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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10주기에도 안식을 못 취하는 팝의 제왕을 기리며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10주기에도 안식을 못 취하는 팝의 제왕을 기리며

[GettyImages]

[GettyImages]

2009년 6월 25일 목요일, 내가 몸을 누인 곳은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이었다. 영국 서머싯주 글래스턴베리 마을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금요일에 시작하지만 캠핑촌은 수요일부터 문을 연다. 일찌감치 글래스턴베리를 찾은 이들을 위해 전야제를 비롯한 사전행사가 쉬지 않고 열린다. 밤 10시가 될 때까지 저물지 않는 태양 아래서 페스티벌 사이트를 누비고 다녔다. 당시 환율로 한 잔에 7000원 하는 맥주를 계속 홀짝홀짝거리며 시작도 하기 전 벌써 절정을 맞은 듯한 글래스턴베리의 열기를 만끽하고 다녔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스테이지와 댄스 캠프, 그 사이 사이에 들어찬 온갖 종류의 이벤트 부스, 또 그 모든 곳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마냥 신나 하는 많고도 많은 사람은 글래스턴베리 그 자체였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밤에나 활기를 맞지만, 글리스턴베리페스티벌 이브는 낮부터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하늘도, 사람도 끝 간 데 모르게 뜨거웠다. 모든 종류의 음악이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글래스턴베리 안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싸구려 텐트 바닥에 고단한 몸을 던졌다. 피곤함과 설렘이 뒤섞여 잠이 오는 것도, 안 오는 것도 아닌 상태로 누워 있었다. 어둠을 뚫고 어느 텐트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Michael Jackson is dead!”


글래스턴베리에서 접한 팝 황제의 부음

[신화=뉴시스]

[신화=뉴시스]

취침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텐트 밖에서 밤하늘을 보던 나에게 전날 밤 쏟아지는 비 사이로 청춘의 ‘가열찬’ 교성을 전해주던 (것으로 짐작되는) 또 다른 옆 텐트의 스코틀랜드 청년이 말했다. “이봐, 들었어?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죽었대.” 여기저기서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직 한국에 아이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현지인만이 아이폰으로 충격적인 뉴스를 전파했다. 팝의 황제는 세계 최대 음악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 밤 홀연히 사라져 팝의 만신전을 향해 떠나버렸다. 

그저 황망했다. 몸을 일으켜 다시 페스티벌 사이트로 향했다. 그냥 잘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그 소식은 글래스턴베리 전역에 퍼져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 임시로 들어선 모든 가게가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두가 그의 음악에 맞춰 소리 지르고 춤췄다. 세계 최대 축제답게 가장 시끌벅적한 방식으로 마이클 잭슨을 추모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프레스 존의 현장 상황판에는 그날 입장한 관객 수와 체포된 인원 등 상세 정보와 함께 ‘R. I. P. Michael Jackson’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 황망한 결말이 실감됐다. 


1972년 잭슨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1979년 ‘Off the Wall’ 앨범 발표 당시 잭슨, 1996년 ‘History’ 월드 투어 콘서트 당시 잭슨(왼쪽부터). [GettyImages]

1972년 잭슨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1979년 ‘Off the Wall’ 앨범 발표 당시 잭슨, 1996년 ‘History’ 월드 투어 콘서트 당시 잭슨(왼쪽부터). [GettyImages]

그가 떠난 지 10년. 이제 아무도 그의 위대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인정한다. 그를 조롱하던 과거를 애써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마이클 잭슨은 어쩌면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이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기도 하다. 부정의 토씨 하나 얹을 수 없을 만큼 영광으로 가득하던 1980년대가 지난 후 그를 둘러싼 루머와 소송은 그의 이미지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1990년대 정신이 신비주의와 거리가 먼 것도, 그가 신곡을 자주 발표하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그에게 더는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을 때쯤 발표된 ‘Invincible’을 대중은 외면했고 평단은 혹평했다. 아니, 끝까지 그를 숭앙했던 이들을 제외하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후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앨범)을 소개하며 조롱한 기억이 난다. 그가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아차’ 했을 뿐이다. 정상에서 끌어내려져 조리돌림당하다 자의건, 타의건 갑자기 떠난 사람에게 대부분 그러했듯이.


잭슨의 유일한 자서전을 읽으며

2002년 미국 TV쇼 ‘아메리칸 밴드스탠드’ 50주년 기념쇼에 출연한 마이클 잭슨(왼쪽)과
그의 자서전 ‘문워크’(2019/ 미르북컴퍼니). [미르북컴퍼니]

2002년 미국 TV쇼 ‘아메리칸 밴드스탠드’ 50주년 기념쇼에 출연한 마이클 잭슨(왼쪽)과 그의 자서전 ‘문워크’(2019/ 미르북컴퍼니). [미르북컴퍼니]

마이클 잭슨을 다룬 책은 많다. 그의 음악을, 그의 인생을, 그의 이면을, 그의 약점을 다룬 책이 쏟아진다. 그와 옷깃만 스친 정도의 인연을 가진 이들도 추억을 판다. 국내에도 책 몇 권이 나와 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직접 쓴 책은 하나뿐이다. ‘문워크(Moon Walk)’이다. 

1989년 처음 나왔고 몇 차례 개정을 거쳐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2009년 최종 판본이 나왔다. 국내에는 비교적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될 무렵 마이클 잭슨에게는 거리낄 게 없었다. 황색 언론의 공격은 팝의 황제를 추앙하는 이들에게 터럭만큼의 흠집도 내지 못했다. ‘Thriller’와 ‘Bad’, 이 2장의 앨범으로 그는 곧 팝이자 엔터테인먼트 자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으니까. 

잭슨파이브의 천재 막내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을 다룬 첫 장부터 자신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담담히 얘기하는 마지막 장까지, 모타운 레이블의 신동이 팝의 정상에 군림하는 ‘혜택받은 인류’에 대한 이야기지만 책에서 마이클 잭슨은 순수하고 겸손하다. 으스대거나 뽐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1958년 늦여름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아홉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의 인생 첫 기억은 이렇다, “목청껏 노래하고 진짜 신나서 춤췄고, 아이치고는 너무 과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내 기억에 잭슨파이브가 뻗어나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겨우 여덟 혹은 아홉 살이었다.” 

여기서부터 270여 쪽이 오직 음악 활동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하다. 대단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비밀을 폭로한 것도 아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야심만만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그의 주변에 있는 음악계 엘리트들과 위대한 작업을 해가는 이야기들이 평범하고 담백하게 펼쳐질 뿐이다. 다만 그 주인공이 마이클 잭슨이고 조연이 퀸시 존스며 주된 배경이 모타운 레이블이라는 것뿐. 


마이클잭슨의 ‘Bad’(1987) 앨범(위)과,그 수록곡의 싱글 앨범인 ‘man in the mirror’(1988).

마이클잭슨의 ‘Bad’(1987) 앨범(위)과,그 수록곡의 싱글 앨범인 ‘man in the mirror’(1988).

1980년대 그가 만든 2장의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 백미는 ‘Bad’에 실린 ‘Man In The Mirror’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잭슨 또한 “내가 사랑하는 노래”라며 이렇게 말한다. “존 레넌이 살아 있다면 이 곡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싫으면 자신부터 돌아보고 먼저 변해야 한다는 내용이니까.” 이 노래는 마이클 잭슨 공연의 마지막 곡이자 하이라이트였다.


1980년대 잭슨 노래의 백미

2009년 여름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이 끝났을 때 런던 피카디리극장에서는 그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Thriller’를 상연하고 있었다. 극장 앞은 팬들이 남긴 꽃과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인근 공원에는 ‘스트리트 피아노’라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마이클 잭슨의 곡을 연주했다. ‘Man In The Mirror’를 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원래대로라면 10주기를 맞은 올해 많은 추모 이벤트가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조용했다. 올해 초 공개된 다큐멘터리 ‘리빙 네버랜드’ 때문이다. 생전 그를 괴롭혔던 아동 성추행 문제를 폭로한 이 다큐멘터리의 진위 여부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이 나쁜 어른들에 의해 왜곡됐을 개연성에 무게중심을 두게 됐다. 떠난 지 10년이 돼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는 팝의 제왕이 그래서 더욱 안쓰럽다.






주간동아 2019.11.15 1214호 (p70~72)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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