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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촌티’ 전성시대

영화, 광고, 패션, 가요 등 복고물결… 유치함 뒤편에 따스한 사람냄새 묻어나

지금은 ‘촌티’ 전성시대

지금은 ‘촌티’ 전성시대
총 천연색 영화, 서울 인근 지역 올 로케, 일백 프로 후시녹음’. 이런 홍보문구를 내건 영화가 있다. 언제적 영화냐고? 요즘 인터넷에서 절찬리에 상영중인 영화다. ‘다찌마와 Lee’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을 단 이 영화가 최근 조회수 140만을 돌파하면서 인터넷 영화 최고의 흥행 대박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찌마와리’는 70년대 영화계에서 쓰이던 일본식 은어로 액션-활극영화라는 뜻. 제목처럼 영화는 70년대 삼류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액션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정의의 사나이 다찌마와리가 시골에서 상경한 두 시골처녀를 불량배들로부터 구해내는 활약을 그린 이 영화에는 이소룡 식의 과장된 액션과 각종 영화-CF의 재기 발랄한 패러디, 그리고 고전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문어체 대사가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랑은 나에게 사치스러운 것, 사랑을 나누기엔 난 역시 너무 위험한 인물인가 보오” “티켓을 끊고 여행을 가주어야겠다. 목적지는 황천길!” “어둠의 뒷골목을 방황하지 말고 바른 삶을 살도록 하여라.”

지금은 ‘촌티’ 전성시대
영화를 만든 이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충무로의 타란티노’라는 명성을 듣고 있는 류승완 감독. “인터넷 영화라는 자유로움에 기반해 즐거운 심정으로 놀 듯이 만든 영화”라고 밝힌 ‘다찌마와 Lee’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동호회가 생기고 코스프래(직접 의상을 만들어 입으며 그 영화를 재연하는 마니아들의 행사)까지 기획중이다. 영화를 본 이들은 ‘너무 웃기고 재밌는 영화’ ‘비천무나 단적비연수보다 몇 배 낫다’ ‘죽은 이소룡이 감탄할 영화’라는 등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영화를 상영중인 시네포엠(www.cine4m.com)의 이성원 팀장은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클릭해 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마니아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이 영화의 의도된 조악함과 유치함은 새로운 창조로서의 ‘복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 ‘엽기’ 신드롬이 대중문화의 주류를 형성했다면, 이젠 그 흐름이 ‘촌티’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촌스럽다’는 말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부끄럽게 느꼈으나, 이젠 다들 ‘내놓고’ 촌스러워지려 한다. 젊은 세대에게 있어 ‘촌티’는 ‘새롭고, 흥미롭고, 신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박사의 메들리 뽕짝을 MP3 음악파일을 통해 인터넷에서 퍼 나른 이도 한국의 신세대들이었다. 이박사는 심지어 증권회사 광고에도 출연했다. 신뢰감을 주는 반듯한 모델이 정장차림으로 나오는 게 일반적인 증권 광고에 그는 밤무대 반짝이 옷을 입은 엿장수 스타일로 나와 신나게 놀자판을 벌였다. 신흥 증권사인 키움닷컴은 이 광고를 내보낸 지 3주 만에 대형사를 제치고 인지도 8위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촌티 풍속은 광고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 좁은 산동네 골목길을 배경으로 러닝셔츠 차림으로 출연한 아버지와 아들(‘한국통신 프리텔’), 70년대 읍내 이발관 앞에서 춤을 추는 촌스러운 젊은이들(‘갈아만든 배’). 북한 아나운서 톤의 멘트와 촌스런 옛날 간판들은 구세대들에겐 ‘향수’를, 신세대에겐 ‘새롭고 신기한 느낌’을 선사한다. 광고업계 관계자들은 “급진적이고 단절적인 시대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따뜻한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감성을 자극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아날로그풍 광고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구질구질한 산동네와 러닝셔츠 차림의 아저씨는 21세기 네트워크 세상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이다. 단순하지만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던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는 현대인들에게 심리적인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영화뿐 아니라 오프라인 영화에서도 ‘과거로의 회귀’는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제작비 30억∼40억원을 웃도는 대작영화들 틈새로 옛날 영화풍 작품들이 속속 제작되고 있다. 3월 말 개봉 예정인 영화 ‘친구’는 검정 교복에 까까머리를 한 장동건과 유오성의 흑백사진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 70년대를 배경으로 남자들간의 진한 우정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는 ‘노스탤지어 누아르’라는 표현이 붙어 있다. “70년대 한국 사회를 가슴 뭉클한 감성으로 되살리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을 텐데, 요즘은 너무 앞만 보고들 사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옛날 친구들을 한 번쯤 기억해보길 바란다.” 곽경택 감독은 영화의 제작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명필름의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가을 개봉 예정) 역시 어른들의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쓸쓸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 ‘세 친구’의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지방 나이트클럽 밤부대 밴드의 삶을 통해 인생의 진실한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작품을 기획한 이은 이사는 “흥미와 재미 위주의 감각적이고 가벼운 상업영화들 속에서 사람 냄새 가득한 이런 영화들은 더욱 소중하다. 다들 힘들지만 결국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고 말한다.

영화나 CF에서 60, 70년대의 풍속을 볼 수 있다면 패션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밀라노 파리 등 주요 패션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2001년 봄여름 트렌드는 50년대 풍으로 소녀풍 구두에 양말을 코디하는 촌스런 스타일이 첨단 유행으로 떠올랐다. 풍성한 치마에 굵고 커다란 머리띠,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폭 넓은 벨트가 핫 아이템. 장식적이고 과장된 라인에 경쾌하고 가벼운 디자인이 전체적인 특징이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수석연구원은 “패션의 복고 열기는 10년째 계속되는 현상이지만 올해는 복고의 ‘해피’하고 즐거운 느낌이 더 강해져 패션에서도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재밌고 가벼운 것을 추구하는 전반적인 심리가 의복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주위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른 면에서 상쇄시키고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옛날 영화를 보고, 옛날 옷을 입고, 옛날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고향을 찾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새로운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어쨌든 지금의 ‘촌티’는 즐거운 ‘컬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젠 그 유치함 속에 숨은 진지한 메시지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64~65)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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