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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추운 겨울, 2016

위기는 다른 얼굴로 온다

수출 내리막길, 웃지 못하는 ‘불황 흑자’…“심각한 위기” vs “견딜 만하다”

위기는 다른 얼굴로 온다

위기는 다른 얼굴로 온다

동아일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수 진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한 일련의 정책이 부동산 버블과 가계부채 위기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진행한 국내신용 팽창 정책이 닷컴버블과 카드대란 사태로 이어졌던 2000년 초반과 매우 흡사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 12월 13일 펴낸 ‘미국 금리인상에 대비한 우리나라 주식시장 리스크 점검’ 보고서의 일부다. 최근 각종 경제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또 한 번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대중 사이에서도 ‘경제 상황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와 다르지 않다’는 위기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제위기가 있던 것을 언급하며 ‘위기 10년 주기론’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12월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서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3으로 11월보다 3p 떨어졌다.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여파로 99까지 떨어진 뒤 계속 오르다 6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가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각종 소비 진작 정책을 폈고, 연말이면 성과급 지급 등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것을 감안하면 심상치 않은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는 현재와 비교해 1년 후 주택가격을 예상하는 주택가격전망지수도 102로 11월(113)과 비교해 11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미국 금리인상이 향후 우리나라 부동산·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한다.   

제2의 ‘IMF 사태’ 오나

우리 경제의 모든 지표가 불안한 건 아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하나인 무디스는 12월 18일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상위 넷째 등급(Aa3)에서 셋째 등급(Aa2)으로 한 단계 올렸다. 한국 경제 사상 최고등급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 날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미국의 금리인상 후유증과 신흥국 위기에 따른 수출 부진 등 각종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방어막 구실을 해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 부총리는 각계에서 쏟아지는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도 기자간담회에서 “과장됐다”고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사의 평가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그릇된 희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디스는 1997년 외환위기 때도 10월까지 당시로선 역대 최고등급이던 A1을 유지하다 두 달 사이 6개 등급을 강등, Ba1으로까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낮춘 전력이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97년 8월까지 역대 최고인 AA-를 유지하다 4개월여 만에 10단계를 강등한 바 있다. 당시 한국 경제의 위기를 예견케 하는 징조는 많았다. 96년 경상수지 적자가 230억 달러(약 26조8000억 원)를 넘어섰고 97년 초부터 한보철강, 삼미그룹,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국제신용평가사의 호평과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본구조)은 튼튼하다’는 정부 발표를 믿은 국민은, 그해 11월 21일 밤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지금 한국 경제상황이 당시와 똑같지는 않다. 11월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685억 달러(약 430조2000억 원)로 1997년 204억 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12억 달러와 비교해도 1500억 달러 이상 많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103억 달러(약 12조 원) 적자를 기록한 경상수지는 2008년 32억 달러(약 3조7000억 원) 흑자에서 올해는 1120억 달러(약 130조7000억 원·정부 추정) 흑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좋다”는 건 한국 경제위기론에 반박하는 이들의 대표 논거다.
그러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경제위기는 ‘변장의 명수’다. 지금까지 경제위기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한국에 다가오는 위기가 1990년대 말과 같은 얼굴일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나”라며 “현재 상당수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고, 이를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분명한데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불안’의 목소리가 높은 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경쟁력 둔화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2월 11일 ‘2015년 11월 수출입물가지수’가 80.98로 1986년 9월(80.79) 이후 가장 낮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수출 상황은 2016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KDI가 12월 6일 발표한 ‘경제동향 12월호’에는 ‘민간소비, 투자 등 내수 전반은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수출은 계속 부진하고 앞으로도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의 11월 수출 감소폭(-4.7%)이 10월(-15.9%)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선박을 제외한 11월 수출이 2014년 같은 기간보다 12.4%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수출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KDI 측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인상과 유가 하락으로 상당수 신흥국 경제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그 여파가 한국에까지 미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10월까지 우리나라의 대(對)신흥국(IMF가 분류한 선진 37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수출 비중은 58.2%로 선진국(41.8%)을 크게 웃돈다. 신흥국의 위기는 우리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복지 비용, 가계부채 뇌관

위기는 다른 얼굴로 온다

수출경기 둔화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출입 화물이 오가는 부산 자성대부두. 동아일보

저유가 현상 지속도 우리 경제에는 마이너스 요소다. 저유가로 구매력이 약해진 산유국이 수입을 줄이면서 우리 수출에 타격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2016년 수출의 주요 이슈 점검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수출 부진세가 이어져 2015년 수출액이 전년 대비 6.7% 감소한 5342억 달러(약 623조9000억 원)를 기록할 것이고, 2016년에도 총수출액이 5550억 달러로 2013년(5596억 달러)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비여력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5년 3분기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잔액은 1166조 원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부실위험 가구가 112만 가구에 이른다. 12월 11일 한국은행과 IMF가 공동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딩딩 IMF 선임연구원은 “일부 아시아 국가의 부채 위험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했다”며 “한국의 가계대출도 향후 이자율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의 기업대출은 소수 회사에 집중돼 있고, 이 회사들의 유동성이나 수익성도 나빠 향후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아직은 ‘안전’하다. 상공회의소는 12월 13일 ‘미국 금리인상의 파급 효과와 대응전략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 등 신흥 11개국을 대상으로 위기상황을 가정해 외환 대응력과 부도 위험을 살펴본 결과 한국은 ‘안전국’으로 분석됐다’며 ‘미국 금리인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한국 내 단기자금은 2700억 달러로 추정되지만 이는 외환보유고(3747억 달러)에 3개월간 경상수지 흑자(289억 달러)를 더한 외환대응력(436억 달러)으로 방어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2015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7%에 머물렀고, 2016년에도 딱히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 않는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복지경쟁을 벌이면 경제지표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철환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 경제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세계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없는 만큼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의 생산성과 능률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간동아 2015.12.30 1019호 (p48~49)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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