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9

2012.08.06

반값 할인의 불편한 진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8-06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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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 할인의 불편한 진실
    온라인서점에서 반값 할인을 하는 것이야 일상적이다. 최근엔 밀리언셀러가 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마저 반값 할인 대열에 합류했다. 처음에 출판사는 과도한 재고를 싼값에 처분해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반값 할인에 참여했다. 그러다 점차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순위에서 밀리는 자사 베스트셀러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반값 할인을 활용한다.

    반값 할인을 할 경우 출판사는 온라인서점에 정가의 40% 이하 가격에 출고한다. 그런데 이 책을 독자가 전부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로부터 50%에는 책을 받을 수 없는 오프라인서점들이 대대적으로 구매한다. 서점들은 팔지 못해 재고로 남는 책을 70% 가격에 도매상으로 반품한다. 역마진으로 20%포인트가 남으니 팔리지 않아도 괜찮다. 한 서점이 홈쇼핑에서 대폭 할인해 판매하는 인기 시리즈를 30질이나 구매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 서점은 이렇게라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 아, 물론 도매상으로 반품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출판사도 이런 사실을 안다. 도매상을 통해 60%에 반품받으면 20% 손해를 입는다. 그럼에도 반값 할인에 참여하는 이유는 그것이 광고비를 투입하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반화하다 보니 출판사, 도매상, 소매서점, 독자로 이어지는 유통구조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중간 과정을 생략한다. 출판사가 독자와, 온라인서점이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해도 비정상적 할인판매로 유통구조가 붕괴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안철수의 생각’(제정임 엮음, 김영사) 유통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출판사는 온라인서점 위주로 책을 배포했다. 이미 점유율이 형편없이 떨어진 도매상은 처음부터 책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도매상을 통해 책을 공급받지 못한 일부 소매서점은 단골손님 확보 차원에서 온라인서점에 재빨리 주문했다. 온라인서점에서 한꺼번에 90권을 주문하니 바로 책이 도착했다는 소매서점의 증언도 있다.



    도매상에서 책을 공급받지 못한 소매서점들은 분노했다. 불과 며칠 만에 수십만 부가 움직였으니 소외된 서점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온라인서점의 비정상 유통이라는 독버섯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한 이후에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분노다.

    출판사 마케팅이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는 것에 집중되다 보니 비정상 마케팅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엔 ‘사재기’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심지어 “나 빼놓고는 모두 사재기한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를 알 수 없는 책에 대해 수소문해보면 ‘사재기’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물류 유통이 생산을 규정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러니 하루빨리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언제 어디서나 양질의 책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완전 도서정가제 시스템을 부활해야 한다.

    할인경쟁 구조에서는 팔리는 책은 빠른 시간 안에 더 잘 팔린다.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을 보면 안다. 하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책은 출간 자체가 어렵다. 이런 구조를 독자라고 원할 것인가. 이것이 서점과 독자가 반값 할인 책을 외면해야 하는 절대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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