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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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약이 그녀를 삼켰다

억만장자 며느리, 마약 부작용으로 사망 두 달 만에 발견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hyb430@hotmail.com

    입력2012-08-27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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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라우싱(86)은 지난해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꼽은 세계 83번째 부자다. 약 10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채 은퇴한 그는 1960~70년대 우유와 음료수 포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기업 테트라팩(Tetra Pak)의 오너로 1994년까지 경영 일선에서 활약했다. 스웨덴 태생이지만 직계 가족과 함께 30년째 영국에서 사는 그는 돈을 많이 벌었을 뿐 아니라 학술, 의료 사업 등을 위해 거액의 기부도 해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그의 사돈 톰 케머니 역시 미국계 음료수 대기업 펩시에서 임원을 지냈으며, 세계 도처에 저택과 별장을 지닌 대단한 재력가다.

    라우싱의 외아들 한스 2세(49)와 케머니의 딸 에바가 1992년 결혼함으로써 두 집안은 사돈이 됐다. 그런데 에바가 영국 런던 자택에서 5월 48세 나이로 생을 마친 사실이 사후 두 달이 지난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죽음에 이른 과정과 뒤늦게 발견된 사연 등이 다시 한 번 마약의 참담한 폐해를 일깨워준다.

    한스 2세와 아내 에바의 시신

    7월 9일 런던 경찰이 갈팡질팡 주행하는 자동차 한 대를 멈춰 세웠다. 운전자는 횡설수설했고 노숙인 행색이었다. 차 안에서는 마약 투여 용구가 발견됐다. 그 운전자가 한스 2세였다. 경찰은 곧바로 런던의 최고 부유층 동네인 첼시 구역에 있는 그의 저택을 수색했다. 코카인과 헤로인 등 다량의 마약이 집 안에서 나오리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더 충격적인 상황이 전개됐다. 두 달 동안 부패해온 에바의 시신을 함께 발견한 것이다. 부검 결과 사인은 마약 부작용에 따른 심장마비였다.

    한스 2세와 에바는 20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 마약중독자 재활시설에서 함께 치료받으며 알게 됐고, 이 시설을 나온 뒤 결혼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여러 해 마약을 끊고, 마약에 대한 유혹을 부추길 수 있는 술조차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절 부부는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자녀 네 명을 두었다. 또한 해마다 수백만 달러씩을 마약중독자 재활치료기금에 기부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마약의 늪에 빠졌고, 네 자녀는 고모들이 맡아 키운다는 사실이 2008년 드러났다. 그해 런던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한 파티에 에바가 코카인을 소지한 채 손님으로 참석하려다 정문 보안검색에서 적발된 것이다. 이를 통보받은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한 끝에 숨겨둔 마약을 찾아냈다.

    당시 별다른 처벌을 받진 않았으나 보도를 통해 헝클어진 삶이 공개되자 이들 부부는 이후 최근까지 4년간 자택에 은둔했다. 에바는 그나마 재산관리 문제로 컨설턴트와 만나는 등 외부인과 최소한의 접촉을 해왔으나 한스 2세는 아내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초라한 옷차림으로 동네 길모퉁이의 현금자동지급기를 조작하는 모습 등이 사진으로 찍혀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리곤 했을 뿐이다.

    이들의 집은 방이 수십 개에 7000만 파운드에 이르는 고대광실(高臺廣室)이지만, 은둔기간에 부부는 그중 후미진 방 하나만 사용했다. 방 앞에는 바리케이드를 쳐놓아 저택 관리인조차 접근하지 못했다. 이 방에 있던 에바 유해는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는 가운데 옷더미로 덮여 있었다. 그가 마약 복용과 관련한 질환 때문에 평소에 차고 있던 심장박동기는 5월 7일에서 멈춰 있었다.

    에바는 미국에서 재활치료를 받다 숨지기 한 달 전 런던으로 돌아왔다. 에바는 지인에게 결혼 후 술을 완전히 끊었다가 새 밀레니엄(2000년) 이브에 기념으로 남편과 나눈 샴페인 한 잔이 “옛날의 그 어두운 동굴에 다시 갇히게 된 계기였다”고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사후 알려졌다.

    한스 2세는 아내의 사망 원인에 관여하지 않았음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오히려 그는 아내 없이는 잠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극도로 의존하는 상태였다. 다만 시신을 방치한 점은 죄가 인정됐으나 이는 판단력이 어린아이 같았던 그가 아내의 죽음에 직면할 능력이 없이 공황상태에 빠진 때문이었다고 변호인이 진술했고, 판사도 이를 받아들였다. 8월 1일 1심 공판에서 판사는 “피고인을 징역 10월에 처하나 2년 동안 철저한 재활치료를 받는 것을 전제로 형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공소 사실을 피고인이 바로 시인했기 때문에 재판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피고인과 그 아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질적 풍요와 함께 상당 기간 행복한 가정을 향유했지만 마약에 다시 빠져듦으로써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적었다.

    마약 위험성 일깨우는 교훈

    테트라팩은 현재 임직원 수 2만2000명, 매출액 99억 유로(2010년)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제1 본사는 스위스 로잔, 제2 본사는 스웨덴 룬드에 있다. 한스 2세의 할아버지 루벤 라우싱이 1951년 이 회사를 창업했다. 우유, 아이스크림, 주스 등을 포장하는 방식으로 유리병이나 금속 캔만 사용하던 1950년대에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두꺼운 종이 포장지에 식품을 담는 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60년대에는 비용을 줄이고 영양분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는 식품의 고온 순간 살균처리 기술까지 완성했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당시 이 기술들은 획기적이었다. 유리병이나 캔은 원기둥 형태인 데 비해 육면체인 종이팩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 공간 낭비를 줄인다. 여기에 새로운 살균처리 방식까지 더해져 가공식품을 저비용으로 대량 유통,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테트라팩은 이 방식의 식품 포장에 필요한 재료와 장비 등을 판매한다.

    테트라팩이 소기업이던 시절부터 창업자의 두 아들 가드와 한스가 함께 일을 했다. 회사가 세계적 대기업으로 몸집을 키우던 시절 차남 한스가 아버지 다음으로 회사에서 2인자 구실을 했고, 1983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회사 지분 50%와 함께 경영권을 승계했다. 스웨덴이 뿌리인 기업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고, 오너 역시 외국에서 살게 된 것은 자국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장남 가드는 스웨덴인의 조상인 바이킹족의 문화를 전공한 고고학 박사로, 회사 일 외에 학문 탐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상당한 업적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드가 1995년 동생의 지분 전량을 70억 달러에 사들여 새 오너가 됐다. 2000년 가드가 타계한 뒤 현재 그의 세 자녀가 이 회사의 오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기업 공개가 안 된 비상장회사다. 뒤늦게 형제간 경영권 승계가 바뀐 이유는 밝혀지진 않았으나 마약과 관련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한스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영국의 한 농장에서 사슴을 기르며 지내는 한스 내외는 사건이 불거진 뒤 성명을 통해 “아들 부부의 비극이 마약의 위험성을 일깨우는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며 “사랑하는 아들이 길고 힘든 재활 과정을 견딜 힘을 내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스 2세의 장인 내외도 비슷한 내용에 자신들이 여전히 한스를 절대적으로 사랑한다는 뜻을 덧붙인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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