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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연극 ‘서안화차’

진시황릉서 발견한 오래된 슬픔

진시황릉서 발견한 오래된 슬픔

진시황릉서 발견한 오래된 슬픔

주인공 안상곤 역의 박지일(맨 왼쪽)과 작품에 등장하는 토용.

“예술이 위안을 줘야 하는데, 이건 너무 추하잖아.” 연극 ‘서안화차’(한태숙 작, 연출)에서 주인공 안상곤이 만들어놓은 조각상들을 보고 친구 이찬승이 내뱉은 말이다. 안상곤의 조각상은 사실적이면서도 조각조각 파편화돼 있어 절망과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 조각들처럼 연극 ‘서안화차’는 안상곤의 내면에 자리한 흉측한 생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중국계 한국인으로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안상곤은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억누르고 살아오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집착과 분노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내성적이기 그지없는 그는 어느 날 진시황릉이 자신의 내면세계와 꼭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진시황릉을 통해 순장된 사람들의 고통과 정복의 쾌감이 뒤엉켜서 만들어내는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안상곤이 자신의 토용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바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집착하는 이찬승이라는 친구다. 그러나 이찬승은 안상곤의 마음을 이용해 그로 하여금 대신 대입 시험을 치르게 만들고, 그를 집의 지하실에 유인해 불구자 형제에게 겁탈당하게 한, 친구라기보다는 적에 가까운 인물이다. 둘은 세월이 지난 후 오랜만에 해후하게 되는데, 안상곤은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온 이찬승을 칼로 찔러 죽이고 그 위에 흙을 발라 토용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작품의 묘미는 안상곤이라는 개인의 상처를 거대한 스케일의 시공간으로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안상곤이 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극중극을 통해 고등학교 시절 이찬승을 죽이기 직전과,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몸을 흔들며 대사를 하는 현재가 교차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고대 중국의 이야기가 삽입된다.

2층의 공간에서는 오래전 중국인들을 연상케 하는 사람들이 한시를 읊고, 하나같이 이찬승의 얼굴을 빼다 박은 모양새를 한 안상곤의 조각상들은 극의 말미에 모두 토용으로 변신한다. 또한 진시황릉 내부를 닮은 안상곤의 내면을 느끼게 하는 음침한 무대는 현실적이기보다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징성을 띤다. 그리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듯한 거리감과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적 간극은 주제를 확장시키며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중반 넘어설 때까지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데, 바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이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진시황릉과 동성애자의 집착, 혼혈아로서 억압받았던 어린 시절 등의 이야기는 교묘하게 얽힌 인간의 욕망과 상처와 슬픔을 전달한다. 그리고 작품을 관통하며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토용들, 즉 안상곤의 조각상들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영원에 대한 집착은 인간이 고대로부터 극복하지 못한 슬픔이다.

전체적으로 암전이 많고 템포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으나, ‘뻔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와 다중적인 성격을 오가는 박지일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극에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다. 올해 극단 물리의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짧게 무대에 오른 ‘서안화차’는 내년 초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추천작

아트

11월30일까지, SM아트홀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하얀 바탕에 하얀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을 자그마치 2억8000만원이나 주고 구입해놓았다면? 겉으로는 탄탄해 보이는 20년의 우정이 속을 드러내는 순간, 참으로 공감 가는 ‘찌질함’과 가식에 웃을 수밖에 없다. 원년 멤버의 컴백!

늙은 부부 이야기

11월6~16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나이 든 사랑은 풋사랑만큼이나 순수하고 동화적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세월의 그림자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박동만 할아버지와 이점순 할머니가 온전한 마음을 담아 펼치는 생의 마지막 사랑 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릿

11월7~30일, 설치극장 정미소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세 명의 익살꾼 입을 통해 펼쳐진다. 수레무대를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넝마’ 콘셉트의 정감 있는 무대, 해골 등의 소품을 재치 있게 활용하며 보여주는 마임과 간결하면서 맑은 멜로디의 노래가 어우러지는 작품.




주간동아 2008.11.11 660호 (p81~81)

  •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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