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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 선진 의료기관

수출용 의료기기 국내에서 임상시험 길 열렸다

고대의료원, ISO14155 임상시험 실시기관 인증받아

  • 이주연 자유기고가 doccomari@naver.com

수출용 의료기기 국내에서 임상시험 길 열렸다

정부가 지정하는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돼 최고 수준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고대안암병원(위), 고대구로병원(아래 왼쪽), 고대안산병원. [사진 제공 · 고대의료원]

정부가 지정하는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돼 최고 수준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고대안암병원(위), 고대구로병원(아래 왼쪽), 고대안산병원. [사진 제공 · 고대의료원]

강화된 유럽 의료기기법(MDR)이 2020년 5월부터 적용돼 기업들의 대응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새 규정에 맞춰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대의료원은 독일 글로벌 임상시험 인증기관 티유브이슈드(TU‥V SU‥D)로부터 국제 의료기기 임상시험 실시기관 인증(ISO14155)을 받았다고 9월 24일 밝혔다. 이 인증을 획득한 의료기관은 유럽 외 국가 중에서는 처음이라 국내는 물론, 아메리카와 아시아 국가 의료기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ISO14155 인증은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할 때 안전성과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사람 대상의 임상시험에 관한 국제 기준이다. CE인증(Conformite Europeenne Mark)을 받으려면 ISO14155 기준을 바탕으로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를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ISO14155에 기반해 미국 외 지역에서 수행한 임상시험 결과를 인정하고 있다. 이기열 고려대 연구교학처장은 “세계시장에서 신뢰도가 높은 인증”이라며 “기본적으로 유럽시장을 겨냥해 인증을 받거나 미국,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 의료기기를 수출할 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인증, 해외 의존도 줄여

고대의료원은 3D 장기 프린팅 기술로 환자에게 맞는 심장을 출력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자료 제공 · 고대의료원]

고대의료원은 3D 장기 프린팅 기술로 환자에게 맞는 심장을 출력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자료 제공 · 고대의료원]

고대의료원이 국제 의료기기 임상시험 실시기관으로 이번에 처음 인증 절차를 통과함에 따라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해외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국내에서 좀 더 편하게 합리적인 비용으로 새 규정에 맞춘 임상시험을 조속히 진행해 의료기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 진출하려면 CE인증, FDA 허가 등을 획득하기 위해 해외 의료기관에 의뢰해야 했다.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국내 의료기기의 세계시장 진출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변화하는 국제 규제에 빠르게 대응해 의료기기 임상시험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인증은 고대의료원 산하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고대안산병원이 모두 받았다. 임상시험을 원하는 기업은 자사가 개발한 의료기기의 특성에 맞는 병원을 골라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을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인증은 새롭게 강화된 MDR를 준수해 만들어진 기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2011년 말 프랑스 의료기기 기업 PIP가 20년간 세계 65개국에 수출한 유방 보형물에 발암물질인 공업용 실리콘 겔과 연료용 첨가제 등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고 피해자가 40만 명에 이르자 이를 계기로 2017년 MDR를 발효했다. MDR가 3년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시점이 내년 5월이다. 

앞으로 유럽연합(EU) 시장에 수출되는 의료기기는 반드시 MDR를 준수한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기존 의료기기법(MDD)을 바탕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더라도 인증 유효기간이 끝나면 새 법에 따른 임상시험 결과로 경신할 필요가 있다. 결국 5년 내에는 MDR를 준수한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기존에는 MDD에서 관리하지 않던 필러, 지방흡입 등도 새로운 인증 대상에 추가됐다. 기존 MDD는 60쪽에 20개 규정과 12개 부속서로 나뉘었는데, MDR는 175쪽에 123개 규정과 17개 부속서로 규제 범위가 넓어지고 정교해졌다. 

김태훈 고대의료원 국제의료기기 임상시험지원센터장 겸 연구부처장은 “새 의료기기법은 임상시험을 할 때도 환자를 위한 위험관리시스템을 실행하도록 의무화했다”며 “제품 판매 후 추적 관리도 의무화돼 폐기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환자 처지에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으로선 부담이 커진 셈이다. 

김 센터장은 “유럽 의료기기법이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에게 큰 걸림돌이 돼 산업이 침체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우리의 인프라와 경험이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사명감도 있었다”며 이번 인증을 준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고대의료원은 2013년부터 정부가 지정하는 연구중심병원에 고대안암병원과 고대구로병원이 선정돼 최고 수준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 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창업 컨설팅 연구개발 노하우의 결실

국제 의료기기 인증을 위한 ISO14155 교육 모습(왼쪽)과
‘인증서

국제 의료기기 인증을 위한 ISO14155 교육 모습(왼쪽)과 ‘인증서'. [사진 제공 · 고대의료원]

고대안암병원은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상생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현장인 병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개발하고, 다시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기업이 시장에서 상품화하는 플랫폼을 구축해놓았다. 고대구로병원은 의료기기 중개 임상지원센터 사업을 통해 기업의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은 올해 개방형 실험실 사업에도 선정돼 의료기기 관련 창업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 자문, 컨설팅, 공동연구 등을 하게 된다. 

이 의료원은 또한 국내 학교법인으로는 유일하게 의료기술지주회사 자회사를 세워 의료사업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보유한 자회사만 14개며, 이 중에는 초기 투자금을 연구기술 개발과 창업 지원에 활용해 연구 선순환 구조를 실현한 회사도 있다. 

인증 획득을 준비해본 경험과 노하우도 있다. 고대의료원은 이미 2017년 ‘국제 연구대상자 보호 프로그램 인증협회(AAHRPP)’로부터 산하 3개 병원 통합으로 전면 인증을 획득했다. 당시 15개월간 준비해 질 높은 임상시험 수행과 연구 대상자 보호를 위한 절차 및 실행을 검증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로 환자가 안전한 병원임을 인정해주는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2009년부터 차례로 받았다. 엄격한 확인 작업을 통해 의료사고와 사망률을 크게 낮추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ISO14155 인증 획득을 위한 준비 기간만 1년이 걸렸다. 투자된 금액도 약 20억 원. 효과적인 인증과 사후 관리를 위해 임상시험지원센터를 설립하고, 고대의료원 산하 병원별로 인증준비팀을 구성했다. 각 진료과 교수 43명과 임상시험지원센터 및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직원, 외부 자문 등 70여 명이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수익 기대 없이 착수, 파급 효과는 커진다

김 센터장은 “MDR와 ISO14155를 기준으로 표준운영지침을 만들면서 국내법과 대조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처음 진행하는 것이라 어려웠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각 병원의 임상시험지원센터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위한 임상시험 표준운영 지침을 계속 개정하고, 절차에 맞게 운영되도록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은 신약보다 변수가 많아 까다롭다. 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의사나 환자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약은 정확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반면, 크기가 큰 의료기기는 제조나 운반 과정에서 일부 결함이 생기기도 한다. 온도나 습도에 민감한 기기도 있다. 그만큼 의료기기를 잘 다루는 기관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연구교학처장은 “이번 인증 사업은 큰 수익을 기대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며 “여러 의료기기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국내 기업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우면서 선도하게 됐는데, 정부도 관심을 갖고 의료기기 산업을 적극 지원해 기술 발전과 수출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융복합 의료기기 시장, 선점이 곧 승자
최첨단 의료기기를 사용해 건강검진을 하는 미래 의료의 모습. [자료 제공 · 고대의료원]

최첨단 의료기기를 사용해 건강검진을 하는 미래 의료의 모습. [자료 제공 · 고대의료원]

최근 4차 산업혁명과 인구 고령화로 전 세계 의료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 닥터, 영상진단, 수술로봇, 3D프린팅 등 여러 기술이 융복합된 의료기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의료기기 기업 존슨앤존슨은 구글과 협업해 인공지능 수술로봇을 개발 중이다. 중국 정부는 의료용 로봇과 웨어러블 기기 등 첨단 의료기기를 10대 육성 분야로 선정해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의료기기를 포함한 바이오헬스를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차세대 3대 주력 산업 분야로 중점 육성해 세계시장을 선도할 기업을 창출할 계획이다. 현재 연간 2조6000억 원 수준인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2025년까지 4조 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규모가 늘어난 연구개발비로 융복합 의료기기와 수출 주력 품목의 기술고도화를 지원할 방침이다. 의료기기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규제 개선 방안도 마련된다.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료기기 육성법)과 ‘체외진단기기법’이 2020년 5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 심사 특례 등이 지원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017년 3460억 달러(약 415조 원)로, 연평균 5.8%씩 성장해 2021년 4458억 달러(534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별 시장점유율은 북남미가 49.2%로 가장 높지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도 24.1%에 달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은 20.0%가량이며, 중동도 2013년 이후 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수출액은 2017년 31억6000만 달러(약 3조8000억 원)로 최근 5년간 연평균 7.6%씩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해 수입이 35억 달러로 전년보다 10.9% 증가하며 무역수지는 3억3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의료기기가 많이 수출되는 국가는 미국(5억1000만 달러), 중국(5억1000만 달러), 독일(2억4000만 달러), 일본(2억 달러), 인도(1억3000만 달러) 순이었다. 지역별 수출 비중은 아시아·태평양(40.6%), 유럽(26.9%), 북미(16.7%), 중동·아프리카(9.4%), 중남미·기타(6.3%)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으로 수출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3%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큰 품목은 범용 초음파영상진단장치(5억5000만 달러), 치과용 임플란트(2억 달러), 성형용 필러(1억9000만 달러), 매일착용소프트콘택트렌즈(1억5000만 달러) 순이었다. 압박용 밴드처럼 비교적 간단한 1등급 의료기기보다 인공엉덩이관절같이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4등급 의료기기 수출이 증가한 사실도 의료기기 산업 전망을 부각하는 요인이다. 

의료기기 개발은 다른 제조 서비스업과 달리, 제품 생산까지 장기간 고비용이 필요하고 소비도 병원, 의사, 환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작동된다는 특수성이 있다. 그러나 우수한 성과는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유해 대규모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 

기업 역량만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이 기초연구를 하면 병원과 의사가 응용 연구를 거쳐 기술 사업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연구자, 병원, 기업 사이에 역동적인 가치 사슬이 중요한 분야다. 의료기기의 지속적인 수출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지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간동아 2019.09.27 1207호(창간기념호③) (p28~31)

이주연 자유기고가 doccoma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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