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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김지영 기자의 스타 데이트

“벌써 다섯 번째…이번엔 소심한 엄마예요”

영화 ‘이웃사람’ 송경희役 김윤진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벌써 다섯 번째…이번엔 소심한 엄마예요”

“벌써 다섯 번째…이번엔 소심한 엄마예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순,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한 카페테리아에서 배우 김윤진(39)을 만났다. 영화 ‘심장이 뛴다’ 이후 1년여 만에 그가 스크린에 복귀하며 고른 작품은 김휘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이웃사람’.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이 영화에서 김윤진은 ‘또’ 엄마 송경희로 나온다. ‘6월의 일기’ ‘세븐데이즈’ ‘하모니’ ‘심장이 뛴다’에 이어 벌써 다섯 번째 ‘엄마’ 역이다. 그런데 그는 정작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두 엄마 역이긴 하지만 캐릭터나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거든요. 이번에 맡은 엄마는 무척 수동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특징이에요. 의붓딸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죠. 죽은 딸이 교복을 입고 매일 찾아오는데, 정면으로 반기지 못하고 계속 피할 정도예요.”

그는 자식 잃은 엄마의 심정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경희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A형이라 엄청 소심한 부분이 있어요. 겁도 많고, 일단 친해지면 오래가지만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 부분을 크게 키워서 극적인 상황에 대입하고 어떻게 연기할지 설계했어요.”

어릴 적 그의 꿈은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에서 미국 뉴욕 스태튼아일랜드로 이민 간 것이 계기였다.



“한창 예민할 때라서 미국 아이들처럼 영어를 못하는 게 창피했어요. 숫기도 없고 말도 안 통하니 학교에서 벙어리처럼 있다 오기 일쑤였죠. 보다 못한 엄마가 저를 드라마클럽에 보냈는데, 그 덕에 중학생 때는 교내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그때까지도 발음이 원어민만큼 정확하진 않았지만 무대에 서면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어서 만날 주눅 들었던 내가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평소와 달리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지요.”

발음 교정하려 잠잘 때도 라디오 들어

그때부터 연기에 빠진 그는 뉴욕 예술고를 거쳐 보스턴대학과 영국 드라마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브로드웨이 주변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다. “8년 동안 영어로 연기해 언젠가 미국 TV나 영화에 당연히 출연하게 될 줄 알았다”는 그는 지인 소개로 우연히 한국에서 먼저 활동할 기회를 잡는다. 그 작품이 바로 1996년 방송한 MBC 드라마 ‘화려한 휴가’다.

“처음엔 여행가방 하나 달랑 들고 한국에 왔는데 짐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어머니도 저를 돌봐주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아예 한국에서 살게 됐죠. 한국에 정착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정말 계획에도 없던 일이 벌어진 거예요. 미국에서 배우를 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연기생활을 하는 게 더 놀라워요. 한국어를 정말 못했거든요.”

미국에 살 때 부모님이 집에서만큼은 한국말을 쓰게 한 덕에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을 토대로’ 등 한자어가 섞이거나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뜻을 몰라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더구나 ‘버터발음’까지 섞여 두 번째 작품인 ‘예감’을 찍을 땐 방송을 모니터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미국에 이민 가서는 영어 못해서 고생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어 못해서 고생한 그는 “어디를 가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발음 교정하려고 연필 물고 책 읽고, 모르는 단어도 익히고….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24시간 한국어를 들었어요. 심지어 잠잘 때도요. 무의식 세계에서도 한국말을 들으면 한국말로 꿈을 꾸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그만큼 절실했어요.”

“벌써 다섯 번째…이번엔 소심한 엄마예요”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어에 익숙해진 그는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로 대종상영화제와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이후 그의 주 활동무대는 자연스럽게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2002년에는 영화 ‘밀애’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2007년에는 ‘세븐데이즈’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상복은 국경을 초월했다. 미국 ABC-TV 드라마 ‘로스트(Lost)’로 2006년 제12회 미국배우조합상 TV 시리즈 부문 앙상블연기상의 영예를 안은 것.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한 ‘로스트’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13명에 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 대해 그는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주연과 조연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촬영현장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연기에 충실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제작진뿐 아니라 연기자들도 나서서 의견을 조율하고 촬영장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걸 ‘로스트’ 조연을 하면서 알았어요. 그 뒤로 촬영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지요. 분위기를 띄우려고 재미없는 상황에서도 큰 소리로 웃고, 후배에게 먼저 다가가고, 술도 못 마시면서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고….”

환자 부자(父子)와 사랑에 빠지는 정신과 의사 역 도전

한동안 독신을 고집하던 그는 2010년 오랫동안 그의 전담 매니저였고, 소속사 대표인 박정혁(39) 씨와 하와이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그가 미국 진출 성공기를 담은 책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를 쓴 2007년 급격히 가까워져 3년간 남모르게 연애했다. 그는 “예전엔 결혼하면 아내 노릇도, 배우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결혼해보니 큰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남편이 외조를 잘해줘 전보다 더 편하다”고 말했다. 또 “결혼도 결혼이지만 40대에 접어드는 이 시점이 참 좋다”면서 “‘쉬리’에 출연할 때만 해도 30대 여배우는 주인공으로 안 썼는데, 지금은 또래 여배우들이 주인공을 해 흐뭇하다”고 덧붙였다.

8월 중순 개봉하는 ‘이웃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는 7월 중순 미국으로 떠났다. 내년 봄에 방송을 시작하는 미국 ABC-TV 드라마 ‘미스트리스(Mistresses)’ 촬영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커리어우먼 4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중 한 명을 맡았다. 유부남 환자의 정부(情婦)로 살다 그의 아들과도 사랑에 빠지는 정신과 의사 카렌을 연기한다. 그는 “14세 연하와의 파격적인 사랑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면서 “3040세대는 100% 대리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주간동아 847호 (p64~65)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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