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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주52시간의 극과 극

판교테크노밸리 “워라밸이 지켜지니 좋아”

판교테크노밸리 “워라밸이 지켜지니 좋아”

경기 판교테크노밸리 전경. [동아DB]

경기 판교테크노밸리 전경. [동아DB]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66만1925㎡ 규모의 판교테크노밸리는 정보기술업계의 성지로 불린다. 넥슨, 엔씨소프트, NHN 등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 BT(바이오기술) 관련 기업 12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강도 높은 야근으로 유명한 IT업계와 게임산업계가 자리하고 있는 만큼 밤늦은 시간에도 사무실 불빛이 꺼지지 않아 ‘판교 오징어잡이 배’ ‘판교의 등대’로 불리기도 했다.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종료된 이후 이곳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고자 5월 13일 판교테크노밸리를 찾았다. 취재 결과 주52시간 근무제를 두고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평가가 엇갈렸다. 직장인은 정시 퇴근을 반기는 반면, 회식 감소가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자영업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신분당선 판교역 1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직진하면 판교테크노밸리에 도착한다. 오후 2시 거리는 한산했다. 간간이 커피를 손에 들고 지나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NHN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A(40)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3년째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A씨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답했다. “어제는 오후 5시쯤 퇴근해 일곱 살 딸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녁에 미팅이 있어 9시 넘어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퇴근시간이 빨라져 정말 좋다”고 말했다.


오후 5시부터 퇴근 행렬 이어져

퇴근한 직장인들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왼쪽).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영업 중인 가게들. [뉴시스, 동아DB]

퇴근한 직장인들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왼쪽).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영업 중인 가게들. [뉴시스, 동아DB]

안랩에서 4년째 일하는 B(36)씨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원래부터 야근이 많은 회사가 아니었지만, 정부 정책에 대비해 프로젝트 기한을 늘리거나 사람을 추가로 채용해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4시 30분 무렵 가방을 멘 채 판교역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C(34)씨가 눈에 띄었다. “외근 나가는 길이냐”고 묻자 “퇴근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넥슨에서 5년째 일한다는 그는 “지난해 7월 회사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 근무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 회사에서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KT와 BC카드가 분석한 유동인구 빅데이터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난해 8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 판교 일대 직장인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전년 동기 대비 11.6분 감소했다. 또한 오후 6시 이후 서울 광화문과 판교의 음식 ·  주류 관련 업종의 매출은 최소 10.3%에서 최대 14.7%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회색, 주황색, 파란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이 하나 둘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던 D(33·여)씨에게 가방을 멘 사람들에 대해 물어봤다. 안랩에 입사한 지 3년째라는 그는 “퇴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부터 5시에 퇴근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6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거리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손님 없어 가게 문 일찍 닫아”

판교에서 요식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줄거나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고 했다. 일식집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는 이모(42) 씨는 “주52시간 근무제가 가게 매출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발표 이후 손님이 50% 가까이 줄었다. 계도기간에는 손님이 8월보다 10%가량 늘어났지만 계도기간이 끝나면서 다시 50%로 떨어졌다”며 “5년간 판교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근무했지만 이렇게 손님이 적었던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7년째 K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53) 씨도 밤늦게 오는 손님이 없어 매출이 3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김씨는 “예전에는 새벽 1시 넘어서도 손님이 많이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자정만 되도 손님을 거의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가게 문을 닫는 시간도 새벽 5시에서 새벽 1시로 앞당겼다. 

현대카드가 지난해 12월 28일 발표한 ‘데이터로 세상을 읽다 : 현대카드 결제 데이터로 본 ‘주52시간 근무제’ 이후 직장·여가·소비문화’에 따르면 2018년 7월부터 10월까지 회식 횟수가 한 달 평균 0.3회 감소했다. 회식 시간도 앞당겨졌다. 오후 5시에서 8시까지 법인카드를 이용한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2.4%p 증가한 43.6%를 기록했다. 저녁 8시 이후 이용 건수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2%p 감소했다. 

판교와 서울 강남구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김모(37) 씨는 “번화가가 아닌 오피스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직장인 퇴근시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는 주52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누리지도 못하고 매출만 떨어져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B치킨집을 4년째 운영하는 황모(48) 씨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 일찍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기존에는 새벽 2시까지 영업했는데 몇 달 전부터 1시간 앞당겨 가게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장인의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사라지는 현상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강남, 광화문 등 오피스 상권이 특히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 먹자골목처럼 식당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오피스 상권에도 헬스클럽, 영화관 등 즐길 거리가 많은 복합 상권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5.17 1189호 (p22~23)

  • 정보라 기자 purple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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