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을 위한 헤지펀드

세계 최고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어디에 투자하는지는 기관투자자조차 알기 어렵다. 뮤추얼펀드와 달리 포트폴리오 구성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크고 유명한 헤지펀드일수록 비밀에 부친다. 펀드 규모가 크면 그만큼 많은 양의 거래를 해야 한다. 거래 양이 많으면 여러 번에 나눠 해야 하는데,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매매하면 헤지펀드에게 불리하다.
그런데 최고 헤지펀드들이 어떤 종목을 샀는지 시차를 두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국에는 ‘13F’라는 신고 의무가 있다. 모든 헤지펀드는 1억 달러 이상의 주식,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옵션을 소유한 종목이 있다면 매 분기가 끝나고 45일 이내 신고해야 한다. 지난해 4분기 모든 헤지펀드의 포지션이 2월 15일 공개됐다. 이 공개 내용을 통해 헤지펀드들의 매수(Long) 포지션을 종합해보면 정보기술(IT)과 소비재(Consumer Discretionary) 기업이 가장 많다. 시가총액으로 볼 때 페이스북,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차이가 없고 디즈니, 컴캐스트 등은 새롭게 50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13F를 따라 한다고 헤지펀드와 같은 수익률을 올릴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헤지펀드가 매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매도(Short)도 하기 때문이다. 전체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보기 전에는 왜 특정 종목을 매수했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13F를 보니 헤지펀드 매니저 A가 엄청난 양의 ‘갑’ 주식을 매수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매니저가 매수한 이유는 공매도한 ‘을’ 주식을 헤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공매도를 집중적으로 하는 헤지펀드가 아닌 이상 13F는 여전히 가치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헤지펀드가 매수에 중점(Long-biased)을 두고 있고, 포트폴리오 회전율(Turnover)이 낮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최근 비교적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13F에 공개된 유명 헤지펀드들의 투자 종목을 모방하는 펀드도 생겼다. 그중 하나는 헤지펀드 톱10의 포지션을 뽑은 뒤 그중 빈도수가 가장 많은 상위 50개 종목을 뽑아 지수로 만든 것. 이 지수로 ETF(Exchange Traded Fund)를 만들어 0.45% 수수료를 받고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헤지펀드 수수료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펀드 등은 지난해 시작된 터라 성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카피캣 투자자
헤지펀드를 카피하려는 금융업계의 움직임은 당연히 많은 헤지펀드를 불편하게 만든다. 헤지펀드 ‘D.E. Shaw’는 2007년 8월 14일 13F 신고를 빈칸으로 냈다. D.E. Shaw는 1990년대 이후부터 수학, 통계, 컴퓨터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퀀트 헤지펀드의 대표주자다. 그들은 13F를 빈칸으로 낸 이유로 카피캣 투자자(Copycat Investors)를 들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SEC)는 이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D.E. Shaw는 같은 해 10월 29일까지 790억 달러(약 90조8000억 원)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SEC는 경우에 따라 종목별로 1년까지 신고를 미루는 것을 허가한다. 비카스 아가왈 조지아주립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종목들은 다른 종목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냈다고 한다.실제로 투자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시장은 효율적이 되고 투자자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헤지펀드가 13F 신고를 미루거나 피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일반 투자자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 누군가 어떤 종목을 사라고 강하게 추천한다면 그는 이미 이 종목을 충분히 갖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당신이 그 종목을 사는 순간 그는 수익을 낼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경제방송에서는 출연자가 특정 종목을 이야기할 경우 보유 여부를 꼭 밝히도록 하고 있다.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
주간동아 1079호 (p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