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5

2016.09.14

사회

치과·피부과의 이상한 다툼 복지부는 여전히 복지부동

레이저 안전시술 두고 갈등 심화…7년 전엔 ‘무면허’ 주장, 지금은 침묵하는 복지부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9-09 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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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 치료는 피부과, 치과 치료는 치과, 이것이 상식입니다.”

    대한피부과의사회가 9월 5일부터 대법원 앞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최근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대법원은 8월 29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치과의사 A씨에게 무죄를 확정했고, 일부 의사단체는 “치과의사에게 레이저·보톡스 시술을 합법화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사건 발단은 다음과 같다. 치과의사 A씨는 2009~2012년 일부 환자에게 프락셀 레이저(fractional laser)로 피부 주름·잡티 제거 시술을 해 ‘치과의사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레이저 시술은 치과 의료기술에 의한 질병 예방이나 치료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교육과정에 안면피부 성형술, 레이저 성형술, 필러 및 보톡스 시술이 포함돼 있으며 A씨의 레이저 시술은 부작용이 적기에 치과의사의 이 같은 행위가 생명이나 일반 공중위생상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비급여 미용시술 두고 진흙탕 싸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의사 간 대립이 심화됐다. 치과의사들은 “판결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반면, 피부과 및 성형외과 의사들은 “치과의사가 레이저 시술과 피부미용 시술을 하면 안전상 위험할 수 있다”며 대법원을 질타했다. 대한치과협회(치협) 관계자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학생들은 본과에서 안면피부 종양, 염증성 질환에 대해 자세히 배우기 때문에 일반 의사보다 안면 부위 병변을 감별하는 데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치과에서는 이 악물기, 저작근 통증 등 치의학적 질환에 보톡스를 사용하며, 1997년 대한치과레이저학회를 설립해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위원회 통계에도 치과의사의 보톡스·레이저 시술에 대한 부작용은 거의 보고된 바 없다. 즉 치과의사의 보톡스·레이저 시술은 안전하다.”

    반면 피부과 개원의 단체인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피부 레이저는 오랜 교육과 수련이 필요한 전문 분야로 잘못 시술하면 흉터나 부작용이 남을 수 있다. 또한 미용시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피부암의 조기 진단을 놓칠 수 있다. 대법원은 향후 치과의사의 피부 레이저 시술이 국민 건강을 훼손할 경우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치협은 9월 5일 폴란드에서 열린 각국 치과협회 간담회에 참석해 호주 치과협회와 공동의제로 ‘보톡스 안면시술의 적절성’을 내세웠다. 한편 대한피부과의사회·대한피부과학회는 각각 ‘구강미백학회’ ‘피부구강치료연구회’를 창립하고 학술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치과 교육과정에 안면미용술이 포함돼 치과의사의 미용시술이 합법이라면, 피부과 교과과정에 있는 구강 해부, 구강 질환에 기반을 둔 구강 미백을 연구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명분 없는 행위에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현직 피부과 전문의 B(55)씨는 “피부와 구강 미백은 엄연히 다른 분야인데 피부과 의사가 어떻게 구강 미백을 하나. 이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부과 전문의 C(50)씨는 “구강미백학회 창립 선언은 같은 의사로서 부끄럽다. 전문분야인 피부 건강에 힘쓰겠다고 선언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과 의사들은 과연 진정성을 갖고 구강 미백을 연구할 용의가 있을까. ‘주간동아’는 대한피부과의사회에 구강미백학회 활동 계획과 연구 목적에 대해 질의했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



    의료법상 면허 범위 구체화해야

    현 상황은 의료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 미용 목적의 레이저·보톡스 시술은 의사에게 ‘돈벌이가 되는’ 비급여항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만 탓할 일은 아니다. 대법원과 보건복지부의 책임도 크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사 D(57)씨는 “의료행위의 합법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문성’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양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를 따로 양성할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대법원 판결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중위생·보건적 위험성은 의료·비의료행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공중보건적 위험성이 수평적 의료인(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각각의 면허 범위를 결정하는 핵심 논거가 될 수 없다. 한방의료는 의학적 원리의 질적 차이로, 치과의료는 치아와 구강이라는 양적 차이로 구분하는 것이 기존 법체계와 입법자의 의도 및 사회적 통념과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교수는 “의사의 면허 범위를 ‘공중보건적 위험성’으로 판단하면 의료법상 3종 면허제도(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의료법상 의료인의 임무 범위를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보건복지부 등은 의사단체와 소통해 합리적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현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12월 유권해석을 통해 ‘치과의사가 미용 목적으로 턱에 보톡스를 주입하거나 코와 입술 등에 필러를 주입하는 행위는 의료법의 치과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면허 의료행위로 결론지었지만, 이번 판결에는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의료법에서도 의료행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은 데다, 의료행위가 워낙 다양해 의사·치과의사의 의료 범위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향후 유권해석을 내릴 때도 대법원 판례를 참고할 예정이다. 의료법 중 ‘의료행위’에 대한 재·개정 발의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현재 의료법상 의료행위와 그 면허 범위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제12조 ‘의료기술 등에 대한 보호’는 ‘의료인이 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을 의료행위로 정의하며,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는 ‘의료인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들은 이 조항에서 “‘면허된 것 이외’의 범위가 불명확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의료법상 의료행위 규정조차 모호하게 방치한 보건복지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크다. 김지훈 경기도의사회 총무이사는 “보건복지부가 국민을 위해 좀 더 명확한 견해를 밝히길 바란다. 보건정책 전문기관으로서 최근 판결이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불거진 의사들 간 갈등을 완화하고 안전한 의료행위가 이뤄지도록 직접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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