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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프리즘

남자는 헤어스타일로 말한다

  • 최현숙 교수/ 동덕여대 디자인학부

남자는 헤어스타일로 말한다

남자는 헤어스타일로 말한다

사치의 극을 보여주는 바흐의 헤어스타일과 터프한 매력을 보여주는 안정환의 헤어스타일(왼쪾부터).

30대의 그 남자는 2시간 반 이상을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그곳에 머무른 것은 족히 서너 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이미 거기 있었고, 내가 먼저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다(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미리 밝히자면 그곳은 미용실이었고, 손님은 우리 둘만이 아니었다).

여성들도 미용실에서 본격적으로 머리 손질에 들어가려면 트리트먼트·커트·파마가 기본 순서다. 거기에 염색까지 하면 2시간 반에서 3시간을 허리 아픈 거 참아가며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머리 하는 시간으로도 나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우아한 모습으로 손톱 손질까지 받았다. 거울을 통해 파마롤을 감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기를 바라며 그곳을 나왔다.

미술 작품을 통해 본 옛날 귀족 남성들의 머리는 치렁치렁하고 아름답다. 긴 머리에 흰 가루, 금은 가루를 뿌리고 보석 등으로 장식까지 한다. 어린 시절, 음악가 바흐의 길고 풍성한 컬은 그의 음악보다 먼저 나를 감동시켰다.

성서에서 삼손은 델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긴 머리카락을 잘리고 남성으로서, 민족의 사사로서 모든 힘을 잃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화기에 정부가 단발령을 내리자 강제로 상투를 잘라야 했던 전국 각지의 숱한 남성들이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부르짖으며 눈물로 호소하거나 격렬한 반발을 보였다.

헤어스타일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요일밤의 열기’로 유명한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는 가족이 함께 모인 뉴욕의 한 디스코테크에서 사소한 언쟁 끝에 아버지가 오랜 시간 공들여 길러온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자, “제 머리카락을 치시다니!”(머리가 아님에 유의)라며 화를 낸 적이 있다. 두발은 그가 배우로서 세계를 향해 투사하는 복합적인 이미지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흔히 큰 시험을 앞두고 남학생들이 삭발을 해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머리카락이 자람에 따라 의지의 힘은 점점 약해질지라도. 또한 비구니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앞에서는 절로 숙연한 마음이 된다. 그가 깎은 머리를 통해 속세와 자신의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기원한 남성의 짧은 머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50년 전 미국 해군의 복장규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포마드의 발명으로 두발을 정리하는 것이 좀더 편해졌는데, 끈적이는 물질을 발라 머리 모양을 정교하게 만들어 고정하는 데는 적지 않은 정성이 요구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늘 빗을 갖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남성 섹스 심벌로 등극한 그가 공연 중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동작은 요즘의 록 가수들이 사타구니를 움켜쥐는 것과 비슷한 성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비틀스는 남성 헤어스타일 사상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들이 머리를 완전히 덮는 변형된 시저커트(Caesar cut)를 하고 나타났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의 머리 길이가 귀를 덮는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걸레머리(mop top)’라고 불리며 환성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비틀스 스타일은 최초로 대중시장에 긴 머리가 어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히피운동의 물결 속에서는 ‘길수록 좋다’가 모토였다가, 이제 남성 헤어스타일의 다양화는 그 극에 이른 듯하다. 2002 한일월드컵을 즈음해서는 닭벼슬 같은 베컴 머리와 아줌마 파마 같은 안정환 머리 중 어느 쪽을 고를까를 자신의 얼굴과 상관없이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가 하면 독일이나 러시아의 스킨헤드족은 패션계에선 가장 시크(chic)하다고 여겨질 빡빡 머리로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 그러니 남성들은 미용실(또는 이발소)에 가기 전에 잠시 우리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자아의 내·외적 완성도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남성으로 사는 의무와 책임이 아니겠는가.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76~76)

최현숙 교수/ 동덕여대 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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