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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우리들의 강남, 그들만의 강남

강남3구 범위와 심리 사람마다 제각각 … 세련과 졸부 이미지도 ‘하늘과 땅’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우리들의 강남, 그들만의 강남

우리들의 강남, 그들만의 강남
상전벽해(桑田碧海). SBS 인기드라마 ‘자이언트’에 나오는 1970, 80년대 서울 강남의 모습을 보면 절로 떠오르는 말이다. 뗏목을 타고 건너야 했던 양재천, 참외·땅콩밭이 가득하고 여름마다 홍수가 지던 황무지 강남. 그곳이 50년 만에 땅값이 최고 16만 배나 치솟아 한국에서 가장 부자동네로 변모했다. 그뿐 아니다. 강남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강남은 천의 얼굴을 가진 땅이다. 흔히 말하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강남구 대치1·2동, 잠실5·7동은 거주민의 97%가 아파트에 살지만 서울의 비닐하우스 거주자 중 90%가 강남권에 집중됐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리고 강남 사람들에게 ‘강남’이란 무엇일까? 10월 7일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에서 열린 ‘2010 서울학 정례발표회’에서 이동헌(영국 런던대 도시계획학 박사과정), 이향아(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학 박사과정) 씨는 ‘강남의 심상 규모와 경계 짓기의 논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강남에 대한 강남 사람들, 그리고 비(非)강남 거주자들의 인식 및 강남 내부에서 이뤄지는 계층화의 모습을 솔직히 담아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강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봤다.

타워팰리스 등장으로 강남 재서열화

“송파구는 강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석촌호수 지나가면 아파트도 오래되고 개발이 안 된 곳도 많고, 작고 오래된 가게도 다 그냥 있어요. 주상복합도 없고요.”(K씨·여·27)

사람들은 강남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인정할까. 위 연구자들은 183명에게 ‘강남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게 했다. 그 결과 흔히 말하는 강남3구를 모두 강남이라고 표시한 사람은 응답자의 4%(8명)밖에 되지 않았다. 역삼1동(179명), 삼성2동과 역삼2동(175명), 논현1, 2동과 삼성1동(174명) 등을 강남으로 표시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서초구 양재2동(92명), 강남구 내곡동(90명)과 송파구 오륜동(23명), 마천1동(22명) 등이 강남에 속한다고 한 사람은 비교적 적었다. 각자 ‘강남’의 범위를 다르게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응답자 중 강남3구에 거주하는 66명은 강남의 경계를 ‘강남구’에 한정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송파구 거주자 중 상당수는 ‘송파구가 강남에 속한다’고 응답했다. 강남구 거주자들은 ‘내가 사는 곳만 강남’으로 비교적 좁게 인식하고, 송파구 거주자들은 ‘내가 사는 곳도 강남’이라고 넓게 인식하는 것이다.



강남과 비강남의 경계를 어디에서 찾을까? 회사원 이모 씨는 “강남을 나누는 기준은 땅값”이라고 답변했다. 즉 송파구와 강남구 세곡동·내곡동 등은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으므로 강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업주부 학부모는 밀집한 학원가를, 30대 회사원은 편리한 교통과 복잡한 빌딩촌을 강남의 핵심이라 보았다. 한편 강남구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전직 공무원 O씨는 집값만 아니라 심리적인 기준까지 고려해 강남의 범위를 정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송파구는 오리지널 강남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수준 차가 나지요. 학력도 그렇고, 재력과 지위도 그렇지요. 수준이 달라요. …압구정, 청담, 삼성동 이런 곳이 오리지널 강남이지. …돈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근데 요샌 뭐 장사해가지고도 돈 벌어 오더군요. 치킨 팔아서 돈 있다고 오고.”

왜 같은 강남을 두고 이토록 인식 차가 클까? 모 심리학과 교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확대되면서 그 내부에서도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뉴욕’이 아니라 ‘맨해튼’에 산다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같은 뉴욕 안에서도 맨해튼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지만 브루클린은 그곳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쿨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 도곡동 한 부동산중개사는 “강남 내부의 재서열화를 가져온 건 타워팰리스와 고층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이라고 말했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 산다’고 안 하고 꼭 ‘타워팰리스 산다’고 말해요. 타워팰리스가 대한민국 0.1%의 상징이 되면서 다른 강남 거주자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거죠.”

‘졸부의 땅’이어도 언젠가는 가고 싶은 곳

부, 교육, 부동산, 세련. 대다수 응답자가 ‘강남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뽑은 단어다. 하지만 어디 거주하느냐에 따라 강남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달랐다. 강남 거주자들은 유난히 ‘세련, 편리, 문화적 여유’ 등의 단어를 꼽았는데, 비강남 거주자 중에는 ‘부자, 외제차, 경쟁력, 명품’ 등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다. ‘강남의 교육열’에 대한 답변은 강남 거주자와 비강남 거주자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강남 거주자들은 ‘고학력, 높은 교육열, 8학군, 좋은 학군’ 등 긍정적 가치의 어휘를 사용하는 반면, 비강남 거주자들은 과열된 학구열, 사교육, 학원가 등 비판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았다.

비강남 거주자 중에는 강남을 강남졸부, 된장녀, 오만 등의 어휘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상암동에 사는 임모 씨는 “누군가 잠원동, 청담동 등 소위 잘나가는 강남 동네에 산다고 하면 막연히 ‘친해지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민을 털어놓아도 공감을 못할 것 같고 나를 무시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제가 상대방이 잘산다는 걸 알고 접근한다고 오해할 것 같아요.”

얼마 전 (주)신세계 정용진 대표의 트위터에 오른 글 역시 강남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반발감을 보여준다. 트위터 마니아인 정 대표는 종종 ‘4스퀘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트위터로 전송한다. 이를 지켜보던 한 누리꾼이 “강남에만 너무 자주 있다”고 정 대표를 비판했다. ‘강남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답한 회사원 김성재(30) 씨는 “선거 때마다 강남 사람들의 이기심이 극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강남3구에서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면서 ‘서울시장이 아닌 강남시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사교육, 부동산 문제 등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이 자기 이익에만 충실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강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도 응답자 대부분이 강남에서 살기를 희망했다. 직장 2년 차 원모(30) 씨는 “학생 때는 강남 기득권층에 반발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착실히 돈 모아 10년 안에 강남 8학군에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강남에 대한 적대심의 다른 얼굴은 동경일지 모른다.



주간동아 2010.10.18 758호 (p58~59)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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