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1

..

고체연료 봉인 해제, 북 핵심부 궤멸 능력도 커진다 [웨펀]

세계 최고 탄도미사일, 정밀도에 고체연료 로켓과 한국형 피스키퍼 길도 열려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8-05 11:35:2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7월 28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한미 양국이 미사일 지침을 개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7월 28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한미 양국이 미사일 지침을 개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7월 28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깜짝 브리핑을 했다. 한미 양국이 미사일 지침을 개정했으며, 개정된 미사일 지침에 따라 한국의 우주 발사체 목적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완전히 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차장은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연구소, 대한민국 국적의 모든 개인은 액체연료뿐 아니라 고체연료와 하이브리드형 등 다양한 형태의 우주 발사체를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하고 생산, 보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청와대는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 배경에는 9개월이라는 장기간의 협상이 있었다”며 “현재 계획대로 2020년대 중후반까지 우리가 자체 개발한 고체연료 발사체로 저궤도 군용 정찰 위성을 다수 발사하면 우리의 정보·감시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번 개정으로 우주 산업 인프라 개선의 토대가 마련돼 한국판 뉴딜이 우주로 확장되는 길이 열렸으며, 한국판 스페이스X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자평했다.

    한정된 시장과 경제성 문제

    언론 역시 우주 발사체 목적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 해제 의미를 ‘저궤도 위성 발사’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정부와 언론의 전망대로 우리나라는 앞으로 고체연료 로켓을 자유롭게 개발해 다량의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리고, 한국판 뉴딜이 우주로 확장되면서 한국판 일론 머스크가 나타나 한국판 스페이스X를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국내 로켓 기술 개발의 발을 묶었던 족쇄는 한미 미사일 지침만 있던 것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국내법 규제가 더 큰 문제였다. 국토가 대단히 비좁은 우리나라에서는 로켓을 만들어도 쏠 곳이 거의 없다. 조금만 잘못해도 로켓 추진체가 민가에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사장을 해안으로 옮기려 해도 국토교통부와 한미연합사의 공역 사용 허가제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다양한 유형의 로켓을 만들었지만, 안전 문제로 공역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발사가 좌절되거나 설계 고도보다 훨씬 낮은 고도로 축소 발사해야 했다. 이러한 제한은 한미가 미사일 지침을 통해 합의한 내용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로켓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던 것은 미국의 통제가 아니라 비좁은 영토 때문에 만들어진 한국 정부의 규제였다. 



    정부가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하고, 이를 계기로 엄격한 로켓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면 각 기업과 개인, 연구소가 자유롭게 고체연료 로켓을 만들고 발사할 수 있을까. 이 역시 긍정적이지 않다. 한정된 시장과 경제성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많이 접한 일반인에게 고체연료 로켓은 액체연료 로켓보다 저렴하고 구조적으로 간단해 쉽게 만들어 대량으로 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고체연료 로켓의 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해 제조가 비교적 수월하고 제작 단가가 액체연료 로켓보다 저렴한 것은 맞지만, 고체연료 로켓과 액체연료 로켓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로 ‘비추력’이다. 

    비추력(Specific Impulse)은 로켓연료 1kg이 1초 동안 연소했을 때 얼마나 큰 추력을 발휘하는지 나타내는 일종의 연료 효율 개념이다. 연료의 종류와 노즐의 형상, 제어 계통의 성능, 기상과 진공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체연료는 250, 액체연료는 450 정도를 발휘한다. 

    상용 로켓의 제원을 놓고 보면 이해가 쉽다. 미국 미노타우르 4호(Minotaur IV) 로켓의 1회 발사 비용은 5000만 달러(약 596억 원)고 비교적 저렴한 고체연료 로켓인 일본 엡실론(Epsilon)의 1회 발사 비용은 3600만 달러(약 429억 원) 수준이다. 이들은 모두 3단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90t 안팎의 발사 중량을 가지는데, 400~600km급 저궤도에 1.5t가량의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성능이다.

    전략적으로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기술

    일본 엡실론(왼쪽)은 크기와 중량, 제원 에서 미국의 상업용 고체연료 로켓 미노타우르 4호와 대단히 유사하다.[위키피디아, 미국 공군]

    일본 엡실론(왼쪽)은 크기와 중량, 제원 에서 미국의 상업용 고체연료 로켓 미노타우르 4호와 대단히 유사하다.[위키피디아, 미국 공군]

    우리나라의 천리안 시리즈 위성을 우주로 보내 유명해진 유럽 아리안 V(Ariane V) 로켓의 경우 1회 발사 비용은 1억7500만 달러(약 2085억6500만 원) 수준이며 최대 10t에 달하는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군용 통신위성 아나시스 II(ANASIS II)를 발사해 유명해진 일론 머스크의 팰컨 9(Falcon 9)은 6200만 달러의 1회 발사 비용으로 저궤도에 22.8t, 정지궤도에 8.3t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다. 

    요컨대 고체연료 로켓은 회당 400억~600억 원 비용으로 저궤도에 단 1개의 위성을, 액체연료 로켓은 회당 700억~2000억 원 비용으로 저궤도에 10개 안팎의 위성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위성을 발사할 때 다른 기관 또는 나라와 조율해 하나의 대형 액체연료 로켓 발사체를 공유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비싼 요금을 내고 가까운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갈 것인지, 기본요금을 주고 시내·시외 어디든 갈 수 있는 버스를 탈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운 개념이다. 

    액체연료 로켓은 최근 스페이스X가 증명했듯 재사용 등의 방법을 통해 점점 더 싸지고 있다. 팰컨 시리즈는 이미 5000만 달러 벽을 깨고 있고, 아리안 시리즈 역시 아리안-6 로켓을 통해 발사 비용을 전작 대비 절반 이하로 줄일 예정이다. 이렇게 점점 싸지면서 발사 중량은 더욱 증대된 차세대 우주 발사체는 모두 액체연료 방식이다. 즉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통해 한국 로켓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한국판 스페이스X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로켓 기술과 우주 발사체 시장에 대한 완벽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이라는 벽은 사라졌는데 시장성이 없어 민간기업과 연구소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고체연료 로켓 개발을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고체연료 로켓은 경제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기술이다. 일본 M-V와 엡실론 로켓의 사례처럼 말이다.

    일본은 1990년부터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국(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JAXA) 전신인 우주과학연구소(Institute of Space and Astronautical Science·ISAS) 주도로 세계 최대 고체연료 로켓이자 고체연료 우주 발사체로는 세계 최정상급 성능을 가진 M-V를 개발해 1.8t의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잠재 능력을 가진 엡실론을 만들어냈다. 

    엡실론은 3단 고체연료 방식의 로켓으로 기본 발사 중량 95.4t에 길이 26m, 직경 2.6m 크기를 가졌다. 400~600km 저궤도에 1.5t 위성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전문가들, 심지어 일본 집권 자민당 정치인들도 일본이 엡실론을 통해 ICBM 기술을 완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ICBM의 구조와 성능으로 완성한 엡실론

    한국은 현무 시리즈 개발을 통해 탄도미사일 정밀도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한국은 현무 시리즈 개발을 통해 탄도미사일 정밀도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일본 엡실론은 크기와 중량, 제원면에서 미국의 상업용 고체연료 로켓 미노타우르 4호와 대단히 유사하다. 엡실론과 미노타우르 4호의 유사성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미노타우르 4호가 미 공군의 ICBM인 LGM-118 피스키퍼(Peacekeeper)를 상업용으로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엡실론은 사실상 ICBM의 구조와 성능으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기존 미니트맨 III를 대체하고자 개발했다 비용 문제로 조기 퇴역시킨 피스키퍼는 지하 사일로에서 발사되는 ICBM으로, 단일 탄두의 경우 1만4000km, 10개의 탄두를 탑재할 경우 9700km의 사거리와 120m라는 가공할 정밀도를 갖는 미사일이었다. 

    일본은 1994년 액체연료 발사체인 H-2A 로켓을 이용해 오렉스(OREX), 1996년 하이플렉스(HYFLEX) 발사를 통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완성한 바 있는데, 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엡실론 기술을 결합하면 ICBM이 완성되는 것이다. 일본이 세계 최대 규모의 플루토늄 보유국이며, 마음만 먹으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는 점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탄두와 ICBM을 가질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한국의 고체연료 로켓 역시 일본과 비슷한 수순을 지향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먼저 발사체 관련 기술 연구를 시작했고, 관계 법령 정비도 일찌감치 마쳤다. 일본은 1955년 도쿄대에서 첫 연구용 로켓을 발사한 이후 다양한 유형의 로켓을 1200회 가까이 발사했으며, 성공률도 97%를 상회한다. 일본 우주 발사체 연구의 컨트롤타워는 JAXA이지만, 미쓰비시와 이시카와지마하리마 등 민간기업 차원에서의 연구개발과 로켓 발사도 활발하며, 정부 기관과 민간기업의 협업을 통한 시너지는 오늘날 엡실론 같은 세계 최정상급 고체연료 발사체를 만들어냈다. 민간기업과 연구소에서 정부 기관과 협업할 만큼 기술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활발하고 규제가 적다는 의미다. 

    현무 시리즈 개발을 통해 탄도미사일 정밀도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엡실론, 미노타우르 4호 수준의 고체연료 로켓을 보유한다면 굳이 핵탄두를 갖고 있지 않아도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 베이징과 중국 내륙의 ICBM 기지를 10~15분, 다시 말해 상대방의 조기경보체계와 반격 결심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전에 적의 핵심 능력을 궤멸시킬 수 있는 공격 수단 보유의 잠재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즉 서태평양의 기존 국제질서의 판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피스키퍼’의 잠재력을 조기에 보유하려면 이제부터 관계 법령을 정비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 대한 예산 및 인력 지원 확충, 유관업체들의 시장 진출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에 소매를 걷어붙여야 한다. ‘한국형 피스키퍼’는 이제 시작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