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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SOS! 대한민국 어린이로 살아가기 01

사랑하기에 뺑뺑이를 돌린다?

‘스펙 강박증’ 대한민국 부모들, 도를 넘은 아이 닦달

사랑하기에 뺑뺑이를 돌린다?

“어렸을 때 말이야. 어른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모여서는 아이들 학교성적 비교하는 거랑, 돌아와서 부모님이 닦달하는 게 진짜 싫었거든. 대학 가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이젠 어느 대학인지를 비교하잖아. 더 어른이 돼서는 ‘취직 안 하느냐’고, 간신히 취직한 이후엔 ‘결혼 빨리 하라’고 들볶았지. 결혼했더니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아이 낳았더니 이젠 아이들 성적 가지고 뭐라 그래.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언제쯤이야? 그야말로 죽어야만 끝나는 거야?”

“재벌이나 기득권자가 아닌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지금 이 시대에 아이를 낳는 건, 아이에게도 씻을 수 없는 죄”라고, 한 선배가 그랬다. 나는 그 말에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하면서도, 결혼한 여자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그 과제를 거부하지는 못했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였다기보다는, 나를 둘러싼 가족제도의 견고한 벽을 허물어뜨릴 수가 없어서였다.

옛날 농경사회 때 아이는 일종의 재산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곡식을 창출하는 노동력이었다. 이 말에는 가족 구성원을 어느 정도 소모품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아이는 되도록 많이 낳았다. 전염병과 기아가 지나가면 10명의 아이 중 4~5명이 살아남아 식량을 생산하며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대를 이었다.

저 먹을 복은 엄마가 관리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는 역시 재산이다. 그런데 그 재산이 상징하는 바가 조금 달라졌다. 어른이 될 때까지(이제는 어른이 된 뒤에도) 노심초사하며 건사하고 간직해야 할 보화로서의 존재가 됐다. 또는 집안의 재산 규모와 수준을 대변하는 존재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둘째나 셋째를 가졌다고 하면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보다 ‘요즘 살림이 폈나 보네’ ‘부자인가 봐’라는 부러움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 인사는 아이를 양육하는 환경이 ‘저 먹을 복은 타고난다’는 속담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함의한다. 즉 아이를 낳으면 저희끼리 알아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또는 농경사회 때처럼 그저 끼니만 챙겨주면 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집중적으로 아이의 성적 및 대학진학, 나아가 취직과 결혼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 요즘 엄마들은(혹은 아빠들도)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하며 아이를 자가용으로 실어나르는 ‘매니저’가 돼버렸다.

내가 아이를 가지자 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서둘러 구립 어린이집부터 등록해놓으라”고 충고했다. 그동안 나는 엄마가 된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충고가 막막하고 추상적인 뜬구름 같았다. 그래서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를 별로 낳지도 않는다는데, 우리 아이 들어갈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산부인과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를 안 낳는다고 난리인데, 어째서 나는 이 북적거리는 산부인과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지? 우리나라 모든 임신부가 여기 모여들었나? 불안한 마음에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구립 어린이집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은 후 예방접종하러 부지런히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그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아이가 맞아야 할 주사는 왜 이리 종류가 많단 말인가? 예방접종 목록표에는 3만원짜리 계절독감 주사부터 폐구균인지 뇌수막염인지 잊어버렸으나 보험 적용이 안 되는 15만원짜리 주사까지 다양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도 보배로웠으나, 아이의 몸은 점점 ‘금덩이’가 돼갔다.

이런 식이라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한테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어린 왕자’ 속 구절을 빌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한테 들인 접종비 때문’이란 말조차 나올 만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를 안고 병원이 있는 상가를 오르내리면서 많은 아이를 보았다. 아이들이 저마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회사원들이 끌고 다닐 법한 트렁크. 처음엔 아이들이 단체로 어디 놀러 갔다 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아이들은 매일같이 그날 ‘순례’할 학원의 교재와 태권도 도복, 악기 등을 그 트렁크에 담고 다닌다고 했다. 아이들이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짓눌리는 걸 방지하는 새로운 아이템이라나.

비정상적인 어른들 삶 강요 아닌가

눈앞이 깜깜했다. 우리 아이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트렁크를 끌고 다녀야 하나. 뒤늦게라도 내가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건 아닐까. 어른들이 늘 그래왔듯 나도 남들 눈치 때문에 아이의 성적을 가지고 닦달하고, 아이를 사회의 경쟁 제도에 밀어넣으며, 이른바 ‘스펙’이라는 걸 만들어주기 위해 아이가 원하거나 말거나 이곳저곳 체험학습장에 끌고 다녀야 하나.

그러다 아이가 스트레스 받거나 우울증을 앓거나, 또는 게임에 중독되면 어쩌지. 학습부진과 주의력결핍증후군을 염려하며 소아청소년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이에게 해줄 만큼 해줬다며 스스로를 위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부모를 원망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지만, 지금과는 많이 다른 듯하면서도 닮아 있다. 아이에게 부모의 물질적·정신적 욕망을 투사, 거기에 맞춰 살게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본다. 아이가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것저것 그려줘야 한다고 믿는 건 아닌지. 그러다 마침내 스스로 그림 그리는 법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아이들의 고단함은 어쩌면 어른들의 삶이 비정상적인 순환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궤적을 따라 똑같이 그려지는 것일지 모른다.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 우리 사회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 가족 내 성(性)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구병모 씨는 네 살 난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작가다. 청소년의 성장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내년쯤 선보일 차기작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9.11.03 709호 (p16~17)

  • 구병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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