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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불나면 일 난다 고시원

부동산 임대료 상승에 5년 새 2배로…소화·경보·피난설비 제대로 갖춘 곳 손에 꼽혀

불나면 일 난다 고시원

불나면 일 난다 고시원

고시원이 밀집한 서울 신촌역 부근 거리(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박해윤 기자

2명이 복도에서 마주치면 1명은 몸을 틀어 벽에 붙어야 한다. 중간에 방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아예 길이 막힌다. 이런 복도가 유일한 통로인 곳이 있다. 바로 고시원이다. 주택법상 최소주거면적 14m²(약 4.2평)에도 못 미치는 크기의 방 20~30개가 촘촘히 붙어 있는 곳. 최근 서울 도심지 부동산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이 같은 고시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6년 1월 현재 서울시내 고시원 수는 6021개로, 2010년(3922개)보다 60% 가까이 늘었다. 서울 신촌, 강남 등 번화가 골목을 지날 때마다 ‘◯◯고시텔’ ‘◯◯리빙텔’ 같은 간판을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제는 고시원에서 화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점. 2월 14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60대 남성이 화상을 입었다. 2014년 11월에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고시원 방화사건으로 2명이 다쳤고, 2013년 3월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알아보고자 고시원 밀집지역인 서울지하철 신촌역, 강남역, 건대입구역 일대 고시원 30곳을 현장 취재했다.



좁은 복도, 장애물에 막힌 피난로

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이 적용되는 다중이용업소다. 특별법 시행령의 ‘다중이용업소에 설치·유지하여야 하는 안전시설 등’(제9조 관련)에 따르면 고시원은 크게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설비 등의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 소화설비는 다시 소화기와 스프링클러, 경보설비는 비상벨 또는 자동화재탐지기와 가스누설경보기, 피난설비는 피난기구와 피난유도선, 그리고 유도등과 비상조명등 등으로 나뉜다. 또한 고시원은 비상구는 물론, 영업장 내부 피난통로와 창문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직접 찾아간 고시원 30곳 가운데 21곳이 관계 법령 일부를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반사항은 적게는 1~2개, 많게는 3~4개 수준이었다. 신촌 A고시원과 강남 B고시원에는 출입문 외 비상구나 피난통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소화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고시원은 부지기수였다. 신촌 C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만 있고 화재경보기가 없었다. 강남 D고시원에는 화재경보기만 있고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10년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전에 지은 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화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고시원도 있었다. 신촌 E고시원의 경우 소화기 비치 스티커가 붙은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복도 한쪽 끝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소화기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입주자를 대상으로 한 소화기 사용법 교육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듯했다. 건대입구   F고시원에 사는 이모(26) 씨는 “소화기 사용 방법이나 소화전 위치 등에 대한 안내는 따로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피난유도선 등 피난설비를 제대로 설치한 고시원도 찾기 어려웠다. 복도 조명이 꺼져 있어 비상구를 찾으려면 모든 복도의 끝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촌 G고시원은 피난안내도에 동선이 표시돼 있지 않은 데다, 안내도에 표시된 ‘현위치’가 실제 위치와 달랐다. 강남 H고시원은 피난안내도를 사무실 안에 붙여놓아 입주자가 참고하기 어려웠다. 특별법 시행규칙은 피난안내도를 ‘영업장 주출입구 부분의 손님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 등에 비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좁은 복도와 불안한 비상통로도 위험 요소였다. 특별법 시행규칙 ‘안전시설 등의 설치·유지 기준’(제9조 관련)에 따르면 고시원 내부 피난통로의 폭은 최소 150cm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강남 I고시원의 복도 폭은 120cm에 불과했다. 방문이 열리면 1명도 지나가기 힘든 간격이었다.
건대입구 J고시원은 복도 끝에 위치한 비상구 문을 열자 옥상으로 연결되는 철제계단이 나왔다. 계단 난간 높이는 허리 조금 위 정도에 불과했고, 계단 간격은 성인 다리가 쑥 빠질 정도로 넓었다. 밟을 때마다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소리도 났다. J고시원 투숙객 김모(29) 씨는 “담배를 피우러 비상계단으로 나갈 때마다 무섭다. 술에 취하면 계단 틈 사이로 다리가 빠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아찔하게 느껴진 곳은 강남 H고시원이다. 대피로 중 하나로 사용할 계단 사이에 이불 수십 채를 쌓아놓고 한쪽 구석에 다림질 장비를 연결해놓았다. 위급상황 시 대피하고자 설치해놓은 완강기 앞에는 옷 수십 벌이 쌓여 있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계단이나 완강기는 위급상황 발생 시 최후의 피난통로다. 계단 사이에 이불 더미를 늘어놓거나 완강기 앞에 옷가지를 쌓아놓는 행위는 피난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후 고시원 안전대책 마련해야”

불나면 일 난다 고시원

서울 강남 한 고시원 내 완강기 앞에 각종 짐이 쌓여 있는 모습(왼쪽)과 폭이 채 150cm가 되지 않는 서울 신촌 한 고시원 복도. 김완진 인턴기자 김완진 인턴기자

현장 취재한 일부 고시원 입구에는 관련 단체가 선정한 ‘모범고시원’ 명패가 붙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촌 A고시원은 한국고시원업중앙회에서 인증한 모범고시원이다. 하지만 안전 규정 위반 면에서 여타 고시원과 다를 바 없었다. 해당 고시원의 복도 폭은 150cm에 못 미쳤고 비상구는 아예 없었다. 고시원 내에서 피난안내도와 피난유도선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장은 출입구 외에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어디냐는 질문에 “인수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한국고시원협회가 인증한 모범고시원인 강남 B고시원에도 비상구와 스프링클러, 화재경보기가 없었다. 고시원 총무는 화재가 발생하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바로 윗집에 주인이 살아서 괜찮을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황규석 한국고시원협회 회장은 이에 대해 “모범고시원으로 인증한 뒤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며 “다만 10여 년 전 인증한 고시원의 경우 그동안 법령이 바뀐 부분을 이해해줘야 한다. 변경 내용이 잘 적용됐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인력 등의 문제로 힘들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도 지적한다. 건축자재 품질 문제다. 인세진 교수는 “예전에 지은 고시원들은 전체 공간을 만들어놓고 구획을 나눌 때 저급한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고시원은 세월이 흐를수록 시설이 낙후돼 화재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안전규정이 계속 강화되고 있어 지은 지 10년 이상 된 고시원은 현재 기준에 미달되는 경우가 많다. 시설이 낙후된 곳일수록 소방시설을 더 철저히 구비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국가가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 등 영업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간동아 2016.03.02 1027호 (p46~47)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 김완진 인턴기자·세종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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