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2017.03.22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희망찬 미래

‘생산성 증가→노동시간 감소→여가 확대’ 선순환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7-03-17 17: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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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 빌 게이츠가 로봇을 사용하는 회사는 ‘로봇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의 등장으로 상당수  노동자가 실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로봇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자본가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노동자를 지원할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게이츠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창의교육을 위해 기존 12년(초6, 중3, 고3)의 보통교육 기간을 10년(초5, 중5)으로 단축하고 진로탐색학교 2년을 두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야기될 대량해고에 대한 대응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선주자들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제 나름의 전망을 제시한다. 4차 산업혁명의 파장을 걱정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생산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현재 노동자가 갖고 있는 숙련 기술이 무용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로봇세 신설, 기본소득 지급, 학제 개편 등 대안은 모두 다르지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생산성이 지나치게 빨리 발전하는 것을 걱정한다.



    생산성 급등이 문제라고?

    그런데 이 걱정은 현재 우리 사회가 실제로 직면한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경제성장률이 3.5% 정도였지만, 지금은 선진국의 경우 1%대로 추락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2000년대 초반 평균 4.7% 수준에서 2012년 이후 2%대로 고착됐다. 2015년 제조업 성장률은 1.4%로 주저앉았다. 3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한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성장률이 2.5%로 올라간 바 있으나, 2004년 이후 1.3%로 줄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지나치게 빨리 발전해 기존의 숙련 기술이 쓸모없게 된다고 걱정하지만, 현실은 생산성 발전이 저조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 MIT 명예교수는 1987년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음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 단, 생산성 관련 통계는 빼고”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생산성 혁명보다 생산성 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제시했던 학자가 토마 피케티다. 2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r≻g’라는 유명한 공식을 제시한다. 여기서 ‘r’는 자본 소유자가 여러 투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률이고, ‘g’는 경제성장률이다. 피케티는 소수 자본가에게 생산 수단이 집중되고 부의 불평등이 커지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높은 경제성장률의 편익은 대중이 공유하지만, 높은 자본수익률의 이익은 자본가의 자산만 늘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세기 이전에는 연간 자본수익률이 연간 경제성장률보다 3%p 이상 높았다. 20세기 들어서야 이 차이가 역전돼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평균 0.5%p가량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20세기 전반과 후반이 다르다. 20세기 전반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에 따른 파괴와 전쟁 비용 부담 때문에 자본수익률이 줄어 경제성장률과 자본수익률 격차가 역전됐다. 20세기 후반에는 전후 복구와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아져 자본수익률을 상회했다.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경험한 우리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1세기 넘는 기간에 연평균 2% 이상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시기는 20세기가 유일하다. 피케티가 염려하듯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1% 중반대로 하락하지 않고 2% 중반 내지는 3%대를 기록할 수 있다면 21세기는 20세기 인류가 경험했던 성장과 진보에 못지않은 멋진 신세기가 될 것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가 아니라 경제성장률이 낮을 때 더 커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급속히 발전한다는 것은 불평등을 낮추고 다수 대중의 편익을 높이는 ‘g’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왜 이 과정을 인위적으로 늦추는가. 로봇세를 도입해 빠른 생산 과정의 변화를 늦출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을 촉진해 성장률을 높일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이 너무 빨리 도래해서가 아니라 20세기 말 이후 기술혁신이 충분히 빠르고 광범위하지 못해 생산성 향상이 정체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생산성이 급격히 증대될 때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생산성이 정체될 때 쓸 수 있는 정책 수단보다 훨씬 많다. 가장 손쉬운 대책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려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2010년 타계한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분석에 따르면 연평균 노동시간은 1870~1973년 평균 40% 넘게 감소했다. 영국 노동자들은 1870년 연평균 2984시간을 노동했는데, 1998년에는 1489시간으로 51% 감소했다. 한때 ‘경제동물’로 불리던 일본인도 동기간 노동시간이 2945시간에서 1758시간으로 줄었다.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즐기는 사회

    티모 봅파트와 퍼 크루셀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대부분에서 연간 노동시간이 평균 0.45%씩 감소했다.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친구와 즐길 수 있는 여유시간을 가져다줬다. 나이가 들면 은퇴한다는 개념도 20세기 중반 이후 생산성이 증대하고 연금이 생기면서 인류 역사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다. 그 전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노동했다.

    한국은 다르다고? 1998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0시간이었다. 지금은 2113시간이다.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길지만(OECD 평균은 1766시간), 불과 17년 사이 평균 노동시간이 27% 줄어들었다.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 많은 정치인이 선망하는 독일은 연평균 노동시간이 137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 노동시간을 지금보다 30% 이상 줄이고 그에 맞춰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생산성 증대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 충격이 사라진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된다. 여성 차별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로봇이 가사노동을 대체하면 가사노동분담이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 영역이 크게 축소된다. 가사노동 관장이 로봇 조작으로 바뀌면서 가사노동 책임이 남성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에 가져올 충격을 걱정하는 일은 잠시 미뤄도 좋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이 제시해야 할 비전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과 사회보장 제도를 강화할 방안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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