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2016.12.21

커버스토리

황교안과 그의 나라

박근혜 대통령 그늘 벗어나 자기 정치 꿈꾸나…준비된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각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12-16 16: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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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뜨기 위해/ 제 속을 다 파낸다/ 너는 뜨기 위해/ 속을 다 파내 본 적이 있는가// 변명은 하지 마라/ 운이 있다고 하나/ 그건/ 준비된 자의 덤일 뿐이다.’

    박순길 시인의 시 ‘준비’ 전문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대행)는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며 퇴임사에서 이 시를 인용했다. 사법연수원 동기(한상대 변호사)가 검찰총장에 내정된 참이었다. 검찰 관행에 따라 사직을 결정한 황 대행이 이 시를 언급한 것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검찰이 비상하려면 국민이 원하지 않는 권위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선을 그었다. 시어 ‘너’의 자리에 자신이 아니라 검찰 조직이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어부지리? 준비된 권력?

    그러나 2016년 12월 이 시는 또 다른 의미로 읽힌다. 이번엔 황 대행이 다른 누구보다 높이 ‘떠’ 있기 때문이다.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그동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던 황 대행의 지위는 일약 ‘만인지상’이 됐다.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서를 청와대에 전달한 당일 오후 7시 3분, 헌법상 대통령 고유권한이 모두 그에게로 넘어갔다. △국군통수권 △선전포고권 △조약체결·비준권 △긴급명령 및 긴급경제명령 발동권 △계엄선포권 △공무원 임명권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 개정안 발의·공포권 등이 이에 포함된다.

    황 대행이 이 권한을 모두 행사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2004년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소추 정국에서 대행을 지낸 고건 전 국무총리는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탄핵) 사태 직후 학계와 정부 안팎에서 토론이 이어졌고 (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개략적인 범위가 제시됐다. (중략) 대통령의 통상 직무범위 내에서만 권한을 행사하는 게 옳다는 결론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황 대행은 이를 넘어 명실상부한 ‘1인자’ 행보를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취임일성’이라 할 만한 12월 9일 대국민담화문 역시 2004년 고건 전 대행이 발표한 것과 사뭇 다르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황 대행이 지금 자신의 상황을 ‘운’이 아니라 ‘준비된 자의 덤’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향후 국정운영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 국정운영 주도권은 국회, 그중에서도 야당에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황 대행이 기선을 제압한 모양새다.

    황 대행은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현 정부 최장수 장관 재임 기록을 세운 후 국무총리로 발탁된 인물이다. 현 국정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과 나눠서 져야 할 인사라는 점에서 한때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 또한 11월 초 정국운영의 해법을 모색하면서 황 대행 경질과 후임 총리 인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회가 신임 총리 임명을 위한 인준절차 자체를 거부하면서 황 대행은 어정쩡하게 자리에 남았다.



    공안검사 출신 Mr.국보법

    그의 ‘관운’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헌법 제71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그 권한은 국무총리가, 이후에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대행한다. 지금 상황에서 황 대행이 물러나면 다음 ‘대통령’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고, 이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이 권한을 행사한다. 야당 처지에서 볼 때 유일호 장관은 황 대행과 같이 일찌감치 교체가 결정됐던 인사다. 이준식 장관과 최양희 장관은 각각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창조경제’ 정책을 앞장서 이끈 인물로 황 대행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총리 탄핵의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 황 대행이 어부지리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궁박한 상태에서 ‘왕좌’에 오르고도 황 대행은 야당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 후 누구에게 경제사령탑을 맡길 것인가 하는 논란을 단칼에 매듭지은 뒤 경찰지구대와 교통순찰대 방문 등으로 ‘민생정치’ 보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12월 13일에는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등 이른바 ‘보수’ 인사를 초청해 국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진보’진영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황 대행이 그동안 본격적으로 정치를 한 적은 없지만 보수정부와 진보정부에서 두루 공안검사 생활을 해 정치 감각이 남다르다. 지금까지 몸을 낮추고 있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실천하는 관료’ 정도로 여겨졌지만 대행체제를 통해 점차 그의 내공이 드러날 것”이라고 평했다.

    당초 황 대행이 박 대통령의 눈에 든 것도 ‘만만치 않은 내공’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는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과 임수경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을 담당한 공안검사 출신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연달아 인사에 ‘물을 먹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때도 시류를 따르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국가보안법 해설’을 펴낸 게 한 사례다. 2011년 다시 출간한 ‘국가보안법’ 머리말에는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 위한 안보형사법이다. 우리의 안보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국가의 기간법(基幹法)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황 대행은 검사 시절에도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국가보안법 지킴이’를 자임했고, 자신이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 유연하게 접근하는 ‘신(新)공안’이 아닌 ‘구(舊)공안’임을 천명했다고 한다. 그가 진보 매체 기자들 앞에서 “여러분이 싫어하는 구공안검사 황교안입니다”라고 인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나 동기생에게 밀려 결국 옷을 벗은 황 대행이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 된 배경에는 공안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의 추천이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황 대행이 정말 박 대통령의 눈에 든 건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황 대행은 병역 면제, 전관예우 등으로 각종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야권의 집중포화를 피해갔다. 다양한 법조문을 근거로 들며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상당 부분 거부한 것이 한몫했다. 이 때문에 이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인사청문 대상은 국회에 특정 자료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황교안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보수의 새로운 희망

    황 대행은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의응답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야당 의원들은 황 대행에게 수차례 ‘5·16 군사정변’에 대한 의견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그의 서면답변 내용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분에서 그에 대하여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생각합니다”였다. 추가로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정홍원 총리는 똑같이 질문하니까 ‘우리나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군사정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거기에 동의한다’고 했다”며 거듭 의견을 밝히라고 촉구하자 “교과서 편수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번엔 박영선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나섰다. “그 말이 교과서 내용에 동의한다는 뜻이냐”고 다시 물은 것이다. 황 대행은 “제가 알기로는 교과서 편수자료에 그런 표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발끈했고, 서면으로 다시 정확한 의견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때 황 대행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답은 “대부분의 초중고 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용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였다.

    황 대행은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인사청문회에 나설 때도 이와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여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으로부터 “침묵과 자료 제출 거부로 지연작전을 쓰는 노련한 검사”라는 힐난을 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야당의 집중포화 앞에서 ‘굴하지’ 않는 태도가 보수층이 황 대행을 ‘차세대 정치인’으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있다.

    2013년 벌어진 통합진보당(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청구 재판도 황 대행의 존재가 부각된 사건 중 하나다. 당시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재판 과정을 주도했고, 사석에서 “2000년 (통진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을 때 언젠가는 위헌정당 심판이 있을 줄 알고 내 나름대로 준비해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후 박 대통령이 황 대행을 총리로 발탁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계가 반기문, 오세훈과 함께 황교안을 잠재적 대선주자로 키우려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황 대행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히며 A4 7장 분량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직접 발표했을 때는 이를 그의 대권도전과 연결시키는 해석도 있었다. 황 대행이 실제로 자천타천 ‘대망’을 꿈꿨다면 탄핵정국은 그에게 유리한 상황일 수 있다.  

    고건 전 총리는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노무현 대통령 권한이 정지돼 있던 2004년 4월 한덕수 당시 국무조정실장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한 실장이 고건 총리에게 ‘탄핵으로 재결이 나면(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하면) 그때는 권한대행을 하는 현직 총리가 (대통령선거에) 나올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고건 총리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내가 권한대행으로 국가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인데 누구한테 맡기고 입후보를 합니까’라고 했고, 한 실장이 ‘아,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국정운영은 경제부총리한테 맡겨야 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고 돼 있다. 이들의 대화는 고건 총리가 ‘말도 안 돼요. 위기관리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내 소명입니다’라고 말하며 마무리됐다. 같은 상황이 올 때 황 대행은 어떤 선택을 할까. 복잡한 정국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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