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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새들은 날아가고 딸들은 떠나가네

장욱진의 ‘시골집’

  •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andyfather@naver.com

새들은 날아가고 딸들은 떠나가네

새들은 날아가고 딸들은 떠나가네

‘시골집’, 장욱진, 캔버스에 유채, 34.5×21.8cm.

장욱진(1917~90)의 ‘시골집’은 A4 크기의 작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동양화의 삼단 구성인 원경, 중경, 근경으로 나누어 살펴보죠. 상단의 산은 원경, 중앙의 마당은 중경, 하단의 나무는 근경입니다. 높이 솟은 산을 중심으로 해와 달이 좌우 대칭으로 표현돼 있고, 그 아래로 새 네 마리가 오른쪽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해와 반달이 동시에 떠 있어 낮과 밤이 공존합니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시간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표현은 일월오봉도나 민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아이들의 그림에서도 나타나곤 합니다. 작가는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했는데 당시 접한 민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장 화백은 참새와 까치를 즐겨 그렸습니다. ‘시골집’ 속 새는 모두 참새입니다. 원래 참새는 줄지어 날지 않으나 작가는 자신이 새들에게 줄지어 가라고 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새가 네 마리인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네 마리는 둘씩 짝을 지을 수 있고 하나와 셋, 혹은 넷을 같이 묶으면 조형상 안정감이 있다고 작가는 생각했습니다. 한편, 장 화백에게는 딸이 네 명 있었는데 “다 크면 (시집가서)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네 마리를 그린다”고 했습니다. 그림 속 새는 곧 딸인 셈이죠. 작가가 까치를 많이 그린 것은 고향 풍경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의 고향은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으로 주변에 감나무가 많았다고 합니다. 감을 쪼아 먹기 위해 날아드는 까치는 매우 친근한 소재여서 초등학생 때부터 그려왔습니다. 

그림 중앙에는 원형의 마당이 있고, 그 속에 집 세 채가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정면의 집 안에 부부가 앉아 있고, 마당에서 닭 두 마리가 한가롭게 노닙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시골집’ 풍경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보면 은근한 시각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신발은 한 켤레만 놓여 있는데 기와집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고, 신발은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데 집 안 사람들은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둥근 마당은 위에서 내려다본 평면도인데 돌담은 마치 정면에서 본 듯 묘사돼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미소 짓게 하는 그림입니다. 마당을 나와 고샅을 지나면 큰길로 이어집니다. 짙은 황토색 길 위에 키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사람이 왼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늘 작가의 곁을 맴도는 장난기 넘치는 강아지 모습도 보이는군요.

작가가 작품 활동을 주로 한 곳으로 경기 남양주시 덕소, 충북 충주시 수안보, 경기 용인시 신갈 세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골집’은 수안보 시기(1980~85)에 제작됐습니다. 작가는 수안보의 한 농가에 돌담을 쌓고 싸리문을 달고 거주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유화를 주로 그렸지만 먹그림, 도자, 매직펜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작업을 했습니다. 색상은 최소한만 사용하고 단순한 형태와 대칭구도로 향토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주간동아 2016.03.30 1031호 (p79~79)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andyfath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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