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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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노오력’해야 결혼도 잘 한다?

장기불황 조혼 신풍속도…20대 초반 결혼정보회사에서 ‘이상형’ 찾기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6-03-04 16: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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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결혼해 20대 때 아이를 2명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상대 남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의 전문직 종사자면 좋겠어요. 나이 차이는 열 살까지 괜찮아요. 내년 봄이면 대학을 졸업하는데, 지금 제 조건으로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요?”
    한 결혼정보회사 커플 매니저가 최근 23세 여성 회원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 여성과 함께 온 어머니는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한 애가 왜 이렇게 결혼을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나이 많은 남자라도 상관없다니 기가 막힌다”고 혀를 찼다. 이 커플매니저는 “예전엔 결혼에 관심 없는 자녀를 부모가 억지로 끌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부모가 반대해도 자녀가 우겨 결혼정보회사를 찾아오는 일이 적잖다”고 밝혔다.
    지난해 7세 연상인 사업가 집안 장남과 결혼한 윤모(26) 씨도 일찌감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짝을 만난 경우다. 지방대를 졸업한 그는 결혼할 때 출신 대학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해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을 마칠 즈음 결혼정보회사 문을 두드렸다. 2년 전 결혼한 남성 김모(29) 씨는 대학 4학년 때 미국 유학을 앞두고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김씨는 “부모님은 공부를 마친 뒤 천천히 결혼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결혼에 대한 고민 없이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 계획이 있는 여성을 소개받아 결혼하고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새로운 결혼관 가진 ‘신인류’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이처럼 20대 초·중반부터 결혼을 목표로 삼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결혼을 미래 설계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결혼정보회사 대명위드원의 홍유진 결혼정보부문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계획 없이 결혼하면 인생이 틀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매우 구체적인 배우자상을 세우고, 그런 이상형을 만나고자 스스로 철저히 준비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에서 일하는 여성 정모(25)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내가 원하는 신랑감을 만나려고 한국에 와 취업했다. 2년 안에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해 내 가치를 올린 뒤 그에 걸맞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공기업 3년 차 여성 이모(26) 씨는 대학 3학년 때부터 ‘26세 결혼’을 목표로 적금을 붓고 있다. ‘결혼 후 2년 안에 30평형대 아파트를 사고 자녀는 30세까지 2명을 낳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이씨는 “대학 때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과 취직 후 개인연금, 적금, 보험 등에 넣은 돈을 다 합치면 1억 원가량 된다”며 “저축한 돈이 3억~4억 원 되는 전문직 남성과 올해 안에 결혼하고, 나도 2억 원 정도까지 계속 돈을 모아 2년 안에 원하는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밝혔다. 7급 공무원인 김모(26) 씨는 경제학 또는 회계학을 전공하고 재테크에 밝은 배우자를 찾고 있다. 김씨는 “나는 평생 공무원을 할 거라 큰돈을 벌기 어려울 것 같다. 맞벌이하면서 우리 재산을 잘 불릴 수 있는 남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이 10년 전에 비해 4~5배 많아진 것 같다. 미래가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이른 나이에 확실한 인생 계획을 세우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이라며 이들을 ‘새로운 결혼관을 가진 신인류’로 규정했다. 이들이 일찍부터 결혼을 결심하는 배경에는 “골드미스나 능력 있는 중년 남성이 젊은 시절 화려한 싱글생활을 즐기다 나이가 걸림돌이 돼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것”도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진단이다. 결혼정보회사 수현(주)의 김라현 본부장은 “요즘 20대 초·중반이 원하는 배우자상은 주관이 뚜렷하고 삶의 철학이나 태도 등이 자신과 비슷한, 이른바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다. 원하는 상대와 일찍 결혼해 친구 같고 애인 같은 결혼생활을 즐기다 2~3년 뒤 자녀를 갖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결혼자금 마련도 미리미리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남성 504명, 여성 496명)을 대상으로 신혼집 마련 비용 등 결혼자금을 조사한 ‘2016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평균 결혼비용은 2억7420만 원이었다. 이 때문에 요즘 20대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고자 일찌감치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재테크를 한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나 양가의 결혼 허락을 받은 회사원 김모(26) 씨와 정모(26) 씨 커플도 2년간 함께 전세자금을 마련한 뒤 결혼할 예정이다. 공동통장을 만든 두 사람은 걸어서 출퇴근하고 데이트 비용 한도도 정해두는 등 절약을 실천 중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미리 준비해 결혼하면 가정생활이 안정될 테고 자녀도 계획대로 낳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친구와 이 부분에 대해 의기투합할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한편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대학 4학년 때 휴학한 박모(24) 씨는 지난해 12월 결혼정보회사 문을 두드렸다. 커플매니저에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업가 집안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하고 싶다. 당장 회원가입비를 낼 형편이 못 되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원하는 상대를 만날 수 있나”라고 물었다. 김라현 수현(주) 본부장은 “최근 박씨 같은 사람이 적잖아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무료로 연애 기술 등에 대해 상담해주거나 결혼 계획을 짜준다”고 밝혔다.
    권현정 듀오 커플매니저는 “요즘 젊은이들은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어려운 현실을 피부로 절박하게 느끼니 결혼을 잘 하려고 더욱 안간힘 쓰며 노력하는 것”이라며 “이런 젊은이들이 현명하고 현실적인 노력파라고 생각하지만, 한창 예쁜 나이에 연애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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