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2005.05.31

하마스 바람 ‘미풍에서 태풍으로’

팔 지방자치선거 48곳 승리로 파타흐와 어깨 나란히 … 인구 많은 선거구 대부분 석권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5-05-27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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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스 바람 ‘미풍에서 태풍으로’

    5월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하마스 지지자들이 전날 치러진 지방자치선거에서의 하마스 약진을 기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 내 정치 구도에 하마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은 바람이지만, 언젠가 태풍으로 바뀌어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역학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12월부터 올해 5월5일까지 치러진 두 차례의 지방자치선거가 하마스 바람의 진원지다. 이 두 차례의 선거에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전통의 집권 세력인 파타흐를 상당 부분 잠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러 대내외 사정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방자치선거는 한번에 시행되지 못하고 몇 차례 나뉘어 치러지고 있다. 5월5일 시행된 선거는 지방자치선거의 제2 라운드였다.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자치지역을 합친 총 82개 선거구 가운데 하마스는 30개 지역에서 승리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집권 세력인 파타흐가 차지한 38개 지역에는 못 미치는 숫자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왜 이번 선거가 ‘하마스의 실질적 승리’로 평가되는지 알 수 있다.

    밖에선 테러 단체, 안에서 자선기구

    파타흐가 차지한 지역의 인구수는 23만명이다. 그러나 하마스가 차지한 지역의 인구수는 60만명이 넘는다. 파타흐가 고만고만한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하마스는 덩치가 큰 주요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마스는 이번 선거가 열린 웨스트뱅크 지역 중 가장 큰 선거구이자, 예루살렘에 근접해 있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칼킬리아에서 승리를 거뒀다. 또 가자지구의 빅 3로 불리는 3개 지역(라파흐, 베이트 라히아, 부레이즈 난민캠프)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2004년 12월23일 웨스트뱅크 26개 지역과 올해 1월27일 가자지구 10개 지역에서 치러진 지방자치선거 1차 라운드에서도 하마스는 웨스트뱅크 7개 지역(파타흐 11개 지역)과 가자지구의 10개 지역 중 7개 지역을 차지한 바 있다. 하마스는 1·2차 선거를 합쳐 모두 48개 지역을 차지, 파타흐의 56개 지역에 버금가는 세(勢)를 갖추게 됐다.



    하마스가 이처럼 높은 대중적 지지를 얻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하마스를 이슬람 광신도 조직이나 테러 단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하마스는 이스라엘·미국·유럽연합(EU)의 테러 단체 목록에 올라 있고, 민간인에 대한 많은 테러를 자행한 바 있다.

    그러나 하마스를 단순 테러 단체로만 이해하면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거칠게나마 객관적인 관점에서 하마스를 이야기하자면,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옛 영토에 이슬람을 통치원리로 하는 이슬람 국가 설립을 목표로 하는 정치 단체다.

    하마스는 종교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후신으로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1987년 12월 발발)의 여파로 1988년 가자에서 아흐메드 야신에 의해 설립됐다. 하마스 산하의 여러 기구 가운데 무장투쟁을 담당하는 기구는 ‘이즈 에딘 카삼’이라는 조직. 그러나 무장투쟁 기구는 하마스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하마스의 주 역량은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 학교, 유치원, 고아원, 의료시설 등을 직접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자선기구에 맞추어져 있다.

    하마스 바람 ‘미풍에서 태풍으로’

    가자지구에 나붙은 하마스 후보자 지지 포스터. 지방자치선거 투표를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수업 모습 (위부터).

    이러한 사업은 하마스의 전신인 무슬림 형제단 때부터 해오던 것으로, 하마스는 이를 통해 일반 민중에게 이슬람 사상을 고취해왔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해방 쟁취의 수단으로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감행하기 때문에 테러 단체로 낙인찍혔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관점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가족과 친지의 복수를 해주고, 부상자들을 치료해주며,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보호자 없는 아이들을 양육해주는 고마운 단체인 것이다.

    하마스 영향력 더욱 확대될 듯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탄생한 정치질서 자체를 거부했다. 94년 설립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참여하지 않았고, 96년 총선거에도 불참함으로써 그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러 왔다.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고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며, 팔레스타인 옛 영토의 일부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워 이스라엘과 공존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를 거부한 것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제거해야 할 적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고, 팔레스타인 국가는 팔레스타인 전 영토에 이슬람 국가로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참여를 계기로 하마스의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7월에는 국회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입법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다. 하마스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입법의회 선거에 참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럴 경우 현재 파타흐 소속 의원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의석을 최소 30% 정도는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이 만들어놓은 제도권 안에 진입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에서는 이스라엘 군의 철수가 끝나는 연말로 선거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정대로 선거를 치렀다가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시간을 벌어보자는 속셈이다. 그러나 선거 연기에 대한 명분이 약하다. 더욱이 하마스는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지 않을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자칫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난처한 처지에 빠진 건 이스라엘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으로서는 자국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하마스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내 하마스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2004년 3∼4월 한 달 사이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과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연달아 표적 암살했고, 그밖에 수많은 조직원들을 암살·추방·감금해왔다. 그 결과 한때 하마스의 활동이 주춤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세력이 상당 부분 와해된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 하마스가 와해되기는커녕 제도권 안으로 진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이스라엘로서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공조관계를 이룬 적도 있었다. 하마스 설립 초기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순수 종교 단체로 간주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의 골칫거리였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이용할 속셈으로 하마스를 지원했다. PLO의 주축세력이 바로 파타흐인데, 당시 PLO는 지금의 하마스처럼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무장투쟁과 함께 테러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은 PLO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고, PLO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기구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탄생에 산파 구실을 했다. 이런 과거의 예를 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화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상생의 길이 있는데 어렵게 피해가는 것이 중동 정치다.

    하마스의 영향력은 앞으로 점점 확대될 전망이다. 지방자치선거의 마지막 라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선거가 치러질 100여 지역은 하마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선거 시행 순서를 정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상대적으로 파타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부터 먼저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과거 PLO가 그랬듯, 하마스가 테러 단체라는 오명을 벗고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정치 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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