 주역이다. 2002년 이후엔 ‘부비부비’로 상징되는 댄스클럽이 홍대앞 클럽만의 색깔로 자리 잡았다. 그 뒤로도 홍대앞스러운 날은 많았다. 1월에 열린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추모공연 ‘나는 행운아’가 대표적이다. 2010년 10월 갑자스레 세상을 떠난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이진원)을 기리기 위해 밴드 100여 팀과 공연장 10여 곳이 일종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만든 공연이다. 평일 행사였음에도 티켓 2000장이 삽시간에 동났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홍대앞을 홍대앞스럽게 만든다. 자본과 물욕으로 인해 사막화돼가는 홍대앞에 다시 문화와 예술의 비가 뿌린 날이다.

    10월 19~20일은 이런 홍대앞 역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날이었다. ‘제1회 잔다리 페스타’가 열린 것이다.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음악 컨퍼런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를 모델로 기획한 잔다리 페스타는 다른 어떤 페스티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먼저 이름난 기획사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아닌 홍대앞을 근거로 활동하는 거의 모든 단체가 뜻을 모았다. 공연 역시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늘 공연하던 곳에서 열렸다. 라이브 공연장뿐 아니라 공연 시설을 갖춘 카페와 술집까지 동원해 무대 30여 개를 만들었다. 그 무대에서 2000팀이 넘는 뮤지션이 이틀간 공연했다. 명실공히 홍대앞 사상 최대 물량을 자랑하는 행사였다.

    내용 면에서도 가장 홍대앞스러웠다. 고(故) 이진원의 친구들이 상상마당에 ‘달빛요정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과 인연이 깊은 베이스 장혁조가 몸담은 한음파, 타카피, 와이낫 등 고인의 생전 술친구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헤드라이너는 국카스텐이 맡았다. 1년여 만에 자신들의 뿌리와 같은 홍대앞에서 공연했다. 라이브클럽 DGBD에서는 크라잉넛 쇼가 열렸다. 크라잉넛은 홍대앞 뮤지션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1세대 인디밴드 중 하나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크라잉넛 쇼를 통해 새로운 밴드를 발굴하고 소개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도 크라잉넛 쇼를 통해 지명도를 높였다. 이날 크라잉넛 쇼는 더욱 특별했다. 노브레인과 함께한 것이다. 1998년 이후 두 밴드는 스스로 기획한 무대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없다. 이 오랜만의 해후에서 크라잉넛은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불렀다.



    토요일 상상마당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재즈 공연 역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그랜드피아노를 설치한 이 무대에서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신들린 연주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토요일 오후, 카페와 술집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들기에 바빴다. 대대적인 홍보는 없었지만 잔다리 페스타는 성황리에 첫 회를 마쳤다. 당초 기획의도였던 뮤직 컨퍼런스화를 위해 내년에는 해외 인디밴드와 유명 음악 관계자들도 초청할 계획이다. 그렇게 외부 자본과 지자체의 도움 없이도, 외국 록 스타나 여성 취향의 말랑말랑한 음악 없이도 음악이 음악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다. 잔다리 페스타가 한국 대중음악에 꼭 필요한 다양성의 보고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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