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령수술’에 메스 못 대는 까닭

‘대리수술’ 내부자 제보 아니면 입증 어렵고…행정처분 자격정지 1개월 뿐, 형사처벌은 사기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8-12 17: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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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 동의 없이 수술 집도의를 바꾸는, 이른바 ‘유령수술(대리수술)’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성형외과의 메카라 부르는 서울 강남지역 유명 성형외과의원에서 유령수술을 대거 적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대학병원인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유령수술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목숨을 걸고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의 믿음을 짓밟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유령수술을 적발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적발한다 해도 법적 처벌이 가벼워 병·의원과 의사들에게 경각심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단 유령수술은 피해자인 환자가 마취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내부자 제보나 환자가 녹음기를 켜고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적발하기 어렵다. 어렵사리 유령수술이었음을 확인한다 해도 처벌이 미미하다. 현행 의료법상 유령수술을 한 의사에게 내려지는 처분은 1개월 자격정지가 전부. 형사소송을 해도 사기죄로만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환자가 상해죄로 고소해도 검찰이 이를 기각하고 사기죄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녹음기 갖고 들어가야 하나

    유령수술 실태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14년 4월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제보 때문이다. 성형외과의원의 과장광고와 의료사고가 잇따르며 성형외과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자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2014년 4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성형외과의원의 유령수술 사실을 밝혔다. 내부자 제보가 있자 고발이 이어졌다. 2015년 3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사)소비자시민모임은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발족해 올해까지 피해자 총 52명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형사고발까지 간 것은 4건으로, 그나마 환자가 수술실 내부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갖고 있는 경우였다. 이 가운데 정황 파악이 가능한 단 1건만 현재까지 형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유령수술은 증거 포착이 어렵다. 전신마취 상태인 환자 외에는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유령수술 가담자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자 제보나 환자 녹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도 유령수술을 막기 위해 예방책을 내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6월 22일 유령수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자 수술동의서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개정된 표준약관에 따르면 수술 의사가 변경될 때는 환자 또는 대리인에게 그 사유를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공정위 표준약관은 강제력이 전혀 없다.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한 법적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표준약관이 강제력은 없지만 표준약관을 지키지 않는 병원이 우선적으로 공정위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개연성이 높다”며 개정 표준약관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수술동의서 표준약관이 바뀐 뒤에도 일부 병원에서 또 유령수술을 시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형외과의원이 아닌 국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메머드급 병원이자 대학병원에서 유령수술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산부인과 의사인 A씨는 7월 24일 자신이 하도록 예정돼 있던 수술을 환자 몰래 후배 의사 2명에게 맡겼다. A씨가 유령수술을 감행한 이유는 일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참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수술 당일 일본으로 출국했고 수술을 맡은 후배 의사 2명은 각각 난소암 수술과 자궁근종 및 자궁적출 수술을 진행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진 것은 내부자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자 제보가 아니면 유령수술 여부를 밝히기 어렵다 보니 각 병·의원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수술실 내 CCTV 의무 설치 조항을 추가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의 요청이 있거나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수술에 한해서는 수술 장면을 CCTV로 촬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은 상정되기도 전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것은 도둑이나 ‘몰카’를 막으려고 탈의실에 CCTV를 다는 것과 같은 논리”라며 “여성 환자의 외과수술이나 비뇨기과 수술 장면 등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는 “CCTV 설치가 문제 될 부분은 없다”고 주장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설치될 CCTV는 수술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들이 수술실에 드나드는 것을 확인하고자 수술실 입구에 설치할 예정이다. 출입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니 수술 정보 유출 같은 부작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내부자 제보나 환자 녹취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환자 측이 유령수술 사실을 입증한다 해도 의사에 대한 법적 처분이 그렇게 무거워 보이진 않는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유령수술을 시행한다 해도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따른 의사면허정지 1개월 처분이 전부다.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유령수술만으로는 해당 의사에게 1개월 면허정지 처분만 가능하지만 수술 기록지에 적힌 의사와 실제 수술한 의사가 다르다면 3개월 면허정지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 이 밖에도 민형사소송을 거치면 추가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 목숨 걸렸는데 사기죄라니…

    하지만 현재까지는 형사소송해도 검찰이 유령수술을 시행한 의사에게 적용하는 혐의는 사기죄뿐이다. 현재 유령수술로 재판받고 있는 강남지역 한 성형외과의원의 경우 환자 측은 해당 의사를 사기죄와 상해죄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4월 사기죄만 적용해 의사를 기소했다. 환자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8월 1일 성명을 통해 “환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할 우려가 있는 유령수술에 대해 검찰은 상해죄로도 기소해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법학계 전문가들도 유령수술 의사를 상해죄로도 기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황만성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의료법학회·검찰 공동학술대회에서 “수술받은 환자에게 신체적 장애가 생겼다면 상해죄의 범주로 볼 수 있으므로 유령수술은 형사법상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도 비슷한 의견이다. 박영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기획의사는 “유령수술의 문제점을 의료계 내부적으로 알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자정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법적 처벌 규정이 명확해져야 유령수술 근절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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