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5

2021.01.29

서민의 野說

유시민으로 되돌아본 사과의 역사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교실 교수

    입력2021-01-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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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월 22일 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뉴스1]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월 22일 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뉴스1]

    2008년 5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뜨거웠다. 이상고온 때문이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불만을 품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탓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시위는 터무니없는 선동에서 비롯됐다. 

    첫째, 그때까지 미국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사례는 총 3건에 불과했다. 둘째, 광우병은 젖소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우리가 먹는 미국산 쇠고기는 젖소가 아니다. 셋째,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프리온은 종간 장벽을 넘지 못해 감염된 쇠고기를 먹어도 인체에서 병을 일으킬 확률이 극히 낮다. 넷째,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형을 갖고 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2위에 해당할 만큼 미국 쇠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지금까지 국내 광우병 환자 발생 건수는 한 건도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은 좌파의 선전선동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해 4월 29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PD수첩’은 미국 소 한 마리가 주저앉는 광경을 보여주면서 광우병에 감염된 소인 것처럼 선동했고,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한 환자가 마치 광우병에 걸려 죽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들은 훗날 대법원에서 허위로 판명 났지만, 당시 TV를 본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들은 결국 2008년 5월 2일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다. 

    지금이야 촛불집회를 하더라도 주말이나 휴일에 해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상식으로 통하지만, 당시 집회는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일 저녁 열렸다. 광화문 인근 상인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 퇴근길 서울 교통 체증이 극심해지는 등 부작용도 잇따랐다. 하지만 좌파에게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한 중학생은 집회 연단에 올라 시민단체가 써준 글을 마치 자신이 쓴 것인 양 읽어 환호를 받았다. 어떤 연예인은 ‘미국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는 게 낫다’는 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시위 21일째인 5월 22일 국민 앞에 사과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 국민 여러분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대통령 사과가 시위대의 요구 조건 중 하나였으니 시위를 철회하는 게 맞지만, 좌파에게 그런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시위가 계속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9일 다시 한 번 국민 앞에 선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하는데 나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 (중략)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고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으면 시위를 중단하는 게 도리건만, 시위는 훨씬 격화된 형태로 계속됐다. 게다가 시위대가 내건 구호도 광우병에 국한된 게 아닌, 대운하 중단, 의료민영화 중단, 이명박 아웃 등으로 점차 넓어졌다. 그러니까 그 시위는 광우병의 탈을 쓴 ‘정권퇴진운동’이었다. 

    결국 시위가 끝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더 지난 8월 15일이었다. 사실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대통령이 된 지 3개월여밖에 안 됐는데, 최소한의 밀월기간도 주지 않은 채 시위를 해댔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유시민, 文 정권 사람 중 처음으로 사과

    2014년 4월 대한민국은 푹 젖어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학생과 어른이 목숨을 잃었고, 희생자 유족과 국민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냉정하게 봤을 때 세월호 침몰은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지만 분노의 화살은 당시 집권세력이던 박근혜 정부에게로 향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날 당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느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심지어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TV 앞에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좌파는 그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다고 비판하며, 남은 임기 내내 세월호 이슈로 박 전 대통령을 물고 늘어진다. 

    그렇다면 좌파가 정권을 잡은 뒤 우리나라에서는 진정 어린 사과가 늘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017년 12월 제천 화재 당시 소방대의 미흡한 조치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빈소를 찾았던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과 대신 유가족들과 말싸움만 하고 가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사건·사고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을 때, 코로나19 백신을 구하지 못했을 때, 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법무부 장관이 1년 내내 검찰총장을 괴롭혔을 때 등등 현 정권의 무능으로 국민이 피해를 본 거의 모든 경우에서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자기 잘못을 이전 정권 탓으로 돌렸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잘했다고 우겼으며, 이런 것들이 안 먹힌다 싶으면 특정 국민의 이기심을 탓했다.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사과의 진정성을 따지던 그 시절이 훨씬 더 행복했다는 것을. 

    며칠 전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허위였다고 사과했다. 그는 당사자가 거듭 부인했음에도 검찰이 자신의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오랜 기간 주장해왔다. 도대체 그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 이사장의 주장은 당시 정권으로부터 핍박받던 검찰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사과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그의 사과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건 문재인 정권 측 사람이 한 첫 번째 사과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고 보면 이 정권은 국민의 기대 수준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아주 큰일을 한 것 같다.

    서민 교수는… 제도권 밖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입담으로 풀어낸다. 1967년 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기생충학).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저서로는 ‘서민독서’ ‘서민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의 기생충콘서트’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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