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5

2012.04.30

러시아 최신예 핵잠수함 태평양함대에 실전 배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탑재 ‘유리 돌고루키’…미·중 군사력 견제 신호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4-30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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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최신예 핵잠수함 태평양함대에 실전 배치

    2007년 9월 부산 해군 3함대사령부에 입항하는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러시아가 올해 중 차세대 전략 핵잠수함 유리 돌고루키를 태평양함대에 실전 배치한다. 이 핵잠수함 이름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건설한 키예프공국의 왕자 이름에서 따왔다. 돌고루키는 1147년 모스크바 강과 네글리나 강이 합류하는 볼로비츠키 언덕에 나무로 된 성채를 쌓았으며, 이를 크렘린이라고 불렀다.

    크렘린은 러시아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과거 차르(황제)가 거처했고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러시아의 심장부다. 돌고루키의 동상은 모스크바 시청 앞에 우뚝 서 있다. 러시아가 차세대 전략 핵잠수함 제1호의 이름을 유리 돌고루키로 정한 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리 돌고루키는 러시아 군사력의 부활을 상징하는 존재로, 소련이 1991년 붕괴한 이후 러시아가 새롭게 디자인하고 실전 배치하는 첫 핵잠수함이다. 돌고루키가 모스크바의 초석이 된 크렘린을 쌓았듯이, 이 핵잠수함이 군사력 부활의 주춧돌이 되길 바라는 러시아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핵잠수함은 무게 2만4000t, 수중 배수량 1만4700t, 길이 170m, 넓이 13.5m인 보레이(‘북극바람’이라는 뜻)급이다. 승무원 130명이 탑승 가능하고, 최대속도 25노트로 항해할 수 있으며, 수심 450m에서 100일 동안 작전을 펼칠 수 있다.

    #러시아 군사력 부활의 주춧돌

    러시아 정부는 이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230억 루블(7억5500만 달러)을 투입했다. 특히 이 핵잠수함에는 최신예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인 불라바(‘철퇴’라는 뜻) 16기를 탑재한다. 탄두가 10개인 불라바는 사거리가 8000km이고, 목표를 350m 이내에서 정확히 맞힐 수 있다.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은 불라바의 경우 발사 이후 고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뚫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 해군은 오는 6월 25일까지 유리 돌고루키의 시험 항해를 마치고 하반기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같은 보레이급 전략 핵잠수함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를 오는 8월까지 시험 항해한 뒤 역시 태평양함대에 배치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러시아는 2013년까지 보레이급 전략 핵잠수함인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의 건조도 완료할 계획이다. 이 잠수함도 태평양함대에 배치한다. 러시아는 현재 3억5000만 달러를 들여 이들 잠수함이 기항할 기지를 캄차카반도의 빌류친스크에 건설 중이다. 러시아가 보레이급 잠수함 3척을 모두 태평양함대에 배치한다는 것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견제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태평양함대를 비롯해 극동 지역의 군사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제질서의 중심이 21세기 들어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옛 소련이 주력 핵잠수함들을 북해함대에 배치했듯이, 러시아는 군사력의 핵심인 보레이급 잠수함들을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아태 지역 전력 강화는 자국의 영향력을 복원하고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것을 계기로 ‘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5월 7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밀고 나갈 최우선 과제는 극동 개발이다. 러시아는 중국, 남북한(한반도)과는 국경을 접하는 데다, 태평양을 두고 미국, 일본과도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전통적으로 우호적 관계인 베트남을 비롯해 아세안 국가들과도 협력을 맺어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로선 옛 소련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아태 지역의 군사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둘째, 아태 지역 힘의 균형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데다, 이에 맞서 미국이 아태 지역으로의 ‘귀환’을 선언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로선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경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해야 최소한의 전략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러시아 국익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은 석유,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된 곳이다. 러시아는 이를 개발해 동북아 지역은 물론 아태 지역에 판매할 계획이다. 따라서 러시아로선 곧 완공할 육상의 파이프라인과 해상 수송로의 안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동방정책으로 영향력 확대

    또 사할린은 에너지의 보고(寶庫)인 데다, 캄차카반도와 오호츠크 해는 황금어장이기도 하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이 점점 해빙되면서 앞으로 북극 항로가 열리고 자원 개발도 쉬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북극권에는 석유가 최대 1600억 배럴(전 세계 5년 소비량), 천연가스는 최대 44조㎥(전 세계 10년 소비량)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북극 항로가 열릴 경우 북극해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북극해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바로 연결하는 북서 항로다. 북서 항로를 이용해 영국 런던에서 일본 도쿄까지 화물을 운송할 경우 파나마 운하를 거치는 것보다 7000여km를 단축할 수 있다. 북극해가 열리면 한국, 일본 등 극동 지역에서 출항하는 상선은 북서 항로를 거쳐 바로 북유럽으로 항해 가능하며, 기존 항로에 비해 3분의 1 정도 항해일수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북극 해빙에 대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넷째, 일본과의 영토분쟁에 대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상당히 오랜 기간 쿠릴열도(일본명 북방 영토)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양국은 그동안 경제협력을 통해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도출하지 못했다. 특히 러시아의 관점에선 쿠릴열도 4개 섬은 지정학적으로 전략 요충지다. 러시아는 쿠릴열도가 동북아의 세력 균형에 중요한 지렛대 구실을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최신예 핵잠수함 태평양함대에 실전 배치

    러시아 전략폭격기 Tu-95MS

    러시아 국방부는 현재 쿠릴열도에 배치된 포병부대를 자동화 보병여단으로 재편하고, 최신예 요격미사일인 S-400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S-400은 600km 떨어진 적의 전투기와 탄도미사일을 포착해 60~400km 거리에서 격추할 수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또 군용 공항을 만들어 대형 수송기와 공격 헬기의 이착륙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도입할 미스트랄급 최신 헬기 상륙함 2척을 쿠릴열도를 관할하는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예정이다. 이 상륙함은 전투 병력 450명, 대형 헬기 16대, 탱크와 장갑차 등을 싣고 최대 2만km를 기동해 작전을 펼칠 수 있다.

    다섯째, 북한의 급변사태를 비롯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푸틴은 극동 개발을 추진하려면 한반도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러시아가 중국과 함께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서해에서 작전명 ‘해상협력 2012’라는 대규모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러시아는 이 훈련에 태평양함대 기함인 미사일 유도 순양함 바랴그를 비롯해 함정 7척을 참가시켰다.

    #북 급변사태엔 한반도 개입

    특히 러시아 해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함정들은 혼성 편대를 구성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거쳐 대한해협을 통과해 서해의 칭다오 인근까지 항해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양국 함정의 대한해협 통과 훈련은 미국이나 일본이 유사시 대한해협을 봉쇄할 경우를 상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또 양국 함정이 합동 훈련을 실시한 해역도 서해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국의 훈련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저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에 견제구를 던지고 중국이 가진 전략도 파악하는 동시에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군사력을 과시한 셈이다.

    러시아는 또 전략폭격기인 Tu-95MS를 아무르 주 블라고베셴스크에 증강 배치하는 등 극동 지역의 공군력도 강화 중이다. Tu-95 MS는 핵탄두 장착 크루즈미사일 16기를 탑재하고 1만km를 비행할 수 있다. Tu-95 MS 2대는 2월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섬 인근 상공을 비행해 일본 전투기들이 비상 출격한 적도 있다. 당시 이 폭격기들은 동해상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도 침범해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출격했다. 또 미군의 핵심 기지가 자리한 태평양의 괌까지 비행하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러시아는 최신예 Su-24M2 펜서 전술폭격기 4대도 극동 지역에 배치했다. Su-24M2는 재래식과 핵폭탄을 모두 탑재할 수 있는 공격형 폭격기다. 러시아는 현재 시험 비행 중인 스텔스 전투기 T-50도 2016년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T-50은 최대 시속 2600km로 미국의 F-22(2100km)를 앞서고, 항속거리 역시 4300km로 F-22보다 1000km 이상 길다.

    앞으로 러시아가 지닌 극동 지역에서의 전력 강화 계획에서 주목할 점은 항공모함을 새로 건조해 배치할지 여부다. 러시아가 보유한 항공모함은 1985년 건조한 니콜라이 쿠즈네초프뿐이다. 만일 러시아가 최신예 항공모함을 건조해 태평양함대에 배치한다면, 러시아 전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아직까지 러시아가 새로운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 군사 전략가들은 미국 같은 대형 항공모함보다는 기동력이 뛰어난 항공모함을 건조해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지닌다. 러시아의 극동 지역 군사력 강화가 아태 지역 세력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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