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시아 금융허브의 몰락

홍콩 경제, 송환법 시위 장기화로 만신창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09-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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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금융산업의 상징인 센트럴 지하철역 입구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SCMP]

    홍콩 금융산업의 상징인 센트럴 지하철역 입구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SCMP]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을 맞아 펼쳐진 홍콩 불꽃놀이(왼쪽). 홍콩증권거래소 모습. [HKFP,차이나데일리]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을 맞아 펼쳐진 홍콩 불꽃놀이(왼쪽). 홍콩증권거래소 모습. [HKFP,차이나데일리]

    홍콩 불꽃놀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경거리다. 홍콩에선 불꽃놀이가 1년에 4번 펼쳐진다.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7월 1일, 중국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절인 10월 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그리고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음력설)가 되면 화려한 불꽃이 빅토리아항을 비롯해 홍콩 밤하늘을 수놓는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불꽃놀이를 보고자 홍콩을 찾는다. 하지만 올해 국경절에는 홍콩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지 않는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로 공공 안전이 우려된다며 국경절 불꽃놀이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 시위 때도 불꽃놀이를 취소한 적이 있다. 올해도 홍콩 정부는 경마 경기를 비롯한 대규모 행사와 국경절 기념 축제 등을 대부분 취소시켰다. 국경절 전후로 닷새 연휴인 ‘골든위크’는 홍콩의 최대 관광 성수기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중국 본토 관광객들도 홍콩 관광을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 골든위크에 홍콩을 찾은 중국 본토 관광객은 120만 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시위대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발길을 돌리고 있다.

    관광과 쇼핑에 타격

    홍콩 패션 거리인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소고 쇼핑몰. [위키피디아]

    홍콩 패션 거리인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소고 쇼핑몰. [위키피디아]

    홍콩은 그동안 관광과 쇼핑의 천국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면세점으로 꾸민 홍콩은 항상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이 중 중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4400만여 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관광객은 대부분 홍콩에서 각종 세계 요리를 즐기고 명품을 쇼핑한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은 홍콩에서만 판매되는 홍콩 리미티드 제품을 내놓는다. 홍콩섬과 카오룽반도는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한 쇼핑몰들로 1년 내내 성황이다. 홍콩 최고 번화가 중 하나인 코즈웨이베이의 패션 거리에는 최신 유행하는 옷들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시위 사태 장기화로 홍콩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예년 같으면 8월은 휴가철 최대 성수기로 고급 호텔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올해는 관광객이 급감함에 따라 고급 호텔들은 파리만 날렸다. 이 때문에 미라호텔 같은 최고급 호텔은 직원들을 강제적으로 무급 휴가를 보냈다. 홍콩 호텔·식음료직원협회가 8월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38명 가운데 77%가 사측으로부터 최대 사흘간의 무급 휴가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46%는 자신의 월 수입이 3000홍콩달러(약 46만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호텔은 자구책으로 가격 할인에 들어갔다. 애드미럴티,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등 시위대가 자주 모이는 시내 중심가 호텔들은 8월부터 숙박비를 1년 전보다 50% 이상 할인해 받고 있다. 일부 호텔은 90%나 내렸다.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대부분 50% 밑으로 내려간 상황이다. 중심가의 5성급 호텔 숙박비가 1박에 1000홍콩달러(약 15만 원) 이하인 곳도 수두룩하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8월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0%나 급감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홍콩 호텔·식음료직원협회는 “사스는 5개월 만에 잦아들었지만 시위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홍콩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다.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은 앞으로 수개월간 항공편 예약 건수가 예년보다 두 자릿수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광객 급감 등의 여파로 명품업체, 패션업체, 화장품업체, 대형식당도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221개 매장을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I.T는 영업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고, 화장품 전문매장 봉주르도 적자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고급 쇼핑몰이 밀집한 코즈웨이베이의 1087개 점포 중 102개가 비어 8월 공실률이 9.4%에 달했다. 소매업종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8월 소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나 급감했다.

    역사상 가장 긴 시위로 기록

    1 홍콩 시위대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차고 있다. 2 홍콩 시위대가 첵랍콕국제공항에서 시위하고 있다. 3 홍콩 경찰이 정부청사 앞에서 파란색 염료가 든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HKFP]

    1 홍콩 시위대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차고 있다. 2 홍콩 시위대가 첵랍콕국제공항에서 시위하고 있다. 3 홍콩 경찰이 정부청사 앞에서 파란색 염료가 든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HKFP]

    홍콩 경제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6월 9일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는 9월 16일자로 100일째를 맞았고 우산혁명의 기록(79일)을 넘어서며 홍콩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시민들이 벌인 시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금융과 부동산시장이 요동치면서 홍콩 경제가 몰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률은 1분기 0.6%에 이어 2분기 0.5%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분기 성장률이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0~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찬 장관은 3분기에도 비슷한 속도로 경제가 둔화한다면 기술적 불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콩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4.1%를 기록했지만, 미·중 무역분쟁으로 지난해 말 1.2%까지 낮아졌다. 시위 사태가 앞으로 계속되고 중국 정부가 무력 개입할 경우 홍콩 경제성장률은 올해 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이후 홍콩은 한동안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전진기지로 상당한 호황을 누렸다. 특히 각국 은행 등 금융기관이 중국에 대한 자본 투자를 위해 홍콩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법인 설립이 자유롭고 간편한 데다 외환거래 규제가 없고 기업 활동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도 홍콩을 외국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해왔다. 이에 따라 홍콩은 아시아 금융허브로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시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88층 높이의 국제금융센터(IFC), 홍콩증권거래소, 세계 유수 금융회사들이 포진해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금융 중심가 센트럴은 홍콩의 부(富)를 상징했다. 홍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불안에 떨지 않았을 정도로 발전해왔다. 

    이처럼 금융산업은 홍콩 경제의 꽃이지만 이번 시위 사태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거래소 중 하나인 홍콩증권거래소의 올해 기업공개(IPO)는 지난해보다 3분의 1가량 줄어 88건에 불과했으며, 자금모집액도 108억 달러(약 12조9440억 원)로 55.9% 급감했다. 특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 증시에 이어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시장에서는 알리바바의 상장 공모액이 최대 150억 달러(약 12조94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 앤하이저부시 인베브도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업체인 버드와이저 브루잉을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청다바이오, 위닥터, 톈스리바이오 등 중국 기업도 홍콩 증시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실제로 6월 한 달 동안에만 총 110억5000만 달러 규모에 이르는 3개 기업의 대형 상장 계획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7월에는 홍콩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 수가 15곳으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0개)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8월에도 홍콩 증시에서 기업을 공개한 기업은 딱 한 곳이었다.

    홍콩 엑시트 현실화 가능성

    시위 사태 이후 홍콩 호텔들의 주가 추이. [ForwardKeys]

    시위 사태 이후 홍콩 호텔들의 주가 추이. [ForwardKeys]

    홍콩 증시의 전체 동향을 보여주는 항셍지수도 추락하고 있다. 항셍지수는 올해 들어 4월 장중 3만280.12까지 오른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는 연중 고점보다 15% 넘게 하락한 수준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증시인 홍콩 증시에선 6월 이후 모두 6000억 달러(약 724조 원)가 증발했다. 홍콩 증시 분석가들은 항셍지수에 편입된 종목의 영업이익이 올해 19%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자금의 해외 이탈도 시작됐다. 7월과 8월 두 달간 해외로 유출된 자금이 현격히 증가했다. 홍콩으로의 자금 유입보다 홍콩 밖으로 유출이 2.64배나 많았다. 홍콩에 상주하던 외국 금융기관들도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자칫하면 ‘헥시트(HK+Exit)’가 현실화할 수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홍콩 부동산시장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홍콩 주택 가격이 1.1% 하락했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5배나 치솟은 상황과 대비된다.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하자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9월 6일 홍콩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계단 강등하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홍콩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기 전인 1995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무디스도 홍콩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정부는 아예 ‘홍콩 죽이기’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 지역을 연계해 세계적인 혁신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프로젝트에서 홍콩을 제외시켰다. 중국 정부는 선전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지정하고 2050년까지 글로벌 금융과 비즈니스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홍콩과 접경한 가난한 어촌이던 선전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조4222억 위안(약 408조3344억 원)을 기록하면서 홍콩(2조4001억 위안)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주권이 2047년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동양의 진주’라는 말을 들었던 홍콩은 별 볼 일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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