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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셀프 메이드 맨

로봇시대와 호모파베르의 귀환

생산의 즐거움 빼앗긴 인간…만들고, 창조하고, 느껴라

  • 김성원 적정·생활기술 연구자 coffeetalk@naver.com

로봇시대와 호모파베르의 귀환

로봇시대와 호모파베르의 귀환

Shutterstock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조각상 ‘셀프 메이드 맨(Self-Made Man)은 미국 전역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형상이 좀 기이하다. 근육질의 한 남자가 한 손에 망치를, 다른 손에 정을 들고 있다. 하반신 일부는 아직 바위 속에 묻혀 있다. 남자는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쪼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허벅지를 조각하고 있다. ‘성공신화’라는 본래 상징과 달리, 조각상은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와 기술로 자신의 정체와 삶을 조각하는 존재, 말 그대로 ‘셀프 메이드 맨’이란 것이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수만 년 동안 인간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확장하고자 발달시켜온 도구와 기술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인간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도구와 기술은 생산과 작업의 도구 이전에 인간성의 도구였다. 도구와 기계가 손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았을 때까지, 작업과 생산이 집 마당을 벗어나지 않은 수공예의 시대까지, 좀 더 나아가 대부분 나무로 도구와 기계들을 만들며 산업혁명을 준비하던 17세기 나무기계의 시대까지 인간은 제법 성공한 듯하다. 특히 공장제 대량생산이 특징인 산업혁명은 물건의 소비라는 측면에서 과거 어느 시대보다 평등한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진보하는 기술과 공장제 생산에 대한 불안 및 비판이 싹트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시기 공예부흥운동을 주도하던 윌리엄 모리스의 스승 존 러스킨은 제자와 함께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해 실천적으로 저항하며 비판했다. 러스킨은 “노동을 분할하면 사람일 수 없다. 갈가리 쪼개진 사람은 조각나버리고, 삶은 부스러기가 된다”며 공장제 노동의 분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현대에도 여전히 데이비드 왓슨 같은 이들이 기술지배문명을 강력히 반대한다. 그는 “토착기술은 제한되고 다각적이며 그 기술이 등장한 문화와 개인들의 특성이 새겨져 있다. 현대기술은 모든 토착적이고 개인적인 조건을 기술 자체 이미지로 바꾼다. 그것은 점차 획일화되고 거대해진다. 개성적이던 토착사회에 소외와 박탈을 낳고 사람들을 원자화하며 기술을 상실한 단조로운 기술문명의 이미지로 바꾼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발전 및 진보를 거듭해온 기술과 기계, 생산 방식과 소비에 익숙한 현대인은 러스킨이나 왓슨의 이 같은 경고를 간단히 무시해왔다. 이 글을 읽는 대다수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드는 일은 인간의 본성”

로봇시대와 호모파베르의 귀환

보비 칼라일의 ‘셀프 메이드 맨’ 청동 조각상. 애리조나에 있는 파운틴힐 뮤지엄 야외에 설치돼 있다. flickriver.com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인간의 손은 로봇 손으로 대체되고 있다. 1970년 이후 줄곧 추진된 생산자동화는 사실 인력 감축 기술이었다. 토머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2030년 일자리 20억 개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생산 및 서비스 활동은 인간이 갖는 보편적 욕구와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로봇에게 생산을 빼앗긴 인간의 손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호모파베르(Homo Faber)’의 귀환, 만드는 인간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 급격하게 근대화되던 1910년대 일본에서 공예가 이데카와 나오키는 ‘인간부흥의 공예’를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모든 것을 공장에 맡겨 그로부터 제조된 물건으로 생활을 때우고, 기기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일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 현대인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만들고 생각하고 꾸미고, 그리고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속하지 않은 지역공동체의 자가 제작자 운동을 촉발한 ‘테크숍(Techshop)’의 마크 해치 최고경영자(CEO)는 더욱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만드는 일은 인간 본성이다. 우리는 만들고, 창조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만드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제작물은 우리 자신의 작은 부분이며 우리 영혼의 일부를 구성한다.”
로봇과 자동화가 인간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시대, 역설적으로 만드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증가하는 귀촌자와 청년실업자들이 활로를 찾아 수공예, 생활기술 분야에서 자가 제작자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매년 ‘수공예’ ‘핸드메이드’를 주제로 한 박람회와 전시회가 10여 차례 넘게 개최되고 있다. 대안장터, 프리마켓에서는 수공예품과 자가 제작 물건을 판매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가히 신(新)공예부흥이라 할 수 있다.

로봇시대와 호모파베르의 귀환

세계 최초로 생체공학 손을 이식한 영국 여성 니키 애슈웰의 손. web.mksnet.com

신공예부흥을 선언하며

자가 제작의 흐름은 예술과 공예를 넘어 테크놀로지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D.I.Y. 테크놀로지’는 개인이 기본적인 전기, 전자, 컴퓨터는 물론 조금은 전문적인 생산설비와 제조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취미로 만들거나 소량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디자인 장비, 3D(3차원) 프린터, 레이저 커팅기 등 다양한 생산장비와 그 밖의 공구류를 비치한 작업 공간을 함께 사용하자는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운동이 세계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팹랩(fabrication laboratory·FabLap)은 대안적 제작 실험 공방이다. 이곳은 창조적인 개인 엔지니어들을 위해 소규모 제작 실험실을 제공한다. 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룰 수 있는 디지털 제작 설비를 갖추고 있다. 아직 산업적 대량생산과 경쟁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 광범위하게 분산된 제품을 생산할 때 경제적 규모를 이룰 수 있다. 대량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개인이나 지역 요구 맞춤형 제품으로 변형 생산할 수도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작성한 공식 팹랩 목록(www.fablabs.io)에 따르면 2016년 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 총 610개 팹랩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제 생산의 거센 공격으로 사라졌던 가내수공업이 전통적 소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지역공동체의 회원제 제작공방과 생산협동조합, 마을기업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 개인과 지역공동체가 다시 제작 생산 과정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신(新)호모파베르족은 얼마나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해나갈 것인가. 이들이 만드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20여 년 동안 우리는 호모파베르와 로봇의 대결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수공예와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로테크(Low-tech), 지역 자원과 재료를 활용하는 로컬테크(Local Tech),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뿐더러 환경을 고려하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만들고 도전하는 일을 하면서 오랜 본능을 충족할 때 갖게 되는 행복감, 균형, 안정, 절제와 한계, 다양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계문명을 비판해온 루이스 멈퍼드는 “기술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변화에 중독돼 느리고 안정된 삶을 누릴 능력을 잃었다”며 “기술의 목적은 노동 절약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랑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팍팍한 세상에서 우리가 일과 노동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김성원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에너지 자립 관련 워크숍을 열고 천연페인트, 흙미장, 석회미장 등 자급자족 생활기술을 보급해왔다. 현재 전남 장흥에 살며 인간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기술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6.03.09 1028호 (p72~73)

김성원 적정·생활기술 연구자 coffeet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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