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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누구를 위한 낙태 처벌 강화인가

인공임신중절수술, 부르는 게 값 … 생명 위협하는 불법 제왕절개 권유까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누구를 위한 낙태 처벌 강화인가

누구를 위한 낙태 처벌 강화인가

[shutterstock]

“요즘 일부 낙태 브로커가 수술비로 수백만 원, 심하게는 1000만 원까지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상당수 산부인과병·의원이 수술을 거부하니 낙태수술을 하려는 여성이 점점 더 큰 위험과 많은 비용을 감당하게 된 거예요.”

수도권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의 얘기다.

“최근 산부인과학회지에 실린 통계를 보면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안 해줄 경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미혼여성의 64%가 ‘불법시술소에 가겠다’고 답했더군요. 의사를 처벌한다고 낙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의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 처벌을 강화하려다 여성계와 의사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당시 불붙었던 ‘낙태 찬반’ 논란은 정리됐지만 의료 현장에 몰아친 후폭풍은 적잖다는 게 관계자들 얘기다. 당장 상당수 산부인과병·의원이 낙태수술을 중단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정부는 그동안에도 불법낙태수술이 적발되면 해당 의사에게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번에 그 기간을 12개월로 늘리려다 포기한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 사태 때문에 전 국민이 ‘낙태수술을 해주면 의사가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된 점이다. 이에 따라 처벌이 강화되지 않았는데도 의사가 느끼는 부담은 훨씬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음성적으로 낙태수술을 해주던 산부인과 의사 상당수가 직원 등의 신고 협박에 시달리고,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전해들은 동료 의사들까지 ‘이러느니 불법낙태수술을 안 하는 편이 낫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한 선택

‘불법낙태수술은 안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는 의문에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법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데, 막무가내로 지키라고만 하면 지켜지느냐”고 반박했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낙태를 범죄로 규정했다. 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임신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 신체 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인 경우 등에 한해 허용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범위를 벗어난 낙태수술이 제한 없이 이뤄졌다.

2005년 고려대 의대가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전국 775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 건수는 34만2433건에 달했다. 그중 32만7494건(95.6%)이 불법수술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정부 단속은 유명무실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봐도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최근 5년간 불법낙태수술에 대한 행정처분 건수는 16건에 그쳤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온 한 전문의는 “과거 정부가 낙태수술을 산아제한 수단으로 삼은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건소에서 관련 수술을 해주고, 낙태수술을 받으면 불임시술을 공짜로 해주는 등 혜택을 준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 의사가 밝힌 ‘불가피한 경우’ 가운데 하나는 미성년자의 임신이다. 그는 “미성년자가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한 경우 ‘소중한 생명이니 무조건 낳으라’고 할 부모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 산부인과 의사들 역시 ‘이 아이가 내 딸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마음으로 수술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불륜 임신’에 따른 낙태수술도 적잖다고 밝혔다. 그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 아이를 갖게 된 여성은 대부분 절박한 심정으로 산부인과병·의원을 찾는다. ‘수술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호소하는 임신부의 간청을 저버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태아 장애 때문에 하는 낙태수술도 없지 않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다운증후군이나 무뇌증 등으로 확진된 태아도 무조건 낳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평생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갈 것이 분명한 경우 상당수 부모는 아이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매우 낮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들의 선택을 비판하기 어렵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직면하는 낙태 요구는 이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 된다”거나 “터울이 너무 져 힘들다”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청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 모든 이유로 인한 낙태수술이 불법이다. 하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각각 만 23주, 만 24주, 만 12주 미만 임신부의 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 ‘모체보건법’도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수술을 인정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에 대해 “이들 나라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 안에서 낙태를 관리하기 때문에 수술 건수를 집계하고, 어떤 이유로 낙태가 이뤄지는지 조사해 이를 줄이려는 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만들고 이를 사실상 사문화함으로써 정책당국이 낙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병원 좀 알려주세요”

누구를 위한 낙태 처벌 강화인가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줄줄이 달린 인공임신중절 수술 가능 병원 소개 요청 글(위) [인터넷 포털 사이트 캡처]과 산부인과병·의원들. [박해윤 기자]

이런 상황에서 불법낙태수술을 받는 여성 역시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경기도에서 개업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2012년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 도중 사망한 미성년자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여학생은 사망 당시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1에 불과했다. 이 의사는 “정상 수치가 12~15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상태였던 것”이라며 “보통은 출산 중 과다출혈이 발생하면 즉시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후송해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수술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의사가 어쩔 줄 몰라 여학생을 방치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의사가 임신 20주가 넘은 여학생을 무리하게 수술한 것도 문제가 발생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임신 기간이 길수록 낙태수술 시 위험이 커진다. 웬만한 의사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불법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비용을 부담하며 저숙련자나 무자격자에게 몸을 맡기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런 위험은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과거 산부인과병·의원 개원의 10명 중 9명 정도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했다면 최근엔 그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 같다. 또 상당수 의사가 자기 병원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는 산모나 지인에게 부탁을 받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수술을 하기 때문에 그런 네트워크가 없는 여성은 안전한 수술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틈을 타고 ‘낙태 브로커’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낙태’ ‘중절’ 같은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하면 낙태할 수 있는 병원 소개를 부탁하는 내용과 그들을 유혹하는 브로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최근 일부 낙태 브로커가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는 임신 중·후기 여성에게 ‘제왕절개 낙태’를 권한다고 들었다.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더 고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불법적으로 제왕절개수술을 받다 과다출혈이 발생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법의 문제점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불법을 저지르는 의사와 ‘불가피한’ 불법을 저지르는 의사를 한데 묶어 취급한다는 것”이라며 “낙태를 양지로 끌어내고 불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관련 규정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7.03.01 1077호 (p52~5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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