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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직장의 神’은 괴로워

부장님 취향 따라 8090 가요 배우는 신입사원…‘못 놀면 감점’ 직장인 특기 과외 붐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직장의 神’은 괴로워

“리듬을 느껴야 동작이 쉬워요.” “어제 과음해서인지 턴이 잘 안 되네요.”
2월 6일 오후 4시 서울 역삼동 제이댄스학원에는 30~50대 남녀 10여 명이 모였다. 설 연휴를 앞둔 주말인데도 수강생 전원이 출석했다. 이들은 댄스그룹 ‘노이즈’가 1995년 발표한 노래 ‘상상속의 너’에 맞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춤을 연습하는 수강생은 모두 직장인이었다.
그중 춤 실력이 유독 뛰어난 천모(32) 씨는 3년 전 회사에 취직하면서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입사 후 첫 체육대회 때문이었다. 그때 신입사원들의 장기자랑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천씨가 소속된 마케팅부서 선배들이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 이왕 하려면 잘하라”고 당부했다. 어떤 선배는 “학예회가 아니지 않느냐. 회장님이 좋아하도록 전문적인 춤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천씨는 입사 동기들과 두 달 동안 연습한 군무를 선보여 선배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천씨는 ‘댄스 실력은 곧 직장생활의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 직장인들은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회식 자리에서 즐겁게 놀면서 장단을 맞추는 것이 신입사원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못 놀면 감점 요인이 되는 것 같다”며 “나는 노래방에서 춤을 잘 춰 상사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사내에서도 상사가 편하게 대하는 것은 물론, ‘다음 회식도 같이 가자’고 자주 권한다”고 말했다.



‘탬버린 댄스’ 한 달 속성 레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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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 제이댄스학원에서 직장인 수강생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다. 회사원 천모(왼쪽) 씨는 “회식 때 잘 놀아야 상사들에게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이상윤 기자

‘회사에 잘 보이고자’ 특기를 배우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유행하던 ‘개인기’(예능 특기로 남들을 웃기는 것)가 지금은 회식이나 술자리에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노래나 춤에 영 소질이 없는 직장인에겐 큰 압박이다. 이런 직장인들은 한 달짜리 단기 속성 레슨으로 ‘노래방 댄스’ ‘탬버린 댄스’ 등을 배우기도 한다. 제이댄스학원 운영자인 권혁진 감자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리듬감 있게 박수치는 법, 노래 후렴구에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 안무 등에 대한 레슨 문의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회식용 노래와 댄스 스타일도 흐름을 탄다. 3~4년 전 사원 또는 대리급 직장인이 노래방에서 주로 부르던 곡은 박상철의 ‘무조건’,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이문세의 ‘붉은 노을’ 등 신나는 노래들이었다. 과장급 이상은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같은 발라드곡을 추가해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980~90년대 유행가로 바뀌었다는 것이 ‘노래방 댄스’를 가르치는 강사의 설명이다. 권혁진 대표는 “1년 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1990년대 가수들의 공연을 선보이면서 8090세대의 유행가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현재 40, 50대 차장·부장급이기 때문에 이들의 호응을 얻고자 8090 가요 댄스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댄스를 활용하려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반 연습생보다 더 열심히 배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노래에 자신 없는 직장인은 음치교정학원에 다닌다. 직장인 김모(36·여) 씨는 매주 수요일 업무를 마치면 경기 수원에 있는 ‘음치기박치기’ 학원으로 달려간다. 지난해 어느 날 회사 회식 자리에서 김씨는 노래 때문에 굴욕을 겪었다. 한 선배가 김씨에게 “노래 좀 해봐라”고 해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김씨 노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던 것. 또 모두 흥겹게 노래하는 분위기에서 김씨와 다른 동료가 섞이지 못한 채 앉아 있자 누군가 “너희 둘은 다른 데 가서 놀아라”고 말해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강습 외 시간에도 학원에서 노래를 맹연습하는 김씨는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 연말 회식 자리에선 직장 선후배들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직장인 한건희(25) 씨도 노래에 자신이 없어 1년 전부터 매주 일요일 한 시간 반을 할애해 강습을 받고 있다. 한씨는 “아직 회사 직원들 앞에서 노래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면 멋지게 불러 주목받고 싶다”고 말했다.



부장님도 후배들 눈치 보며 트로트 안 불러

‘직장의 神’은 괴로워

경기 수원 음치기박치기 학원에서 보컬강사 이광현(왼쪽) 씨가 직장인 수강생 한건희 씨에게 기초 발성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제공 · 음치기박치기

40, 50대 직장인도 젊은 후배들과 잘 어울리고자 노래를 열심히 배운다. 김경환(30) 음치기박치기 노래강사는 “옛날 40, 50대 직장인은 주로 올드 팝송이나 트로트를 불렀는데 요즘엔 ‘회식 때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며 템포가 빠른 유행가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강사는 “40, 50대 직장인은 ‘회식 때 젊은 직원들과 고위 임원들 사이에 끼어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따라서 젊은 직원들과 친해지려고 20, 30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열심히 듣고 연습한다”고 말했다.
남 앞에서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것이 영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타로카드를 배우기도 한다. 타로카드 교육업체 ‘최현주의 힐링아카데미’의 이리스(46) 강사는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타로카드를 배우는 회사원이 많다. 회식이나 술자리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어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수강생인 주현정(46) 씨는 “직장 동료들 앞에서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기회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오지 않나. 타로카드는 점심시간이나 티타임을 이용해 수시로 선보일 수 있어 편하고, 송년회 같은 이벤트에서도 호응이 커 활용도가 높은 장기”라고 말했다. 수강생이자 자기 사업체를 경영하는 김중문(60) 씨는 “최고경영자(CEO)로서 부하직원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타로카드를 하면서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직원들이 ‘우리 사장님에게 이런 특기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어깨가 으쓱하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돋보이기 위한 장기자랑을 사적으로 배우는 열풍에 대해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의 씁쓸한 초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인이 회사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노래나 춤 같은 장기는 매우 개인적인 요소인데 이를 공적으로 표출해야 한다면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도 있다. 자신을 진정 기쁘게 하는 특기는 바람직하지만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노력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주간동아 2016.02.24 1026호 (p42~43)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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