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6

2009.07.28

회사가 붙잡는 아줌마에겐 뭔가 특별한 것 있다

‘슈퍼맨 직장인’보다 어려운 ‘원더우먼 직장인’으로 변신하기

  • 손정숙 자유기고가 soksaram1@hanmail.net

    입력2009-07-20 2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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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홈쇼핑 회사 머천다이저(MD·상품 선택부터 매입, 판매까지 책임지는 상품기획자)인 주부 A씨는 얼마 전 곤욕 아닌 곤욕을 치렀다.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 며칠 만에 사내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버린 것. 그러나 곱지 않은 시선을 어찌 감당하랴 가슴 졸인 것도 잠시, A씨는 뜻밖의 반응에 맞닥뜨렸다. 팀장부터 본부장까지 돌아가며 그를 호출해 “제발 회사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붙든 것. 덕분에 A씨는 스카우트 제의를 한 회사가 제시한 것보다 좋은 조건에 성공적으로 연봉협상을 마칠 수 있었다.

    # 2 대형 잡지사 기자 B씨는 요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네 살배기 아들을 봐주던 시어머니가 돌연 ‘육아해방’ 선언을 하는 통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가 붙들면 놀이방이라도 알아볼까 고민했지만,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회사는 그의 사표를 덥석 수리했다. 얼마 전 남자 후배가 나가겠다고 했을 때는 말술을 퍼먹이며 말렸던 상사들 아니던가. ‘일 하나만 놓고 보면 내가 후배에게 절대 꿀리지 않건만…. 걸핏하면 회식이라며 밤늦게 술 먹고 어울려 다니더니 끼리끼리 챙겨주는군.’ B씨는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이 치미는 걸 느꼈다.

    우리 사회의 ‘아줌마’ 직장인들은 A씨와 B씨 어느 쪽에 가까울까. 아마도 B씨에 가깝다고 느끼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살을 에는 불경기에 회사가 붙잡는 인재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긴데, 여기에 더해 직장에서 아줌마들의 순위란 남성은 물론 미혼여성에게도 밀려 밑바닥인 게 거의 확실하지 않은가. 하지만 통념에 사로잡혀 주눅 들어 있기만 해선 실제로 B씨 꼴로 끝날 수밖에 없다. 육아와 가사 부담이란 ‘악조건’을 뚫고 아줌마가 회사의 상위 1% ‘인재풀’에 간택되려면 어떤 생존전략이 필요할까.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증거를 대자

    살아남기 위해 전문성을 쌓으라는 말은 새해 덕담만큼이나 지당한 얘기다. 회사가 A씨의 소맷자락을 붙들게 한 힘도 전문성에서 나왔다. MD에겐 여러 바이어, 협력사 등과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밑천이다. MD가 떠나면 이 네트워크가 고스란히 옮겨 가버리니 회사로서는 매출에 직격탄이 될 MD의 이직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만큼 전문성은 필수 인재가 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하지만 누가 모르랴. 그래봐야 나는 MD도, 변호사도, 회계사도 아닌 일개 직원일 뿐인데…’라고 말한다면 이 역시 편견 때문이다. 전문성이 전문직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직무가 있는 곳엔 어디든 전문성의 보고(寶庫)가 있다.

    헤드헌팅 전문기업 HR코리아의 황소영 이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라”고 충고한다. 실적이 그때그때 매출로 집계되는 MD 업무와 달리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이 많다. 전문성을 인정받으려면 회사를 위해 어떻게 일했고 앞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증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매출이나 생산성 등 자신만의 기여도 지표를 마련, 스스로 전문성을 북돋는 데 활용하고, 밖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도구로 삼아라.

    사장을 꿈꿔야 팀장이라도 한다

    커리어 컨설팅업체 CMI연구소의 전미옥 대표는 “5~10년을 내다보고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지,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지를 먼저 정한 뒤 그에 맞춰 전문성을 쌓아라”라고 조언한다. 스페셜리스트가 목표라면 관련 자격증, 학위 등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깊은 우물’을 파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임원이 될 사람에겐 관리자로서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될성부른 아줌마들은 관리자로서의 전문성 쌓기를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커리어케어 신현만 사장은 “사장 되고 임원 되려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희생을 감수하며 먼 미래를 내다보고 두루두루 관계를 맺을 줄 안다.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진 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조직은 그런 사람을 키워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꿈이 있는 아줌마들은 사장을 꿈꾼다. 그래야 팀장이라도 한다.

    관리자가 되고 싶다면 자기 분야 외에 경영, 마케팅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도 쌓아라. 회사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늘 눈여겨보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리더십을 다져라.

    회사생활은 네트워크에서 네트워크는 회식에서

    회식을 밤늦게까지 끼리끼리 술 먹는 자리라고 기피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사표는 B씨의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수리될 확률이 높다. 혼자서 맡은 일을 아무리 꾸역꾸역 해내도 백면서생(白面書生)일 뿐이다. 조직 내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일은 대부분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일을 통해 성장하려면 관계가 중요하다. 이 관계가 싹트고 자라나고 거래되고 얽히는 곳이 회식자리다.

    회식자리에선 물 흐르듯 가장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이뤄진다. 네트워킹은 업무만큼, 어쩌면 그 이상 중요한 회사생활의 반쪽이다. 따라서 회식에는 되도록 참석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엄마이자 아내인 아줌마가 새벽 두세 시까지 술상 앞에 앉아 있긴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상사와 공식적으로 얘기하라. 회식과 관련해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선 미리 선을 그어둬라. 공연히 미안해하며 끌려다니다 보면 가정은 가정대로 걸리고 회사는 회사대로 불만이며 생활만 엉망이 된다. 이렇게 되면 업무와 건전한 네트워크 형성에 오히려 안 좋은 영향만 끼칠 수 있다. 업무가 아닌 일은 차라리 확실하게 맺고 끊어, 가능한 한도에서 최선을 다하라.

    세상은 ‘아줌마의 힘’에 눈을 뜬다

    황소영 이사는 “최근엔 기업체에서도 비서직에 미혼여성이 아닌 기혼여성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미혼여성보다 신변과 정서가 안정적인 데다 경험과 배려심도 많아 사내의 다양한 부침(浮沈)에도 동요 없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

    또한 집안 대소사와 아이들까지 챙기며 직장생활을 해온 ‘슈퍼 아줌마’들의 내공은 어지간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HP 인사담당 최영미 이사는 “가정을 챙기며 얻은 이런 평정심과 배려심 덕분에 여성 관리자는 부하직원에게 공감형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탁월하다”고 말한다. 영업조직에서 파워를 발휘해 깜짝 실적을 올렸다는 아줌마들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처럼 세상은 아줌마들의 힘에 새로이 눈뜨고 있다. 직장 내에서도 아줌마들의 도전이 거세다.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마술봉 같은 한 마디는 무엇일까. 전미옥 대표는 ‘꿈’이라고 말한다.

    “꿈은 목표와 계획의 동력입니다. 꿈을 재정비하세요. 꿈이 있는 한 우리의 능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인터뷰/페덱스 코리아 채은미 지사장

    “여자임을 스마트하게 이용하라”


    회사가 붙잡는 아줌마에겐 뭔가 특별한 것 있다
    국내 항공특송업계 최초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페덱스 코리아 채은미(46) 지사장. 그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페덱스 그룹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1991년 입사 후 최연소(28세)로 부장이 됐고, 한국인 최초로 북태평양 인사 총괄상무를 거쳐 페덱스의 첫 한국인 지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최초’ ‘최연소’라는 말에 익숙하다.
    물론 ‘유일한 존재’로 부각되기까지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실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여성이 더 잘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한 것은 그의 성공비결 중 하나다. 680명이 넘는 페덱스 코리아 임직원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그는 대표적인 ‘감성경영 CEO’로 꼽힌다.
    “지상운영부 이사로 있을 땐 200명 직원 대부분이 남자였죠. 나이 어린 여자상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는데, 첫 회식에서 모든 직원의 이름을 기억해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했어요. 그 뒤로 한결 의사소통이 쉬워졌죠.”
    대학생 아들을 둔 채 지사장은 성공한 ‘워킹맘’이기도 하다. “아들이 수험생일 때는 수첩에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적어가며 전화로 확인했다”는 그는 회사와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시간관리’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인 채 지사장은 “하루 중 가장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오전시간에 중요 업무를 처리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영자신문을 비롯한 각종 일간지를 챙겨 읽고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는 것은 20년간 계속해온 일과다. 서(西)일본 지역 고객서비스 팀장을 맡았을 땐 일본인 직원들과 대화하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일어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또 틈틈이 이화여대(불어교육학)와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경제학)을 다니며 자기계발을 했다.
    “네트워킹은 많은 여성이 취약한 분야예요. 모든 술자리에 참여할 필요는 없지만 꼭 가야 할 모임은 챙겨야죠. 업무에서 선택과 집중은 특히 중요합니다.”
    물류특송업계의 흔치 않은 여성 리더로서 고충을 묻자 “드물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효과도 있다”고 답한 그가 한 번 더 강조했다.
    “사회가 여전히 여성에게 호의적이진 않지만 여자인 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에요. ‘스마트’하게 이용하면 좋은 점도 많죠.”
    구가인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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